옛날 옛적엔 - 중앙선 탑리역 (2018. 10. 13)
탑리, 화본, 희방사, 반곡으로 이어지는 답사기의 첫 번째 역이다.
이 날의 답사는 바로 탑리역부터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탑리를 비롯 화본, 희방사까지 중앙선 연선에 있는 기차역 아니랄까봐 찾아가는 데 있어 제법 난이도를 자랑하는 역들이다.
사실, 이 날도 스스로가 조금만 디테일했다면 북영주신호소는 물론 풍기역까지 한꺼번에 답사를 해서 수고를 덜을 수도 있었는데, 기억력의 착각으로 풍기는 다시 한번 잡고 다녀와야 할 입장이 됐다.
북쪽에서 남쪽에 있는 기차역들 특히 중앙선처럼 난이도가 있는 역들을 다녀오려면 으레히 이틀의 시간은 잡고 움직여야 한다.
서울에서 동대구까지 가는 무궁화호 막차를 이용 동대구역에서 뜬 눈으로 새벽을 지새운 다음에야 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동대구에서 탑리까지 무궁화호 1672 열차를 이용했는데, 이 열차도 나름 근성열차에 포함되는 열차 중 하나다. 왜냐하면, 동대구에서 강릉까지 가는 열차로 다이아상으로만 무려 6시간 40분의 소요시간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1시간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비교적 정시에 맞춰 동대구에서 출발한 열차가 탑리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 탑리역의 역사
- 1940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 1950년 8월 7일 한국 전쟁으로 역사 소실
- 1958년 6월 14일 역사 신축
- 1994년 1월 1일 소화물 취급 중지
- 1997년 12월 31일 현 역사 신축 완공, 인근에 위치한 금성산성을 본떠 성의 형태로 설계
- 2005년 9월 30일 화물 취급 중지
- 2022년 6월 중앙선 복선 전철화 구간이 완공되면 화본, 신녕, 희방사등과 함께 폐역될 예정
흙과 자갈을 밟았다. 화본역처럼 플랫폼이 시멘트나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탑리역도 흙과 자갈로 이루어져 좀 더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준다.
여기에 역 구내와 주변 풍경이 잘 어우러져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배가 되는 측면도 있다.
또한, 역 플랫폼에 화분이 아닌 화단이 조성되는 역은 정말 처음인 듯 싶었다. 물론, 시골역을 가보면 대게 화분이 플랫폼에 놓여있는 것이 많으나 화단이 조성된 역들은 본 경험이 없어서다. 그만큼 신선한 느낌과 더불어 자연친화적인 느낌도 함께 받았다.
가을에 접어든 시기이자 동시에 아침 해가 떠오를 일출시간때라 승강장이 운치 있게 느껴진다. 사진에서도 나오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공사현장이 바로 나타난다.
바로 중앙선 복선 전철화 공사에 여념이 없었다. 중앙선 복선 전철화를 가지고 역직원과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는데, 2022년쯤에 완공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나 공사란 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될까... 아마 몇 년이 추가로 더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중앙선 복선 전철화 공사가 끝나면 탑리를 비롯 신녕, 화본, 희방사까지 중앙선 연선에 위치한 상당수의 역사들은 영업을 중지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신녕, 화본, 탑리, 희방사 등 특색있는 역들이 많은 만큼 이설이 되더라도 온전히 보존이 되고,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한다.
청량리 기점 296㎞. 한마디로 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땅이 좁다고 하지만, 순전히 거리로만 따진다면, 정말로 먼 거리다. 아무리 교통이 좋아졌다고 한들 이 정도 거리를 다녀오면 제대로 녹초가 될 것이다.
역 주변에 의성 탑리 오층석탑이 있어서 탑리역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물론, 탑리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
그래서인지 뒤에 나올 역사의 형태도 역사 곳곳에 돌탑이 쌓여져 있었다. 그만큼 탑이라는 컨셉에 가장 잘 부합하며 동시에 역명과 가장 잘 부합하는 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통 탑이 주는 이미지가 불교, 사찰, 절과 관련이 깊은 경우가 많은데, 역 구내도 장독대와 옹기, 돌탑과 석공예, 그리고 각종 화단까지 마치 절에 온 분위기를 자아낸다.
절에 가면 마음에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탑리역에 도착했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복선 전철화의 공사 현장이 아니라면, 더욱 운치가 있었겠지만, 아쉽지만 현실을 받아들인다. 감성보다 이성으로 이상보다는 현실을 추구하는 게 지극히 사람의 합리적 본성이기 때문이다.
비록 분위기가 반감이 될지언정 기본적인 분위기는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나 역이나 클래스는 존재하나 보다.
개인적인 속마음을 덧붙이자면,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탑을 모티브로 지어진 역사라고 하지만, 정작 역사의 분위기는 탑이라기보다 흡사 과거 중세시대의 성곽 같은 분위기를 준다.
탑이라면 탑이겠지만, 그래도 성곽이라는 물씬 느껴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한 가지 더, 우리에게 친숙한 슈퍼 마리오 게임의 배경과 유사하다고 느낀다면 정말 기분 탓일 거다. 어렸을 때 한번씩 접해본 게임이 바로 슈퍼마리오가 아니었던가.
탑리역의 역사를 실물로 접했을 때 유년 시절에 즐겨했던 게임 슈퍼마리오가 바로 떠올랐다.
의성탑리오층석탑, 금성산 등 탑리 주변 지역의 명소가 액자에 담겨진 사진으로 걸려있다. 의성탑리오층석탑은 역직원이 권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탑리라는 지명, 역명의 배경이기도 하다.
거리가 좀 떨어져 있지만, 빙계계곡과 금성면 지역에 존재했던 조문국의 고분군도 있을만큼 알고 보면 탑리역도 숨겨진 보물처럼 관광 소재와 친숙한 역 중에 하나다.
진열장에 김태일이라는 분이 기증한 지게, 절구, 항아리 등의 모형, 짚신, 나막신, 곰방대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마치 조선시대를 소재로 한 지역박물관에 온 것 같았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건 바로 오르간이었다. 다른 말로 풍금. 풍금을 봤을 때 초등학교때 음악 수업때 풍금을 연주하던 선생님과 '내 마음의 풍금'이라는 영화가 절로 생각이 났다. 전자의 경우 선생님이 풍금을 연주하면 노래를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남아있고, 후자의 경우 서정적인 동화책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게 하고, 기분도 꽤 맑아졌던 기억이다.
물론, 초등학교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내가 경험한 전자와 후자의 유일한 공통점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내 마음의 풍금은 이병헌, 전도연, 이미연씨가 출연했던 영화였는데, 하근찬의 단편소설 '여제자'를 원작으로 촬영한 영화라고 한다.
아마 내가 알기로는 그다지 흥행을 거둔 영화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투명하고 맑은 분위기의 영화였다.
열차시각이 많이 남아있으면 무료하기 마련인데, 역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좋고, 맞이방 한 켠에는 책과 잡지들이 마련되어 있어서 독서로 시간을 보내기도 좋다. 목공예 제품들과 함께 전선과 관련이 깊은 나무로 된 케이블드럼이 테이블로 놓여있어서 꽤 아기자기한 멋이 난다.
맞이방이 단순히 시간을 떼우는 공간에서 벗어나 하나의 휴식공간으로 완벽히 자리매김했다. 다만, KTX가 대세인 탓에 탑리역에서도 원동역 구간을 배경으로 하는 KTX의 액자가 어김없이 달려있었다.
원동역도 멋진 지역임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각 역을 대표하는 사진이 걸리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중앙선답게 열차가 정말 다니지 않는다. 정확히 3왕복만 정차한다. 경북관광순환테마열차(현재 경북나드리열차)가 있었을 당시에는 하루 4왕복의 열차가 있었지만, 시간표 개정이 들어가면서 이마저도 날아가 현재는 3왕복만 정차한다. 그래도 탑리역이 화본역, 신녕역보다 다행인 점은 동대구와 강릉을 오고 가는 무궁화호 1672와 1673이 추가로 정차한다는 점과 주변에 탑리시외버스터미널이 있어 비교적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이다.
주변역들에 비해 무궁화호 1왕복이 추가로 더 정차하고, 다른 대체 교통수단이 가까운 곳에 있어 다행이라는 사실이 한편으론 씁쓸하게 느껴지기만 하다. 역이 특색있어 오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지만, 그에 반해 교통이 불편하다는 점이 선뜻 가기에는 여러모로 시간상 비용상으로 고민을 갖기에 충분하다.
지금 와서 고백하지만, 탑리, 화본, 신녕, 희방사 이런 역들을 가고자 했을 때도 개인적으로 꽤 망설여졌던 게 사실이다. 교통편도 열악한 편인데다 그나마 있는 교통편마저 놓치면 기약없이 길 위에서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성곽과 탑의 조화가 아닐까 싶다. 순수한 돌탑도 있고, 옹기와 돌을 조화시킨 이른바 옹기돌탑도 있다.
꼭 열차를 타고 가지 않아도 하나의 휴식공간으로 느껴질만큼 소소한 볼거리가 꽤 많았다.
선로 방향 역사를 카메라에 담을 때도 영락없는 성곽이고, 슈퍼마리오의 배경이다. 슈퍼마리오 시리즈가 나온다면, 제작자에게 탑리역을 배경으로 만들어보는 것을 권해주고 싶을 정도다.
역직원의 권유에 따라 탑리 지역 시가지를 거쳐 의성탑리오층석탑으로 발길을 돌린다.
의성탑리오층석탑까지 가는 길마다 담은 사진들이다. 탑리 지역 시가지이기도 한데, 전반적으로 1970년대 분위기를 자아낸다.
곳곳에 최근에 지은 건물들도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래전에 지은 건물들도 상당수가 남아있고, 70년대 시절에 사용됐을 법한 간판들도 제법 남아있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았다.
아직도 이런 게 있나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정말 깜짝 놀랐다.
문득 들었던 생각은 변하지 않고,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 있다란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온전히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 놀라웠고, 오래됐다고 무작정 없애려고 하기 보다 현실과 조화시키며 잘 갖춰나가는 게 좋다고 하겠다.
탑리라는 지명의 모티브이기도 하며, 탑리역의 명명도 여기서 왔다.
의성탑리오층석탑이다. 사진상 구도가 다소 아쉬웠는데, 석탑 앞에서는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구도를 잡기가 살짝 어려웠다.
그래도 풍경치고는 잘 나왔다고 자부한다.
특히, 의성탑리오층석탑은 이래 봬도 국보 77호로 지정될 만큼 국가의 소중한 보물 중에 하나다.
탑리역에 가보고자 하는 분들에게도 의성탑리오층석탑과 탑리 지역 시가지를 한번 다녀올 것을 권하는 바다. 탑리역에서 걸어서 10분 안팎으로 갈 수 있다. 또한, 시가지도 그다지 크지 않아서 곳곳에서 70년대 흔적을 느끼며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실제로 리틀 포레스트의 촬영지가 의성과 군위 지역을 배경으로 촬영됐다고 한다. 탑리 지역이 영화에 나온 것은 아니지만, 마치 영화의 촬영지로 쓰였을만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탑리역의 파노라마 사진이다. 역시 파노라마 사진이 있어야 든든한 기분이 든다.
먼저 다녀온 신녕역과 지금의 탑리역, 뒤이어 나올 화본역, 희방사역은 찾아가기 힘들지만, 찾아오는 이들에게 그만한 아름다움으로 보상해주는 것이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워낙 교통이 불편했던 탓에 갈까 말까 망설여지고, 몇 번이고 쓸데없는 고민이 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녀왔을 때 밀린 숙제에 한 것에 대해 커다란 보상을 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중앙선 복선 전철화 공사가 완료되기 전 신녕, 탑리, 화본, 희방사는 다시 한번 꼭 방문할 것을 스스로 약속한다. 정말 오길 잘했다.
내 마음의 풍금은 바로 탑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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