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문화체험 - 호남선 연산역 (2018. 6. 23)
익산역에서 출발한 무궁화호가 대략 30분이 지났을 무렵 연산역에 도착하였다. 연산역에서 내린 사람은 본인 1명, 탑승하는 사람은 없었다. 연산역 역시 늘상 생각하는 시골역의 모습이었다.
사진으로는 잘 나와있지 않지만, 연산역의 역간거리표를 잘 보면 연산역이 대전조차장역 기점 39.6㎢에 위치해 있다. 또, 사진을 잘 보면 과선교가 나오는데, 과선교는 주민들에게 있어서 꽤 중요한 시설물 중에 하나이다.
연산역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던 터라 잘 알고 있었지만, 첫 눈에 보기에도 기차역에 왔다기 보다 철도를 주제로 한 놀이동산에 온 것 같았다. 그만큼 사람들이 보다 쉽게 철도에 다가갈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 연산역의 역사
- 1911년 7월 10일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 1950년 10월 16일 공비 피습으로 역사 소실
- 1957년 7월 18일 역사 복구 준공
- 1977년 11월 1일 특급열차 여객 취급
- 1990년 8월 1일 전산단말기 설치
- 1991년 9월 1일 소화물 취급 중지
- 1999년 11월 26일 역사 개수
- 2001년 9월 17일 역무실 일부 증축
- 2003년 1월 28일 연산역급수탑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48호로 지정
- 2007년 6월 5일 어린이 철도체험학습 운영 개시
- 2007년 8월 10일 일일 역장체험 운영 개시
- 2008년 11월 1일 화물 취급 중지
- 2013년 1월 10일 철도문화체험장 개장
- 2016년 1월 1일 기념입장권 발매 개시 (※ 코레일 기념입장권 발매역 - 서울역, 도라산역, 화본역, 연산역, 정동진역)
연산역이 겪고 온 이력에서 보듯 특출나지 않아 보여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시나브로 역의 가치를 높여 오고 있었다. 역 자체의 개보수는 물론이고, 급수탑만 해도 문화재청으로부터 대한민국 등록문화재로 인정받은 바 있으며 철도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절찬리에 운영중에 있다. 여기에 2016년에는 전국 5개역에게만 주어진 기념입장권의 발행역으로 당당히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철도문화체험 프로그램은 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특색있는 간이역들이 사람들이 없다 싶으면 무인화의 칼날을 맞는 것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무인화와 여객취급마저 중지가 되면 역은 말 그대로 방치가 되어 주변 미관이 좋지 않아질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회비용의 상실도 초래한다.
전반적으로 열차이용의 감소를 통한 교통수단의 불편을 초래하며, 역이 방치가 되면서 좋지 않게 활용될 여지가 많아지고, 대개 시골 간이역들은 역사적인 가치도 같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역사적 가치도 덤으로 없애기 때문이다.
무작정 역을 없애기 보다 역의 특성을 보다 활용하는 것이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의 수입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열차이용의 횟수도 유지시켜 교통수단의 불편함도 보다 줄일 수 있기에 가치를 보다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먼저, 역사 바깥부터 하나씩 둘러보기로 했다.
역사 바깥으로 나갔을 때 여느 평범한 시골 마을의 분위기였다. 평온한 시골 마을이 있지 않은가... 편안함을 전해주는 분위기 속에 역사 주변에 아기자기하게 역이 꾸며져 있었다. 또한, 마을 주민들 소유의 텃밭도 마련되어 있었다.
역 구내에만 형식적으로 꾸며놓은 것이 아닌 역사 바깥으로도 세심하게 꾸며놓아 진정으로 철도문화공간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즉, 철도와 자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 하겠다.
역사뿐만 아니라 역 주변 마을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인위적으로 정리했다는 느낌보다 자연에 맞게 순리대로 정리했다는 느낌을 주어 편안함을 받을 수 있었다. 역 곳곳이 말 그대로 자연친화적이었다.
잘 어울린다는 표현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역사 자체도 시대의 흔적으로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면서 고풍스러운 역사 주변으로 마을의 풍경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니 말이다.
연산역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코레일 직원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분들의 도움으로 철도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으니 이만큼 고마운 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연산역 기념입장권의 도안인 연산역 급수탑이다.
호남선 연선에 위치한 대전, 충남지역의 기차역들 중에서 연산역뿐만 아니라 서대전역과 강경역에도 급수탑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이후 철거되면서 연산역의 급수탑이 호남선 연선에 위치한 대전, 충남지역의 기차역들을 통틀어 유일하게 남아있는 급수탑이라고 한다. 이러한 특수성과 희소성을 인정받아 문화재청으로부터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48호로 2003년에 지정된 바 있다.
특히, 화강석을 하나씩 다듬어서 만든 게 사진에서 보던 여느 급수탑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마치 경주에 있는 신라시대의 첨성대를 보는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정교하면서도 주변의 풍경과도 정말 잘 어울린다.
사실, 연산역 기념입장권 발매가 이 날 소기의 목적 중 하나였는데, 연산역 기념입장권의 도안도 바로 연산역 급수탑에 따온 것이다.
과선교는 급수탑의 근처에 위치해 있는데, 과선교를 통해 철도로 인해 왕래가 곤란한 마을간 이동이 가능하다. 특히, 역 구내로 열차가 수시로 이동하기에 더더욱 과선교가 필요하다.
한편, 급수탑 주변으로 요즘 유명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서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가지고 역이 발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과선교를 건너서 본 마을의 규모도 단순히 생각했던 것과 달리 생각외로 꽤 큰 편이었다. 마을의 논밭과 마을의 건축물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은 거 같아 철도와 자연을 즐기면서 스트레스 푸는 데 이만한 공간도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광장에서 선로 방향으로 역사 전경 사진을 꼭 남기고 싶었는데, 마음이 편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 날 찍은 사진들이 꽤 잘 나와서 몇 장이고 더 올리고 싶을 정도다. 더도 덜도 말고, 이 날 느꼈던 편안함을 평생토록 느끼고 싶다.
역사 내부로 본격적으로 들어가서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가 맞아준다. 무궁화호와 동위 동급인 누리로를 포함하여 무궁화호 계통 열차가 5왕복으로 정차하고 있으니 열차 운행편수는 꽤 괜찮다고 생각이 든다.
승차권과 입장권을 발매하면서 역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도 주말보다 평일에 주로 대전으로 가는 통근이나 용무 목적으로 이용하는 수요가 많다고 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맞이방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역의 맞이방이다. 역으로서 기능을 하고, 역의 사용 주체인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연산역을 볼 때 역으로서의 영역을 뛰어넘어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한 문화공간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철도의 영역을 뛰어넘어 사람의 영역까지 아우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초저항이라고 불리는 수도권 지역의 각종 전동차들과 일반열차의 객차 종이모형이 진열장에 놓여져 있었으며, 진열장 위에는 연산역의 옛 모습을 본뜬 종이모형, 서울역, 간이역 카페의 옛 모습을 본뜬 종이모형이 각각 놓여있었다.
한편, 발매창구에는 경원선에서 운영중인 CDC 디젤동차인 통근열차, 그리고 새마을호 객차 한 량이 고스란히 놓여있었다.
그것보다 재미있던 건 아재개그라 불리는 기차역의 역명을 활용한 아재개그 리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역은?' '상봉역' 바로 이런 식이다. 숨겨진 개그 본능을 자극한다. (승부해야하는 역은 승부역이요, 동화책이 있는 역은 동화역이다. -_-;)
나무 장식과 종이 모형들은 아마도 철덕들이 가져다 놓은 것 같다. 건전하게만 한다면, 철덕도 꽤 좋은 덕질이요, 취미라고 생각한다. 사실, 철덕들의 흔적을 마주한 것도 연산역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신선했다. 연산역뿐만 아니라 황간역에서 진정한 철덕문화체험도 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황간역도 답사하고자 하는 시골역 중에 하나이다.
사람들이 철도를 보다 친근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건널목과 신호기는 물론이고, 이제는 어엿한 코레일의 플래그쉽인 KTX의 석고 모형도 놓여있어서 철도를 마음놓고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연산역이 왜 철도문화체험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지 설명해주는 듯 했다. 이것말고도 시소 의자와 토끼 우리가 자리하여 있어서 철도와 자연은 물론, 낭만까지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모습이 깊은 인상이었다.
동물들을 활용한 명예역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 같은데, 연산역의 명예역장이야말로 토끼가 아닌가 싶다.
한편, 원래 KTX가 아니라 간선전기동차인 누리로의 모형이 놓여있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누리로의 모형은 온데간데없고, KTX의 모형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KTX가 어디에서든 주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도 일반열차들도 KTX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연산역에서 철도문화체험이 가능하다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연산역의 연락처와 공식 카페에 문의하면 된다.
※ 네이버 카페 - https://cafe.naver.com/yeonsanst , 연산역 041-735-0804
화장실의 반대편 측면에 보면 '여객열차 운행 변천사'가 마련되어 있어 우리가 쉽게 접하는 여객열차들의 목록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19세기 1899년부터 현재 21세기 2015년까지 여객열차 운행 변천사를 통해 철도의 역사, 열차의 역사를 넘어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사회가 흘러왔는지 반추해볼 수 있는 좋은 항목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단체관광열차나 명절 임시열차로나 볼 수 있게 된 진짜 새마을호의 모습이다. 새마을호는 동차형, 일반 장대형을 모두 통틀어 각종 기차역에서 카페로 또는 체험관으로서 사람들과 호흡하고 있다. 꼭 현역에서 뛰는 것만으로 사람들과 호흡하는 건 아니니까. 참고로 연산역 구내에 위치한 새마을호 객차는 다섯 자리로 일반 장대형 객차이다.
이처럼 현업에서 물러난 열차들을 각종 주제나 특성에 맞게 활용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고 본다.
새마을호가 과거 안락함을 주던 철도청 시절의 플래그쉽이자 철도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연산역을 학점으로 평가한다면, "A+"로 평가하고 싶다.
연산역에서 이 날 겪었던 경험은 단순히 기차역을 경험한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문화공간을 경험했다고 자부한다. 역 나름대로 특색이 있겠지만, 역 나름대로 특색을 잘 살리지 못하거나 단순히 형식적인 면에만 치중해서 꾸몄다고 느껴진 역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날 연산역에서 본 풍경은 단순히 형식적으로 치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들과 호흡하고자 만든 기차역이자 문화공간이라는 것이고, 심혈을 기울여 고민했다고 느껴졌다는 점이다. 이 점이 기존에 봤던 기차역들과 연산역의 큰 차이점 중에 하나였다.
내가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의 영역을 뛰어넘어 역이 가진 가치를 보다 크게 만들고, 역의 특색을 살려 사람들과 호흡하는 그런 기차역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연산역은 내가 희망했던 가장 최고의 기차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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