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뒷편으로 물러난 반곡역, 동화역
강원도 원주시의 낭만 기차역인 반곡역과 동화역도 소임을 다하고 역사의 뒷편으로 물러나게 됐다.
두 역사 모두 2018년에 방문했었는데 은은하면서도 편안한 풍광에 푹 빠졌던 기억이 아련히 남아 있다. 원주는 강원도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인데 큰 도시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편안함을 주는 곳이 있다는 점에 크게 놀랐다.
동화역과 반곡역, 두 역사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은은하면서도 편안한 풍광을 자랑하는 점, 조그마한 보통역이라는 점이 두 역이 갖는 공통점이라 볼 수 있다. 동화역은 그야말로 아늑한 동화처럼 교외 지역의 자그마한 마을과 어울리는 기차역인 반면, 반곡역은 혁신도시에 안에 있는 기차역이라는 특성에 맞게 숨겨져 있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라 하겠다.
아름다운 정취를 자랑하는 기차역이 역사의 뒷편으로 물러났지만 이들 역에서 느꼈던 아늑함과 편안함은 마음 속에 영원히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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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이설을 앞둔 장항선 웅천역의 기록들
내년 초에 이설을 앞두고 있는 웅천역이 떠올랐다.
장항선 2단계 개량사업에 따라 웅천역도 선로와 역사가 모두 이전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됐다. 예정대로 라면 장항선은 2년 뒤인 2022년까지 복선전철화로 개량된다고 하나 아마 시일이 걸릴 것을 예상하면 수년이 지나서 완공이 되리라 생각된다. 장항선 2단계 개량사업은 남포에서 간치 구간이 완료될 예정이고, 완료시 간치역이 폐역될 예정이다. 이미 2018년 동백정역까지 운용되는 서천화력선이 폐지됨으로서 간치역의 기능도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동전의 양면처럼 새로 생기는 존재가 있는 반면, 없어지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새로 등장하는 이에 대한 기대와 없어지는 이에 대한 그리움이 공존하는 게 사람들에게 던져진 숙명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웅천역은이 현 위치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 이전한다고 한다. 웅천고등학교 인근으로 이전된다고 하는데 추후 보령을 방문하게 될 때 새로운 웅천역도 필히 방문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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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뒤안길로 물러난 희방사역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던 희방사역도 추억의 한 페이지 속으로 들어갔다.
화본역, 반곡역, 탑리역과 함께 일정을 계획해서 다녀왔는데 역시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즈넉한 가을의 풍경과 선선한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날씨에 시나브로 매료됐었다. 겨울을 앞두고 더욱 화려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이 남는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소중한 시간이 들어간 사진을 다시금 꺼내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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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역사로 남긴 장항선 대야역
2020년 12월 9일을 끝으로 장항선 대야역이 이설됐다.
대야역이 이설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2년 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당시 대야역에 다녀왔을 때가 생각났다. 꼭 다녀오겠다고 마음을 먹고 다녀온 거라 무더위도 싫지 않았다.
붉은 벽돌로 치장된 역사의 외관도 그렇고, 숨겨진 보물처럼 지나가게 되는 역이라 더욱 가고 싶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새로운 장소로 이설돼서 역사를 역사로 남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2년 전에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2년 전, 2018년하면 끔찍했던 무더위가 생각나는데 정말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었던 심정이었다. 8월 말에 열돔을 뚫어 내는 비가 내리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무더위 속에서 피어올랐던 아지랑이처럼 2년 전 다녀왔던 기차역의 추억도 아지랑이처럼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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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과 철도 사이의 신기로움 - 영동선 신기역 (2020. 5. 23)
동해역을 출발한지 30분을 조금 못 미쳐 신기역에 도착하였다.
열차를 타보는 것도 오랜만이고, 기차역을 답사하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5월 하순의 시기라 어느덧 날씨도 봄과 여름의 경계에 해당했다. 움직여도 땀은 나지 않지만 더위를 느끼는 날씨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 봄의 시간은 줄어들고 여름의 시간이 늘어가는 것만 같다.
온갖 고생을 하며 8000호대를 카메라에 담은 시기가 2019년 8월이니까 아홉 달이 훌쩍 지난 동안 아름답기로 소문난 태백선과 영동선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들 노선의 시종착역이 강릉역에서 동해역으로 옮겨졌다는 것과 환승 수요를 위해서 무궁화호 RDC가 추가됐다는 점이다. 강릉역에서 동해역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겪으면서 마치 한 지역의 터줏대감이 어떠한 이유로 물러난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정작 터줏대감이 물러났는데 터줏대감의 영향력이 필요해서 이를 위해 또 다른 무언가가 생겼달까. 주제와는 상관없지만 강릉선의 KTX가 동해역까지 연장됐다는 것도 많은 변화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덜컹 거리는 전기기관차와 객차 조합의 무궁화호가 아닌 가감속을 바탕으로 한 동력분산식의 전기동차 누리로가 운행하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컬쳐 쇼크로 정의해 두고 싶다. 과거 여객열차의 주류가 객차형 열차였다면 이제는 전기동차를 위시로 한 동차형 열차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는 모습이다. 이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영동선과 태백선 등지에서도 객차형 열차인 무궁화호가 아닌 동차형 열차인 누리로가 운행되는 것을 보며 더욱 확실해졌다. 2018년에 충북선의 누리로를 탑승할 때도 그랬지만, 가감속이 좋아서 승차감도 상당히 편안한 느낌이었다. 객차형 열차의 투박함과는 다르게 동차형 열차의 세련됨이 훨씬 가까이 다가온다.
동해역을 떠나 처음 정차한 역이지만 탑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마저 내리는 사람도 나 혼자다. 1분 간의 정차시간이 지나 누리로는 출입문을 닫고 청량리를 향해 유유히 떠난다.
그간 몇 번 지나쳤던 곳을 이제야 마음먹고 찾아왔다. 한 번쯤 오겠다고 다짐하고 나서 몇 년이 지났을 거다. 이런 저런 것에 묻혀 살다가 오는 셈이다. 열차가 지나간 다음 플랫폼에서 도계, 태백 방향의 선로와 동해, 강릉 방향의 선로를 돌아본다. 역 주변이 조용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황량하진 않다.
몇 번 지나칠 때는 몰랐는데, 산 중턱에 있는 듯한 기차역과 주변에 있는 마을이 보다 편안하게 다가온다.
영주역 기점 127.6㎞. 기점인 영주역까지 절대로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 신기역의 역사
- 1940년 7월 31일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 1950년 1월 29일 역사 소실
- 1958년 8월 1일 역사 신축 준공
- 1977년 7월 1일 화물 취급 중지
- 1992년 1월 22일 현재 역사로 이전
- 1993년 4월 10일 소화물 취급 중지
- 1997년 11월 20일 무궁화화 통일호 열차 정차 및 철도승차권 단말기 설치
- 2004년 4월 1일 통일호 폐지로 무궁화호만 정차
- 2010년 5월 17일 승차권 차내 취급 지정 및 철도승차권 단말기 철거
- 2020년 3월 2일 당역 정차하는 태백선 열차 누리로로 변경
관심을 많이 못 받는 역이라 역명판과 각종 표식에서 시간의 흔적이 나타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모습이 더욱 고색창연하게 느껴진다. 낡았다고 멋이 없는 게 아니라 낡은 것 나름대로 멋은 있는 것이다.
플랫폼의 놓여진 벤치도 고색창연함을 배가시켜준다. 플랫폼과 주변 분위기와 뭔가 어울리는 멋이 있다. 예전이었다면 멋들어진 분위기와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더욱 어우러졌을 것이다. 열차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삼삼오오 벤치에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모습이 그려진다. 교통이 발달하고, 젊은층의 이촌향도가 가속화되고 시골 마을이 점차 힘을 잃어가면서 이런 모습도 점차 옛말이 되어 간다.
시간의 그림자가 기차역에서 느껴지는 모습이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예전에는 맞이방의 출입문 주변을 동굴의 형상으로 꾸며 놓은 적이 있었으나 오래 전에 옛말이 되었다고 한다. 동굴의 형상으로 꾸며 놓은 것도 이유가 있었는데, 역 주변에 삼척의 명소인 환선굴이 있기 때문이다. 삼척 역시 인접 도시인 동해와 마찬가지로 석회암 지대로 동굴이 발달한 곳이다. 듣기로 역에서 동굴까지 차량으로 10분에서 15분 내외의 위치에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지역의 명소를 적극 홍보하는 듯 했다.
동굴의 형상은 온데간데없이 나무가 구름사다리 형태로 방문객들을 반겨준다. 돌로 제작된 석재와 둥그스름한 돌로 둘러쌓인 조그만 텃밭에 있는 조형목이 아기자기하다. 역의 멋을 한껏 살려준다.
나무 덩굴 아래에 있는 벤치도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제격이란 생각이다. 산 중턱에 있는 역치고는 사람 친화적인 역이라 하겠다. 근처에 지나가다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역을 방문해 쉬고 가는 것도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덩치와는 다르게 맞이방은 단촐하다. 규모는 단촐하지만 여객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불편함은 없다.
다만,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객 수요가 미미한 탓에 2010년에 철암역과 함께 승차권 차내 취급역으로 지정됐다. 승차권 차내 취급역으로 지정되면서 승차권 발매단말기가 철거되었다. 한편, 철암역은 중부내륙순환열차와 백두대간협곡열차의 개통과 맞물려 승차권 차내 취급역에서 승차권 발매역으로 재지정되면서 매표창구가 다시 운영되기에 이른다.
승차권 차내 취급역으로 전환된 이후에 수요 부족으로 여객열차도 점진적으로 감축되어 지금은 상행 4회, 하행 3회 등 총 7회의 여객 열차만이 정차한다. 정차하는 열차를 보더라도 이곳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쇠퇴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교통의 발달과 인구 감소가 이어지면서 여객 열차의 감축까지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역사가 우뚝선 존재이다. 주변 마을과 비교해봤을 때 역사가 뭔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러한 이질적인 점이 기차역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모습이다.
주변 민가와 큰 도로로 가는 길은 여느 시골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게 왠지 모르게 좋다. 낯선 사람의 등장으로 열렬히 짖어대는 개 말고는 전반적인 마을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편안하다.
가끔 시골 마을로 가고 싶은 이유도 조용한 분위기 속에 마음의 안정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주요 기차역보다 이렇게 시골에 있으면서 역직원들도 있는 역들을 선호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분위기도 좋았고, 역직원들도 정말 친절했다.
조용하고 편안한 곳에 왔으면 걷는 것이 인지상정. 동해로 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길을 따라 걸었다.
동굴의 형상을 한 조형물을 통해 삼척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하다. 주변에 환선굴과 또 다른 동굴인 대금굴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환선굴도 유명하지만 대금굴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서 가치가 높은 곳이라고 한다.
사진에는 없지만, 길 건너편에 마트와 같이 운영되는 시외버스정류소가 위치하고 있다. 위치와는 다르게 기차가 아니더라도 역을 오고갈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건널목의 느낌이 뭔가 색다롭다. 건널목의 형태와 위치가 전에 보던 것과는 달라서 신기로웠다.
건널목하면 떠오르는 표지판과 구성 요소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시간여행하기에 정말 충분했다. 편안함 속의 시간여행으로 정의하고 싶은 마음이다. 다시 역으로 걸어가는 길이 따뜻하기만 하다.
역직원의 안내를 받아 기다리는 동안 8236호 전기기관차가 견인하는 무궁화호가 구내로 들어오고 있다. 1682 열차는 1682 열차인데, 내가 기존의 이용하던 것과는 또 다른 차이가 존재한다. 종착역이 강릉이 아닌 동해가 되겠다. 1682 열차 자체는 몇 차례 이용하던 열차지만, 행선지가 강릉이 아닌 동해란 사실이 신선하기만 하다.
이번에도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타는 사람은 그저 나 혼자다. 신기역에서 겪었던 하루는 따뜻하고 마음 편안한 날이었던 데 반해, 한편으로는 시골 기차역들의 어두운 단면도 같이 보게 되어서 쓸쓸함도 공존했다. 불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시골 기차역들도 사람이 북적이고 마음 편안한 기분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마지막 사진은 역에서 내리자마자 찍었던 광장 방향 역사 사진이다. 이번 답사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개인적으로 잘 찍었다고 생각한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역사 사진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신기역에서 느꼈던 동굴과 철도 사이의 신기로움은 조용함과 편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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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로애락이 깃든 철암역을 이대로 끝내기가 아쉬웠다.
몇 번의 실패와 결국에는 성공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를 전해줬던 역이라 미운정 고운정 다 든 곳이기도 하다.
철암역에서 역사와 기관차들 뿐만 아니라 역의 상징이기도 한 저탄장까지 담을 수 있어서 보너스의 개념으로 카메라에 담았던 저탄장도 올리려고 한다.
철암역의 저탄장은 역의 상징이자 동시에 무연탄, 탄광이라는 대명사 같은 존재이다.
정식 명칭은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이다. 1935년에 일제강점기에 걸립된 저탄장으로써 과거 조선총독부가 삼척, 태백 지역에 많이 나는 무연탄을 선별하고 가공해서 운반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라고 한다. 동시에 해방 이후 우리나라 근대산업사의 상징적인 시설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시대적인 풍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은 2002년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21호로 지정받았다.
저탄장은 철암역의 상징이면서 우리나라 산업 역사상 보물과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기관차 뿐만 아니라 역직원이 흔쾌히 저탄장까지도 사진을 찍도록 배려해주었다. 철암역에서 현재 운행되고 있는 전기기관차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전기기관차와 등록문화재인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까지 모두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행운마저 누릴 수 있었다. 기꺼이 동행해주고 배려해줬던 역직원에게 정말 감사하다.
한편, 철암역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가 바로 제목에서처럼 「인정사정 볼 것 없다」란 영화를 통해서였다. 유명한 영화배우인 안성기씨와 박종훈씨, 장동건씨와 최지우씨가 열연을 했던 영화였는데, 영화가 상영된지도 어느덧 20년이 훌쩍 지난 영화이다. 1999년에 나온 상영된 영화였는데, 당시 청룡영화제에서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역작 중에 하나였다. 구조적으로 잘 녹여냈다는 호평을 받는 영화였다. 어찌됐건 철암역은 내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미운정 고운정을 전해준 그런 기차역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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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차 하나로 희로애락을 가져다줬던 철암역
이제서야 철암역이라는 존재에 대해 마무리를 한다.
일찌감치 끝을 내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과는 달리 무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철암역은 기관차 하나로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을 주었던 기차역으로 스스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3전 4기라는 말처럼 세 번은 실패해서 때로는 분노와 때로는 슬픔의 감정을 안겨줬다면, 마지막 네 번째는 그토록 희망했던 8000호대 전기기관차의 최후기형이라고 할 수 있는 8093호 기관차와 8094호 기관차를 담게 되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주기도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철암이라는 지명과 존재에 대해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실패를 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라는 유쾌함, 그리고 희로애락은 인생에서 떨어뜨릴 수 없는 표현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받아들이고 그걸 이용해 즐길 줄 아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답사가 내겐 많은 인생의 공부가 됐던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철암역의 근대문화유산인 저탄장과 8000호대를 비롯한 기관차를 마음 편히 담을 수 있게 안내해준 역직원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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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중심 - 영동선 석포역 (2019. 5. 29)
그토록 고대하던 8000호를 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석포역으로 향했다.
솔직히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을 모두 놓쳤던 탓에 마음 속으로 전해지는 씁쓸함이 더했다.
씁쓸함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태백에서 석포로 가기 위해 하루에 두 번 밖에 없다던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태백을 벗어나는 동안 탄광 도시라는 이미지에서 주듯 화창한 날씨와 대비되는 우중충한 이미지였는데, 동점역을 지나 태백과 봉화의 경계지점은 육송정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육송정에서 아름다운 비경이 조금씩 펼쳐지기 시작하더니 석포로 가는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폭이 좁은 1차선 군도를 달릴 무렵 비경이 점점 아름다운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살면서 이런 모습을 마주해본 적이 없던 터라 속으로 이런 곳도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실감했다.
40분이 지나 석포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의 주제에기도 한 백두대간의 중심 희망 석포에 도착하였다.
석포에 오면서 마주했던 감정은 신기함이었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던 시골 도로를 달려 도착한 장소에 시골이라는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공장이 있고, 기차역을 중심으로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이 있어서였다. 처음해보는 경험에서 느껴지는 신기함과 생경함은 더했다. 신기하기도 했고, 생경하기도 했다.
이러한 처음 느껴보는 경험과 가는 동안 펼쳐진 아름다운 비경을 바탕으로 8000호대를 두 번 놓쳤던 아쉬움과 씁쓸함이 많이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백두대간의 중심, 희망 석포라는 표지석 뒤로 보이는 공장이 바로 영풍제련소이다. 참고로, 영풍문고의 그 영풍이 맞다. 커다란 도시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러한 시골 마을에 있을 건 다 있다. 관공서부터 노래방도 있을 정도로 다른 시골역들과는 다르게 역세권이 튼실한 편에 속한다.
석포역 앞에 위치한 제련소와 역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 석포역의 존재 이유가 되겠다.
○ 석포역의 역사
- 1956년 1월 1일 영업 개시
- 1957년 1월 17일 구 역사 신축 준공
- 1971년 ㈜영풍 전용선 신설
- 1996년 12월 20일 현 역사 신축 준공
- 2006년 5월 1일 소화물 취급 중지
- 2016년 7월 4일 석포역 근처 굴현터널에서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 탈선 사고 발생
1971년부터 영풍제련소의 전용선이 신설됐으니 제련소와 석포역의 역사가 긴 시간 동안 함께해온 셈이다. 긴 시간 동안이나 영동선 철도가 태백을 지나서 만나는 경상북도의 첫번째 관문이 되는 기차역이기도 하겠다. 동시에 봉화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기차역이기도 하다.
역사를 보면 마치 충북선의 그것이 생각나는 건 순전히 기분 탓일 것이다. 역사가 욕설로 통용되는 철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충북선의 모습을 그대로 복붙해서 넣은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사실, 석포역과 가장 똑같은 형태의 역은 아이러니하게도 강원도 영월에 있는 태백선의 쌍룡역이라고 한다.
석포역도 여객보다는 화물이 주가 되는 역이고, 쌍룡역도 여객보다는 화물이 주가 되는 역이다. 다만, 비철금속과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석포역과 시멘트를 비롯한 광물을 취급하는 쌍룡역의 취급 품목이 다른 차이가 있다. 여기에 승차권 발매를 하고 있는 석포역과 달리 쌍룡역의 경우 2017년 6월 무렵 동백산역과 함께 승차권 발매가 중단됐다고 한다.
모순이라는 말을 바로 이런 곳에 두고 하나 보다. 주변 마을도 편안한 풍경이고, 주변 경치는 꽤 아름다운 편인데 반해, 이러한 마을과 경치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제련소가 자리잡고 있어서였다.
길게 생긴 역사와는 달리 맞이방 내부는 보이는 게 전부다. 즉, 여객취급과 승차권발매도 하긴 하지만, 여객취급과 승차권발매는 어디까지나 부라는 의미. 역 앞에 있는 제련소에 필요한 화물취급이 주라는 의미.
인터넷에 보여진 사진과는 달리 맞이방 내부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철도청 시절의 마스코트이자 캐릭터였던 치포치포가 뜯겨졌고, 맞이방의 한 가운데에 달려 있던 샹들리에도 떨어져 나갔다. 샹들리에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는 LED 전등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맞이방 한 편에 와이파이도 설치되어서 짧은 시간 동안 편리했다.
또, 승차권 매표창구 위에 있던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가 옆으로 옮겨져 보다 깔끔한 형태로 정리되었다.
매표창구 옆에 안전 강조 포스터들이 보이는데, 화물취급이 주가 된 역이고, 각종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특성 탓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목적이 더욱 강했을 것이다.
매표창구 옆에 있는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를 보면, 무궁화호가 4왕복이고, 이 중에서 강릉과 부산을 오고가는 1691, 1692 무궁화호 열차는 주말 한정으로 다니는 열차이니 평일의 경우에는 무궁화호 3왕복이 전부라는 이야기다. 여객열차 편수가 극히 드물다고 느껴지겠지만, 무궁화호 1671, 1672, 1673, 1674, 1681, 1682, 1691, 1692 이 열차들이 영동선 구간을 운행하는 모든 열차이다.
여기에 봉화에 있는 임기, 현동, 승부, 분천 같은 경우 4왕복, 3왕복의 열차가 전부 운행을 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석포역이 영동선에서는 나름 규모가 큰 역이라고 하겠다.
석포는 임기, 현동, 승부, 분천에 비해 주변 역세권 형성이 되어서 1왕복, 2왕복이 더 정차하는 셈이다. 여객수요야 도토리 키재기겠지만, 봉화에 위치한 다른 역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여객수요가 있는 편에 속한다.
근본적으로 시골역은 시골역만이 주는 정겨움을 가지고 있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포근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화물이 주가 되는 역이지만, 역 한 편에 놓여진 돌탑처럼 이 속에서 뭔가 정겨움을 추구했다는 점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제련소를 등지고, 광장 방향을 바라본 역사의 풍경은 편안함을 더해준다. 붉은 벽돌로 밋밋해보이는 역사를 뒤로한 마을이 정겹다.
살아가면서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위에 있는 사진이 태백, 철암 방면이고, 아래에 있는 사진이 승부, 봉화 방면이다.
가는 방향에 상관없이 영동선의 굽이 도는 철길의 모습, 산과 강, 계곡이 전해주는 절경과 비경이 전해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석포역을 떠난 열차는 그게 상행이던 하행이던 산과 강,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 목적지로 향하게 된다.
유개화차를 비롯한 각종 화차들로 역 구내가 상당히 부산스럽다. 내가 갔을 때도 업체 직원들과 석포역의 직원들이 부지런히 역을 오고가고 있었을 정도였다.
영주 기점 76.8㎞.
플랫폼에서 석포역이 영주 기점으로 76.8㎞에 위치해있음을 빼꼼히 알려주고 있었다. 영주와 봉화 간의 행정구역상으로도 붙어있는 데 반해, 거리로는 꽤 멀다라는 걸 알려주고 있는 지표라 생각한다.
동시에 봉화 땅이 얼마나 넓은지도 알려주는 또 한가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1682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총 3명이었다. 빈약한 열차편수처럼 여객수요도 다른 연선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편이었다.
8000호대를 놓친 아쉬움과 달리 석포역의 파노라마 사진은 괜찮게 나왔다. 가기도 힘든 탓에 구하기 힘든 석포역의 승차권과 입장권까지 얻었으니 마이너스가 있으면 플러스가 있나 보다.
여기에 아름다운 비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련소의 모습, 아기자기한 석포 마을 등 다양한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던 날이 아니었나 싶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항상 마지막은 파노라마 사진이 되겠다.
보면 알겠지만, 사진도 잘 나왔고, 깨끗하게 나왔다고 느껴진 사진이라 만족감이 배가 된다.
뭔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존재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조화되어 놓여진 모습이 내겐 한편으로 여러 생각을 갖게 한다. 하다못해 사람마다도 전부 제각각이지 않은가.
마이너스가 있으면 플러스가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게 다 그런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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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역에 자리한 또 다른 보물 철암남부건널목 (2019. 5. 29)
철암역에 자리한 또 다른 보물 철암남부건널목이 되겠다.
철암남부건널목이 유명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수동건널목이기 때문이다.
수동건널목은 쉽게 말해 관리원이 차단기를 수동으로 레버를 조작하는 건널목을 뜻한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주로 사용된 방식이었는데, 현재는 이와 같은 수동건널목이 철암을 제외하고는 전국에 몇 개 남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8000호대 전기기관차 뿐만 아니라 수동건널목까지 지니고 있어서 철도의 보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데다가 철암마을의 풍경가지 어우러져 있어 이만한 보물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적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철암역의 모습이 지금 보면 더욱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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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를 좋은 기대감을 안고 동백산을 찍고 철암으로 왔다.
철암역은 2016년에도 승부, 양원, 비동을 가기 위해 한번 들른 적이 있었고, 지난 4월 초순에도 다시 철암역을 찾았으니 3년 사이에 3번 동안 철암역을 찾은 셈이다.
8000호대 전기기관차는 후기형인 8091, 8092, 8093, 8094호까지 총 4대만 남아있는 기관차인데, 마징가와 닮은 구석이 있는 탓에 철덕들 사이에서는 마징가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지금이야 영주와 철암 사이에서 화물만 끄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왕년엔 무궁화호, 통일호를 가릴 것 없이 여객열차도 견인했던 든든한 존재였다.
쉽게 보이던 8000호대도 퇴역을 거듭하면서 현재는 후기형으로 불리는 4대의 기관차만 현역으로 뛰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흔히 보이면 무덤덤하다가 귀해지면 애지중지해진다는 말처럼 주변을 겪어 보면 꼭 그런 것 같다. 8000호대도 어릴 적에도 몇 번 봤던 것 같아 무덤덤했는데, 이제 와서 보면 꼭 보고 싶은 존재가 바로 8000호대이다.
여기에 이제는 4대 밖에 남지도 않은 데다가 운행하는 구간도 영동선 일부 구간에 지나지 않아 레어템을 넘어 이제는 보물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햇볕이 쾌청하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있으니 지난 번의 실패를 뒤로 하고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갖고, 8000호대를 찾기 시작한다.
8500호대 전기기관차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사실, 역에 막 도착했을 때 역사로 들어가는 역직원을 만나 촬영 허락을 받고, 8000호대의 거취부터 물어봤으나 돌아온 답변이 8000호대가 오늘 안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요즘 들어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부연설명도 이어졌다. 혹시나 해서 허락을 받고 플랫폼에 올라왔는데, 역직원의 설명이 정확했다.
8000호대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과 이번에도 쓰디쓴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호기 있게 나섰으나 결과는 비참했다고 해야할까. 그래도 이번에는 의욕을 가지고, 시간을 들여 왔는데, 두 번 연속 실패란 사실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8000호대와의 인연이 없는 것이란 생각마저 들 정도이니.
그래도 기왕 온 거 주변 기관차들도 담고, 철도의 역사적 유산인 수동건널목이 있는 철암남부건널목을 둘러보기로 마음을 먹고, 시원한 바람을 쐬며 둘러본다.
○ 철암역의 역사
- 1940년 8월 1일 영업 개시
- 1956년 7월 31일 역사 신축 준공
- 1961년 11월 16일 5급역으로 승격
- 1985년 9월 22일 역사 신축 준공
- 1986년 5월 1일 4급역으로 승격
- 1991년 1월 10일 5급역으로 격하
- 1999년 7월 1일 열차 운행 체계 합리화로 철암 착발 열차 중지
- 2002년 5월 31일 철암역 연탄시설 등록문화재 제21호로 지정
- 2006년 5월 1일 소화물취급 중지
- 2010년 5월 17일 승차권 차내취급역 지정 및 매표업무 중지
- 2013년 4월 12일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 운행 개시 및 철암역이 시·종착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철암 착발 열차 중지 해제, 매표업무 재개시, 중부내륙순환열차 O-Train 운행 개시
- 2018년 1월 26일 KBS 전국노래자랑 강원도 태백시편(2018년 2월 11일 방송)의 최우수상 시상 정태영 <천년의 사랑>
단연 눈에 띄는 점은 2002년 철암역의 연탄시설이 등록문화재 21호로 문화재청에 의해 지정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철암역의 상징성은 무연탄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다. 주변 역세권이 미약하고, 여객수요는 많지 않지만, 무연탄을 비롯한 화물수요는 다른 역들을 크게 뛰어넘을 정도로 유명하다. 화물의 용산역이라는 말처럼 화물의 물동량은 꽤 많이 나가는 축에 속한다. 무연탄 산업이 산업합리화에 의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태백 지역의 인구 감소와 도심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으니 무연탄이 부가가치 창출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쉽게 짐작할만하다.
여객도 과거에는 철암의 착발 열차가 1999년까지 존재할 정도로 여객에서도 나름의 입지를 발휘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만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무연탄 산업이 사양화되면서 인구 감소가 나타나면서 철암역도 2010년에 승차권 차내취급역으로 지정되는 비운도 경험하게 된다. 이후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태백 봉화 지역의 관광 자원을 활용한 백두대간협곡열차와 중부내륙순환열차 등이 새롭게 생겨나면서 철암역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승차권 차내취급역으로 지정되면서 매표창구의 운영이 중지되었다가 이 시기에 맞물려 다시 매표업무를 재개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열차 시·종착역으로 지정이 되었으니 여객에서도 예전의 입지만큼은 확고히 되찾았다고 하겠다.
연못에 눈사람도 있고, 사슴도 있고, 물레방아도 있다. 조그만 연못이 제법 그럴듯하다. 그런데, 정작 연못에 물이 없다. 개인적 상황을 대변하는 장면인 것 같아 카메라에 담아봤다. 뭔가 큰 기대를 품고 왔는데, 기대한 결과물이 없는 상황이다. 연못을 보고, 혼자 멋쩍게 웃었다.
왠지 스스로 이해하게 되고, 절묘한 상황도 겪게 되어 화가 났다기 보다는 뭔가 웃어넘길 수 있었다. 뭔가 역설적이면서도 재밌는 상황을 겪어서 그래도 운세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 내부를 둘러보며 뭔가 엔티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리모델링을 했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뭔가 고풍적인 멋도 곳곳에서 베어나오는 것 같았다. 역사가 트여 있어서 선선한 바람과 맞물려 꽤 시원했다.
백두대간협곡열차가 막 떠난 시점이라 맞이방도 그렇고, 역사가 한산했다.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있기 전에는 사람들로 붐볐을 것으로 생각한다.
맞이방 한 켠에는 진폐증이라는 시가 있었다. 시간에 쫓겨 시를 음미하지는 못했는데, 무연탄으로 발전했던 이면에는 무연탄에서 나오는 먼지들로 인해 광부들에게 진폐증, 규폐증 같은 전혀 달갑지 않은 상처가 주어졌던 것이다.
한편, 액자로 소개된 주요 명소들도 언제 시간이 될 때 가보기로 하고, 마음 속에 넣어둔다. 시간이 되어서 석포역으로 떠나려고 할 무렵 역 한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님이 먹거리를 건네준다. 공짜로 받아먹기가 부담스러워 한사코 사양했는데, 이것 저것 챙겨주시면서 이모님들의 훈훈한 정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았던 것 같다. 말씀을 못 드리고 나왔는데, 온라인상으로나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역의 구석에는 휴식 공간도 겸할 겸해서 철암의 상징이기도 한 무연탄산업의 전성기 시절 모습을 담은 사진이 담겨 있었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사진이어서 왠지 모르게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철암과 무연탄이 동의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는 사진이랄까. 한 편의 역사라고 해두고 싶다.
석포로 떠나기 전에 엔티크한 철암역의 역사를 담아본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철암역은 한 가정을 지탱했던 가장의 모습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과거 무연탄을 비롯한 석탄으로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우리나라 경제에 적지 않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였다.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는 가장들이 어디에서든 건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한, 다음번에 철암역에 왔을 때는 꼭 철도의 보물 8000호대 전기기관차를 꼭 담을 수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희망도 덧붙여본다. 기왕이면, 가장 최후기형인 8094호를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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