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의 미강역 - 중앙선 화본역 (2018. 10. 13)
탑리, 희방사는 화본에 비하면 정말 양반이었다.
답사를 했던 역들 중 화본이 가장 난관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교통은 불편했고, 열차편은 탑리보다도 1왕복이 적은 2왕복이라 일정을 짜는 데 있어서 여러모로 머리가 아팠다.
탑리에서 화본으로 가기 위해 역직원에게 교통편을 문의한 결과 택시를 이용하는 게 가장 편하고 빠른 방법이라는 답을 얻었다.
실제로 탑리시외버스터미널이 존재하고 있기는 하나 우보까지 가는 것이었고, 우보도 화본과는 반대 방향에 있어서 시간과 비용이 그만큼 든다는 설명이었다. 어차피 우보에 가서도 화본까지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 날도 의성탑리오층석탑을 구경한 다음 터미널 근처에 있던 개인택시를 이용하기로 정하고, 역직원도 탑리에서 화본까지 택시 비용으로 대략 2~3만 원 가량 든다는 설명이었고, 개인택시 사무실에서 기사님에게 비용 문의를 해본 결과 역직원의 설명과 똑같아서 결국 탑리에서 화본까지 택시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개인적으로 시골 지역이라 왕복비용까지 5만 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터라 이동수단으로 택시를 결정하게 되었다.
탑리에서 대략 25분 정도 지났을까... 난관으로 설명할 수 있는 화본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국도변을 지나다가 마주치는 여느 시골마을의 풍경이었다. 한적한 분위기가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중화요리 음식점의 이름이 말 그대로 "철가방"이었다. 심플하면서도 의미 전달이 확실했다. 마케팅을 잘 하려면 네이밍을 잘해야 한다는 진리를 확인시켜준다.
"리틀 포레스트"는 오늘의 주인공인 화본역과 더불어 화본마을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준 영화라 하겠다. 실제로 화본역과 역전상회가 영화의 촬영지로 등장했다고 전해진다.
직접 영화를 감상하지 않아서 뭐라고 평하기는 뭐하지만, 영화를 시청한 지인에 따르면 풍경은 좋고, 의도는 좋았지만, 모방성이 있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뒤이어 설명하겠지만, 2010년에 나온 드라마인 도시락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역이기도 하다.
스토리나 전개가 어찌되었건 각각 2010년과 2018년에 등장한 도시락과 리틀 포레스트를 통해 화본역과 화본마을이 사람들에게 명소로 알려진 건 분명한 사실이라 하겠다.
가을 녘에 들어가는 간이역의 모습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자연과 사람이 만든 조형물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모습 말이다.
사실, 화본역의 초창기 모습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접역인 우보역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했는데, 역사의 양식이 특히 그랬다. 물론, 화본역 주변에는 민가와 마을이 있지만, 우보역 주변에는 민가나 마을이 크게 있지 않다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화본역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점은 2010년 군위군이 그린 스테이션 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다. 화본역과 화본마을을 지금처럼 새롭게 조성하면서 현재 모습이 갖춰졌다고 한다.
이와 관련되어 한 가지 비화가 존재한다. 뭐냐면, 화본역도 우보역처럼 무인화의 대상에 포함됐다고 한다. 그러다가 군위군의 주도로 그린 스테이션 사업이 추진되고, 다양한 방송매체들, 그러니까 시사교양, 오락, 드라마 프로그램 등을 통해 화본역과 화본마을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화본역도 무인화의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한편, 앞서 말한 도시락에 대해 설명도 추가로 해야할 것 같다.
2010년 모 지상파 채널의 일일 단막극 형태로 나온 "도시락"이라는 드라마에서 화본역은 미강역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는데, 폐쇄를 앞둔 역과 관련된 사람들의 아픔과 추억을 고스란히 담은 스토리로 등장한 바가 있다. 화본역뿐만 아니라 전라남도 화순 지역도 배경으로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날 시청한 소감으로 스토리와 더불어 지역을 뛰어넘어 영상에 비친 풍경과 배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한, 당시 내로라하던 배우들도 다 나와서 단막극치고는 배우들의 무게감이 꽤 있었다.
비록 미강역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을지언정 무인화가 거론되던 화본역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것 같아 마음 한편으론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이 날도 열차를 이용하려는 주민들보다 오히려 역과 주변 마을지역을 관광하려던 관광객들의 수가 더 많았던 게 사실이었다.
비록 현대에 맞게 꾸몄다고 하나 역의 클래스는 그대로다.
역이라는 하나의 개념을 뛰어넘어 관광지로 변모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시대에 맞게 꾸몄음에도 주변 자연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점이 마음에 든다.
역의 광장 한켠에는 말로만 듣던 박해수 시인의 "화본역" 시비가 놓여있었다. 박해수 시인은 화본역뿐만 아니라 건천역 등 다양한 역사들의 특징들을 반영한 시를 써서 철덕들에게 더욱 친숙한 시인이기도 하다.
화본역의 또다른 특징 중에 하나다. 역명판이 현재 신형 CI를 반영한 역명판과 오랜 옛날의 역명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역 중에 하나다. 이른바 현재와 과거의 역명판을 동시에 가진 역이 몇 개 안되는 걸로 알고 있는 데 화본역이 이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과거의 모습을 가지면서 동시에 현재에 맞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화본역이 가진 커다란 매력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 화본역의 역사
- 1936년 12월 10일 현재의 역사 준공
- 1938년 2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 1977년 5월 1일 화물 취급 중지
- 1990년 1월 1일 소화물 취급 중지
- 1997년 6월 1일 봉림역 관리역으로 지정
- 2006년 12월 22일 역사 지붕 개량 및 보수
- 2006년 12월 28일 박해수 시인의 간이역 시비가 세워짐
- 2011년 리틀 포레스트 사업에 따라 역사 개수
- 2022년 중앙선 복선 전철화에 따라 역사 이설 예정
역이 관광지로 발돋움함에 따라 역사 바로 앞에도 화단을 꾸미려고 하는 것인지 흙으로 화단의 형태가 얼추 만들어졌으며, 비료가 놓여져 있었다.
역사 내부는 시대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이야 잘 사용하지 않는 통표걸이부터 전호깃발과 과거 철도청 시절 각종 매뉴얼까지 진열장에 놓여있었다. 또한, 과거 추억이 담긴 사진도 있어서 철도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점도 꽤 인상깊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열차, 철도차량들과 열차등급, 그리고 승차권들도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된 점도 정말 보기 좋았다. 정말 짜임새있게 잘 정리가 되어 있어 철도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보다 철도에 더욱 친숙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모습들을 볼 때 화본역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수 있다고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같다.
철도에 관심이 있거나 코레일에서 발매하는 기념입장권을 수집하는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화본역의 기념입장권에 들어있는 도안들이다. 저 사진들이 화본역의 기념입장권 안에 들어있는 셈이다.
사실, 역세권이 미약한 터라 기념입장권이 화본역의 주요 수입 중에 하나다. 급수탑과 플랫폼에 입장하려면 승차권을 끊어서 열차가 도착할 시간에 들어가거나 기념입장권을 발매해야 하기 때문인데, 일반입장권과 달리 기념입장권의 경우 장당 1,000원의 요금을 내고 구매하는 존재라서 그렇다.
즉, 기념입장권은 동시에 하나의 입장료 정도로 보면 될 듯 하다.
한편, 화본역도 도라산역, 정동진역처럼 두 종류의 입장권을 판매하는 역 중에 하나인데, 정동진역의 경우 시기별로 한 장씩만 판매하는 반면, 화본역의 경우 시기에 상관없이 두 장을 모두 구매할 수 있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서울역의 기념입장권과 더불어 화본역의 기념입장권도 이 날 구매할 수 있어서 만족이다. 이와 별도로 탑리역의 승차권과 화본역의 승차권도 함께 구매를 했다. 왜냐하면, 이들도 수집하고자 했던 대상이었으니까.
어린이들에게 친근한 존재인 토마스 기관차와 고풍스러운 클래식카에 탑승한 레고, 그리고 화본역의 역사까지 승차권 발매창구 한편에 놓여있는 것들인데, 아마 철덕이나 철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놓은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분야를 뛰어넘어 관심과 애정은 활력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매표창구와 모니터 옆에 있는 열차시간표를 보면 두 가지가 보일 것이다.
첫번째는 신녕역과 동일한 열차가 정차하는 동병상련이라는 것과 두번째는 시간표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대로다. 화본도 승부 못지않게 찾아가기가 힘든 편에 속한다. 부산이나 대구처럼 남부지방에 거주하고 있다면 열차시각에 맞춰 찾아가겠지만 수도권이나 중부지방에서 찾아가려면 말 그대로 작정하고 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지닌 매력을 꼭 접하고 싶기에 찾아가게 된다.
화본역의 상징인 급수탑에 물을 공급하는 급수정이 있는 곳인 것 같다. 급수정 내부에는 급수탑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는 데, 과거 증기기관차가 어떤 식으로 운행을 했는지에 대해 보다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증기기관차를 거쳐 디젤기관차, 그리고 전기기관차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시대에 걸맞게 많은 것들이 발전했다는 생각이다.
화본역의 상징이자 명물인 급수탑이다. 열린 공간에는 고양이와 함께 있는 여인상이 있고, 급수탑을 둘러싸고 있는 담쟁이덩굴과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특히, 수확을 앞둔 가을 논밭의 풍경과 어우러져 언출하는 풍경이 가히 환상적이다. 급수탑을 직접적으로 접해본 것 역시 이 날 처음이었는데, 급수탑도 좋은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또한, 1930년부터 고스란히 이어져온 것이니 보물로 불리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급수탑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거리표를 발견한다.
청량리 기점 312.4㎞. 한마디로 멀다.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좁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절대로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영토를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작아보일 뿐이지 우리나라 영토가 좁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당장 수도권에서 남부지방까지 이동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 다녀오면 기운이 빠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절대 작은 영토가 아니고, 위축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렇게 포스팅을 하면서 직접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며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기차역들은 가을의 청명한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에 계절별로 사계를 담고 싶다는 욕구도 든다.
집안에 정물 사진으로 걸어두고 사람들과 같이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 자부심도 덤으로 느껴진다.
역사의 사진도 여러 장으로 담고 싶었다. 왜 이렇게 중복된 걸 올리냐고 하겠지만, 그래도 여러 장으로 남기고 싶다.
역사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끼며,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모습에 감동에 젖어든다.
급수탑과 또다른 명물인 새마을호 객차들이다. 진짜 새마을호가 지난 4월에 일선에서 퇴역하면서 완전한 역사이자 명물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열차의 전두부를 보면 PP동차의 상징인 동력차로 볼 수 있으나 사실은 저건 모형이다. 즉, 진짜가 아니란 소리.
부수 객차들은 진짜지만, 전두부는 새마을호의 식당차에다가 모형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나도 육안으로 처음 봤을 때 동력차로 혼동했을 정도로 절묘한 모습을 띄고 있었다.
새마을호 객차가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에 급수탑과 하나의 명물임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급수탑과 함께 한적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새마을호를 통해 시간여행이 충분히 가능하다 하겠다.
아무 생각없이 찾아간 곳인데, 저곳이 바로 화본역의 관사라고 한다. 정말로 지도나 이런 것들을 안보고, 우연히 화본마을을 둘러보다가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일본식 건물양식을 지니고 있어서 신기하기도 해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해봤는데 화본역 관사가 맞다고 한다.
급수탑도 처음이요, 관사도 처음이다. 일본식 건축물도 처음 보고, 횡재했다는 표현이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나 보다. 정말 횡재했다.
옛 산성중학교의 건물이다. 학교는 폐교된 상태이고, 폐교된 건물을 이렇게 옛날을 추억할 수 있도록 꾸몄다고 한다. 열차 시간도 거의 다 됐고 해서 안에 들어가보진 않았다. 들어가려면 소정의 입장료가 있다고 한다.
다음에 화본역을 다녀올 때는 꼭 들리기로 마음 속에 저장해둔다. 어른들이 추억할만한 공간으로 꾸몄다고 하던데 사뭇 기대된다.
화본역 관사와 산성중학교를 둘러보고 다시 역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역 플랫폼으로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역에서 사진도 찍고, 정모를 쓰며 추억에 떠올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기차와 역,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조화가 되는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 외부에는 자연과 계절, 사람들이 만든 모든 것들이 어울리고 있었다.
깊은 여운이 남는다, 깊은 여운을 달래고자 역사 사진과 박해수 시인의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동안 잘 몰랐던 조화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게 사람이건 자연이건 말이다.
화본역은 사람과 자연, 과거와 현재가 조화되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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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본역
병술년 박해수 짓고 류영희 씀
꽃 진 물자리
젖꼭지 달렸네
자다 잠 깬
꽃물 든 목숨이네
선 자리 꽃자리
꽃 뿌리 눈물 뿌리
방울새 어디서서 우나
배꽃 메밀꽃 베꽃
배꼽 눈 보이네
배꼽도 서 있네
눈물 든 급수탑
억새풀
고개숙인 목덜미
눈물 포갠 기다림
설렘은 흰겨울 눈꽃에 젖네
어머니 젖꽃 어머니 젖꽃
젖꽃 실뿌리 실 실 실 웃는 실뿌리
오솔길 저녁 낮달로 떴네
어머니 삶꽃
젖빛으로 뜬 낮달로 떴네
오솔길 꽃 진 길 가네
산모롱 굽이 굽이 돌아
돌아누운 낮달 따라가네
낮달 따라 꽃 진자리 찾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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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鐵道) > 역(驛)'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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