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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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답사기를 꽤 오랜만에 포스팅을 하는 것 같다.

 

이번 포스팅의 주연인 분천역을 답사했던 시기가 작년 6월 여름 초입에 들어가던 날씨였는데, 포스팅을 하는 지금은 겨울이라 뭔가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비록 답사 당시에는 여름이었지만, 사실 분천역은 어느 역보다 겨울이 잘 어울리는 역이다.

 

영동선의 역들이 그렇듯 분천역 역시 아름다운 역으로 손꼽히는 역 중에 하나일 것이다.

 

 

 

○ 분천역의 역사

 

- 1956년 1월 1일  보통역으로 개업

 

- 1957년 3월 3일  현재 역사 신축 준공

 

- 1994년 1월 1일  소화물 취급 정지

 

- 1997년 3월 1일  승강장 설비 개량

 

- 1997년 9월 10일 시설관리반 신축 준공

 

- 2008년 11월 1일 화물취급 중지

 

- 2013년 4월 12일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 중부내륙순환열차(O-Train) 운행 개시

 

- 2013년 5월 23일 스위스 마테호른 고트하르트 반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 체결

 

위키백과에서 참고한 분천역의 역사인데, 영동선의 역사가 으레 그렇듯 주변 임기역, 현동역과는 큰 차이가 없는 편이다.

 

직접 답사하진 않았지만, 많은 답사기들을 사진으로 봤는데, 분천역의 역사 외관이 인접역인 임기역, 현동역, 같은 영동선에 있는 봉성역과도 꽤 흡사하여 잘못 찾아왔나 싶을 정도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구조다. 

 

 

 

 

 

 

스위스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맺은 뒤 분천역의 외관이 좀 더 고풍스러워지고, 산타마을이라는 별칭처럼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형태로 역이 바뀌었는데, 자매결연 전에는 분천역의 역사는 임기역, 현동역, 그리고 봉성역과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고 한다. 역간판마저도 코레일의 기본양식이 아닌 과거 오래전에 사용됐을 법한 간판으로 바뀌었다. 경전선 득량역도 분천역과 같은 형식의 역간판일 것이다. 

 

 

 

 

자연미와 인공미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조화가 되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분천역에 와서 다시금 깨닫는다.

 

역 주변으로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것들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신구조화란 이런 것일까? 과거 오래전부터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있던 시골마을의 풍경과 자매결연 뒤 아기자기 꾸며진 조형물이 최적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원래부터 아름다운 역과 마을에 어울리는 조형물들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환상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는 듯 하다.

 

사실, 분천역도 스위스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 전까지 무인화가 거론되던 역 중에 하나였다. 

 

무인화가 거론되던 역이 스위스의 체르마트와 자매결연을 맺고, V-Train과 O-Train이 정차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하루 열 명 남짓 이용하던 역이 북새통을 이루던 역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상전벽해란 표현이 시의적절할 것이다.

 

회생의 전기를 마련한 분천역과 달리 임기역, 현동역은 V-Train과 O-Train의 통과에 이어 2013년 10월 21일부터 차내취급역으로 전환되더니 2013년 11월 7일부로 한시적으로나마 근무하던 직원들이 철수하며 무인화의 길로 빠져버리고 만다.

 

 

 

 

역사 외관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역사 주변은 물론이고, 역사 내부도 그야말로 산타마을과 봉화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겨울에 걸맞는 분위기로 역사 내부도 꾸며져 있었다.

 

분천역과 득량역이야말로 특화된 주제를 바탕으로 침체일로를 겪고 있는 간이역들의 부흥에 필요한 모범답안이자 참고서가 되고 있다.

 

도로가 발달하고, 일반열차의 비효율성이 부각되며 간이역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간이역의 본질을 더욱 부각시키며,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다양한 정취와 각박한 세태 속에서 진정한 힐링을 사람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힐링은 꼭 필요하고, 특색있는 간이역들이 하나둘 늘어나 힐링의 전도사로 이바지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램이다.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출발하기 전 어떤 아주머니들이 셀카를 찍으며 즐거움과 힐링을 만끽하고 있는 것을 보며, 간이역의 본질과 역할이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되새겨본다.

 

포스팅을 하고 나서 쓰는 거지만, 단순히 사진촬영과 답사만이 아닌 분천역 부역장님의 친절함에 답사의 편안함과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여름 초입에 들어가는 날씨라 봉화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평소 철도와 관련되어 궁금하던 것을 주변 직원분께 여쭤보기 위해 역사로 들어갈 찰나 마침 부역장님께서 환하게 맞아주시고, 궁금증에 대해 알려주시며 시원한 음료까지 대접해주셨다.

 

부역장님께 코레일 VOC 레터로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리기는 했지만, 다시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봄이 오기 전 분천역도 다시 한번 다녀올 참이다. 그때는 바로 진정한 산타마을과 체르마트역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으니까.

 

다양한 정취를 느끼고, 힐링을 만끽할 수 있었으며, 친절을 베풀 때 또 그 친절을 소중하게 맞이해주는 것...

 

행복함과 편안함, 보다 삶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분천역 답사가 내게 줬던 소중한 선물이지 않을까 싶다. 덤으로 좋은 분들을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된 것도 값진 보물이었고.

 

 

분천역에서 배웠던 가치와 간직하게 된 추억을 거름삼아 다가오는 내일도 힘차게 살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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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리역과 더불어 간이역 답사를 마음먹은 순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역 중에 하나가 바로 승부역이다.

 

승부역은 찾아가기도 힘든 곳인데다 영동선 특유의 열차마저 많이 운행되지 않아 대한민국의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히는 곳 중에 하나이다.

 

날이 더웠지만 짜릿한 쾌감을 주던 곳이 바로 승부역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멋을 가진 역이야말로 승부역일 것이다. 각종 블로그의 여행기를 보면 계절마다 승부역의 멋을 담은 계절별 여행기가 끊임없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지에 있어 더욱 가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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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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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시로 승부역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겠다고 할 수 있다. 승부역의 상징인 이 시는 승부역에 근무했던 한 역무원이 쓴 시인데, 춥고 힘들고 오지속에 갇혀 지내던 간절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라 하겠다. 뒤에 나오겠지만, 어찌보면 시가 쓰여진 표지석은 사본이고, 원본은 역사 우측에 나온다.

 

 

승부역의 역사를 보면 승부역은 순탄하지 않았던 역사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역이었다.

 

1956년 1월 1일 현재 영동선의 근간이 되는 영암선이 개통되며 승부역은 바로 이때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1957년 7월 17일 과거 96년까지 존속했던 플랫폼 위의 역사가 완공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 울진군에 속해있던 승부역이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봉화군으로 편입되었다.

 

1996년 9월 17일 현재 승부역의 역사가 완공되어 승부역이 도약하는가 싶었지만 이듬해

 

1997년 10월 15일 보통역에서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001년 9월 8일에는 배치간이역에서 신호장으로 떨어지면서 승부역이 아닌 승부신호장으로 처지가 말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1998년 환상선 눈꽃순환열차가 개통되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론 승부역의 부흥을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다 3년 뒤

 

2004년 12월 10일 신호장인 승부신호장에서 보통역인 승부역으로 다시 승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2013년 2월 21일 영암선 개통기념비가 등록문화재로 승격이 되고,

 

같은 해 4월 12일 영동선의 부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던 O트레인과 V트레인이 정차하게 되었으며, 일반열차인 무궁화호도 1691/1692 정동진 ↔ 부산 노선을 제외한 나머지 영동선 무궁화호는 모두 정차하는 역으로 변모했다.

 

보통역에서 배치간이역으로, 배치간이역에서 신호장으로, 신호장에서 다시 보통역으로 승격됐으니 승부역의 역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시대의 풍파를 모두 겪은 산증인이라 할 수 있겠다.

 

 

 

 

 

 

 

'승부역에 오심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를 보며 드디어 승부역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지에 온 만큼 오지를 틈틈히 둘러보기 시작한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영암선 개통기념비이고,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들어가서 유명해진 측면이 있다. 물론, 승부역은 단순히 영암선 개통기념비보다 곳곳에서 미적 시각과 미적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라 그야말로 오지속 자연을 몸소 느끼며 오랜 시간 생각해볼 수 있는 명소로 더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영암선 개통기념비 부근에 있는 승부역 주변 몇 안되는 민가인데, 따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옥수수밭과 자연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카메라에 한번 담아보았다.

 

 

 

 

과거의 모습에다가 요 근래 완공된 전철화까지 더해져있으니 정말이지 신구조화가 따로 없었다. 한편으론 승부역과 영동선이 완공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었을지 쉽게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승부관, 승부역의 관사인데, 여름과 겨울 내일로 시즌에 맞춰 내일로 여행객들에게 일종의 게스트하우스 형식으로 내일로 여행기간 동안 숙박을 제공한다고 한다. 승부관에서 오지역 승부역에서 나 자신과 고독한 승부를 해보는 건 어떨까?

 

 

 

 

승부시설사업소인데, 이 날 답사를 갔을 때도 승부역 주변에서는 선로보선원들이 더운 날씨 속에서도 시설 및 선로 보수에 여념이 없었다. 이분들이 있어 우리는 마음 편히 철도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승부역의 또다른 상징 "눈꽃마을 승부"란 표지석이 눈에 띈다. 표지석의 모양과 표지석의 글짜가 꽤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 지점부터 냇가를 건너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건너편에서 찍은 승부역 주변 철교의 모습인데, 보기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듯이 사진에 각도에 따라 분위기가 또 달라지는 것 같다.

 

 

 

 

요 근래 살면서 물레방아를 본 적이 없었는데, 승부역에 오면서 10여 년만에 물레방아를 본 거 같아 왠지 모르게 더욱 기뻐했었던 것 같다. 물레방아를 비롯한 자연친화적인 조형물들이 있어 승부역에서 자신과 승부를 하는 것만큼은 정말 외롭지 않다.

 

 

 

 

"눈꽃마을 승부"란 표지석을 두고 조금 올라오면, 승부역의 먹거리 장터가 눈에 보이는데, 이 날은 따로 영업을 하지 않는지 고요하기만 했다. 사진을 찍고 나갈 무렵 마을 주민들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낯선 사람의 방문에도 반가워하며 승부역의 먹거리 장터 시설이 더욱 보강되어 올겨울에 준공(?)이 될거라며 겨울에 승부역에 꼭 방문하길 권한다. 사실, 승부역의 진짜 매력은 바로 겨울에 있으니까.

 

 

 

 

승부역도 그간 시설투자가 이루어졌는지 역 곳곳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목마타기 위에 있는 사진 위의 나무 한그루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아 지조가 느껴진다.

 

 

 

 

승부역의 역명판인데, O트레인과 V트레인이 개통될 무렵 승부역도 양원역, 분천역과 동일한 방식으로 통일되었다.

 

 

 

 

승부역의 역사를 세 장을 연이어 찍어서 올리게 되었다. 승부역의 역사는 더없이 정이 느껴진다.

 

 

 

 

석포방향 선로인데, 사진 속 멀리 선로보선원들의 모습이 들어오며 이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도 안정이 느껴졌다.

 

 

 

 

 

승부역의 출입구 승부현수교가 눈에 띈다. 사람들 한두명이 겨우 다닐 수 있는 넓이인데, 출렁거리면 위험하다며 출렁거리지 말 것을 알려주고 있는 곳이었다.

 

 

 

 

분천, 영주 방향 선로와 플랫폼인데, 곡선과 자연, 그리고 승부역의 붉은 역사가 어우러져 가히 환상이란 말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승부역의 붉은 우체통인데, 승부역의 간이 대합실에 비치된 엽서를 작성해서 보내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정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원을 담아 엽서를 보내는 것도 승부역에서만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 생각한다. 

 

 

 

 

승부역의 간이 대합실은 "세평쉼터"란 정식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빼꼼히 69.2㎢가 나오는 데, 승부역이 영주역 기점 69.2㎢에 위치하고 있는 역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승부역의 간이대합실 세평쉼터에는 승부역에 다녀갔던 여자 개그우먼들의 사인이 걸려있고,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 공지사항과 서적, 각종 포스터와 안내자료 등이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특히 조그만 의자와 난로가 비치된 게 꽤 인상적이었다. 또한,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스탬프가 이곳 세평쉼터에 비치되어 있어 엽서, 승차권, 기타 종이에 날인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알립니다'로 붙여진 공지사항에서 승부역은 승차권을 발매하지 않는 역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승부역은 차내취급역으로서 코레일톡이나 인터넷 예매, 창구예매가 가능한 역에서 승차권을 발매해야 하는 역이라 여행객들 입장에서 다소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승부역에는 역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역(1인 근무역)이기는 하지만, 역직원은 운전취급만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승차권단말기도 없어 승차권 예ㆍ발매가 불가능하다.  

 

 

 

 

승부역의 상징이자 시의 원본이다. 처음에 올라왔던 기념비가 사본이었다면 말이다.

 

지금처럼 각박한 시대이기에 승부역이 더더욱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지친 일이 있을 때 아무도 없는 세 평 오지속에서 나 자신과 승부를 하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에게 있어 힐링이 되고, 재충전을 줄 수 있는 곳으로서 진정으로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스쳐지나가는 간이역(엄연히 보통역이지만)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시간과 장소를 주고, 마음을 다스리게 하며 쉬어가는 공간을 제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간이역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뒤에 나올 청소역과 더불어 승부역은 간이역의 본질에 충실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짓밟는 법만 가르치는 중고등학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기위해 아웅다웅하는 모습들, 각박한 세테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가끔씩이라도 승부역, 청소역 등 간이역에서 마음을 청소하고,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지는 아닐지언정 없어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그래서 요즘 들어 무인화가 거론되는 승부역처럼 유익한 역들이 하나 둘 없어지려고 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답사하기로 마음먹었던 시점에 접어든다.

 

사실, 양원역과 비동역의 답사는 예정에 없던 것도 있었겠지만, 양원역과 비동역의 존재조차도 인식이 없었다. 쉽게 말해 양원역과 비동역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날, 승부역과 분천역의 답사를 가기 위해 철암역에서 V트레인에 탑승해서 동점역, 석포역, 승부역을 지나 도착한 역이 바로 양원역이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역을 실제로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객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사진을 찍으러 내려갔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양원역을 보고 난 다음의 기쁜 감정이야말로 바로 이런 건가보다.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라고 조언을 많이 하는데, 마음을 비우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뜻하지 않게 희망하는 것을 얻었을때 경제학적인 최대효용이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양원역은 1988년은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113-2에 위치한 역이 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임시승강장이다. 임시승강장의 양원역이 생겨난 이유는 주변에 교통이 워낙 불편한 탓에 주민들이 직접 조그만 역사와 승강장, 역명판 등 역사시설을 만들어 여객열차 정차를 요구하면서 비롯되었다.

 

주민들의 노력과 청원으로 양원역이 임시승강장이나마 온전히 역으로서 여객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코레일에서는 여객열차 통과를 시키려고 했지만, 주변 교통이 워낙 열악했던 탓에 정거장으로 필요한 역사시설을 갖춘 녹동역, 거촌역, 문단역, 봉성역 등이 여객열차 통과라는 철퇴를 맞았을 때도 양원역은 꿋꿋히 여객열차가 정차하며 온전한 "역"으로서 "정거장"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즉, 양원역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역사이자 사람도 바람도 쉬어가는 간이역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객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눈에 띄었던 건 바로 양원역 대합실이었다. 양원역 대합실 옆에 양원역을 알리는 "양원"이라고 새겨진 조그만 비석이 하나 있었는데 이 조그만 비석이 바로 양원역의 진정한 역간판으로서 가치를 발휘하고 있었다.

 

 

시골의 조그만 버스 정류장처럼 보여도 양원역 대합실은 플랫폼에는 아기자기한 돌로 꾸며져있어 초라해보일지라도 자신이 진정한 간이역이라는 것을 웅변하는 듯 했다.

 

 

 

 

양원역 역사 내부에는 O트레인, V트레인, 그리고 일반열차 무궁화호의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가 적혀있었다. 비록 작은 어느 시골 간이역일지라도 역사로서 갖춰야 할 것들은 다 갖춰져 있는 셈이었다. 또, 인접역인 분천역에서 여객과 관련된 사항들을 붙여놓고, 꾸준히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양원역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간이역에서 볼법한 나무의자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놓여있었다. 비록 역무원도 없고, 승차권을 발권할 수 있는 매표창구도 없지만, 이 정도면 역이라 불리기에 손색없지 않을까? 엄연히 O트레인, V트레인, 그리고 무궁화호까지 정차하니 말이다.

 

 

 

 

양원역의 역명판인데, 양원역뿐만 아니라 승부역과 분천역도 양원역처럼 과거 오래전 방식의 역명판 방식을 채용하고 있었다. 역명판 뒤편으로 마을주민들이 열차 운행시각에 맞춰 손수 만든 식음료나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옛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은 것 같아 과거로 온 것 같은 추억의 회상속으로 빠져본다.

 

 

 

 

V트레인 2013년에 개시되면서 양원역뿐만 아니라 비동역, 승부역, 분천역, 철암역 모두 V트레인의 로고를 띤 별도의 푯말이 설치되었다. 역명판 역시 철암역을 제외하고는 양원역, 비동역, 분천역, 승부역 모두 같은 방식으로 통일되었다. O트레인과 V트레인이 각각 개설되어 교통이 열악한 태백, 봉화지역에 보탬이 됨은 물론, 지역경제에도 나름 도움을 주고 있었다.

 

 

 

 

분천역을 지나 승부역으로 다시 V트레인을 타고 오는 길에 찍은 비동역이다. 비동역 역시 임시승강장인데, 양원역과 달리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만이 이용할 뿐이다. 어찌보면 양원역보다 그 위치가 못할 수 있지만, 비동역 역시 주변에 멋진 자연적 경관을 자랑하기에 양원역과 우열을 가리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V트레인과 더불어 승부역에서 양원역, 비동역을 거쳐 분천역으로 이르는 트래킹 코스도 나름 인기있는 코스라 봄이나 가을 무렵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니 V트레인이야말로 소외된 오지에 있어 효자가 아닐까 싶다.

 

양원역과 비동역에 이어 크리스마스역 분천역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그냥 머리를 식히고 바람도 쐴 겸 다녀온 것이 도경리역이다.

 

도경리역을 다녀왔던 것도 순수하게 머리를 식히고 바람도 쐬고 싶은 것 딱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도경리역이 유명세를 탔던 건 영동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이고, 또 문화재청에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철덕들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도경리역이 요근래 유명해진 건 유명 가수들인 다비치의 "오늘 따라 보고 싶어서 그래" 뮤직비디오 촬영장소로 등장하면서 굳이 철덕들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도경리역의 부제 역시 가수 다비치의 "오늘 따라 보고 싶어서 그래"에서 따왔다. 포스팅을 하는 지금도 보고 싶은 역 중에 하나가 바로 도경리역이니까.

 

 

 

도경리역은 1939년 5월 15일에 역사가 준공되었다. 이후 1940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가 1995년 1월 10일 역세권이 미약한 터라 승차권 차내취급역 지정되더니 1997년에는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001년에는 신호장으로 더 떨어지고 말았다.

 

도경리역은 무배치간이역도 아닌 신호장으로서 열차의 교행을 위해 존재하는 역일 뿐이다. 애초부터 역세권이라고 해봐야 민가 몇 채가 고작이니 말이다.

 

 

이 날 도경리역을 찾아갔을 때는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얼추 길을 찾아보고, 머리 식히러 바람 쐬러 떠난 길이었지만, 도경리역까지 가는 교통편이 자주 없다는 소식이 있었다. 특히, 도경리역 역시 영동선 아니랄까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하는 숨바꼭질 하듯 산속에 숨어있는 역이었기 때문이다.

 

 

 

 

한낱 신호장일 뿐이지만, 도경리역은 1939년 5월 15일부터 지금까지 역사가 오롯이 보존되고 있을만큼 정말로 유서깊은 역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영동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인데다 박공형 지붕을 채택하고 있고, 무엇보다 역사 외관이 일본식 건축양식을 띄고 있어 철도 건축 역사에서도 정말로 소중한 자산이라 할 수 있겠다.

 

 

꼭 철덕이나 철도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누가 보더라도 도경리역의 역사를 보면 일본 훗카이도(北海道)의 어느 시골 간이역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 눈이 제법 왔는데, 도경리역은 여름도 여름이지만, 가을이나 겨울에 미적 가치와 진정한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역 중에 하나다. 

 

 

겨울에 눈이 내리고 있는 도경리역에 있으면 일본 훗카이도(北海道)의 어느 시골 간이역에 있다고 해도 믿을테니 말이다. 그만큼 영동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은 당연 도경리역이고, 영동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 역시 도경리역이라 자부한다.

 

 

 

 

도경리역은 2007년 여객취급이 완전히 중지되었는데, 이 무렵 영동선의 가장 오래된 역사이고, 철도 역사상 보존가치가 충분했기에 문화재청으로부터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고, 이후 삼척시에서 예산을 투입해 역사 개보수를 하여 지금도 나름대로 관리를 받는 귀하신 몸 중에 하나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잊혀간 역들 대부분은 초라하게 방치되다시피 내팽겨진 역들이 부지기수니깐.

 

 

 

 

도경리역의 역간판은 과거 철도청시절의 역간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교육자산으로서도 활용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도경리역의 화장실인데 이용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아마 잠겨있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실제로 화장실이라는 푯말도 과거 철도청 시절의 서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화장실 옆에는 화분이 아기자기 놓여있어 역사의 품격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듯하다. 실제로도 화분의 관리가 되고 있는 걸보면 역시 사람이건 건축물이건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과거 여객취급이 중단되기 전까지 사람들이 이곳으로 기차를 타고 다녔을 것이다. 사진 가운데에 집표함이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집표함에는 세월의 흔적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내릴 때 넣어둔 승차권이 보이지 않았다.

 

 

 

 

역사 사진에서처럼 도경리역의 하얀색 도장과 겨울 하얀 눈이 절묘하게 시각적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도경리역은 진정 겨울에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름이나 가을에도 운치있지만, 음식에 양념이 잘 어우러지면 환상의 맛을 표출한다고 하지 않은가? 바로 도경리역의 겨울의 하얀 눈이 도경리역의 보석보다도 더욱 값진 역으로 만들어주는 양념이라고 생각한다.

 

 

 

 

도경리역의 선로보선반 옆의 공간에는 침목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또, 위에 보면 141이라는 숫자가 보일텐데, 이는 영주역 기점 141km 지점을 뜻한다. 즉, 도경리역은 영주역 기점 141km에 위치하고 있는 정거장이라 하겠다.

 

 

 

 

일본 훗카이도(北海道)의 어느 시골 간이역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필자도 도경리역을 처음 밟았을 때 설렘과 더불어 일본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도경리역에는 옛날의 모습들이 온전히 자리하고 있고, 역명판도 옛날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위에 있는 나무들이 역사를 아름드리 꾸며주는 존재라 생각한다. 조동사나 조사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역무실에는 꾸준히 무전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열쇠보관함과 비상초함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특히, 역무실의 책상 위에는 철도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만한 전호깃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과거 여객운임표와 열차시간표가 고스란히 걸려 있었다. 무궁화호 1698과 무궁화호 1697은 과거 강릉 ↔ 영주간 다니던 열차인데, 과거 통일호 1243호 통일호 1244호를 계승한 열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무궁화호 1685와 무궁화호 1686으로 동해 ↔ 영주로 축소되더니 2012년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첫장의 사진과는 다른 사진이다. 결국 플랫폼 방향 역사 사진을 두 장 찍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도경리역의 아름다움이 푹 빠졌었나보다.

 

 

 

 

갈 길을 재촉하기 위해 도경리역을 떠나는데, 낯선 사람의 발길이 경계됐던 듯 민가 주변의 개들이 사납게 짖어댔다. 그래도 바람 쐬러 머리 식히러 떠난 도경리역에서 제대로 힐링을 받고 간다는 기분이란 뭐라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만큼 마음이 편안했다. 물론, 여름의 날씨라 덥긴 했지만, 그와 별개로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도경리역의 안내 표지판과 표지판 바로 옆에 있는 버스 정류장이다. 사진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은 미로, 도계 방향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고, 삼척, 동해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반대편으로 길 건너 가서 탑승해야 한다. 길 건너갈 때 건설 차량이나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들이 수시로 다니므로 통행에 각별히 주의하기를 바란다. 참고로, 버스에 탑승하고자 할 때는 버스가 보일 때 손을 흔들면 요금을 내고 탑승하면 된다. 시간이 된다면 도경리 마을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기에 버스 시간을 필히 참고해서 답사에 불편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도경리역의 파노라마 사진으로 황홀했던 도경리역의 포스팅을 마무리지을까 한다. 언제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다음번에는 겨울에 하얀 눈이 내릴 때 도경리역에 꼭 다녀오기로 스스로에게 약속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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