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영혼

장항선으로 접어든다.

 

장항선의 처음을 여는 역이 판교역이었다.

 

판교역, 청소역, 웅천역으로 이어지는 장항선 간이역 답사기의 첫 시작이 바로 판교역인 셈이다.

 

개인 사정상 일정상 판교역, 청소역, 웅천역을 한번에 답사해야 했기에 다음에는 철저하게 준비해서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큰 역들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필자는 기차여행다운 기차여행으로 영동선, 태백선이 아닌 주저없이 장항선을 꼽는다. 비록 복선전철화를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용산역을 출발해 천안역까지 도시적인 풍경을 접하고, 천안역 이남으로 충청도의 서해 바다와 갯벌을 보일 듯 말 듯 보여주며 논과 산으로 이어지는 풍요로운 자연 경관을 보여주다가 장항역을 지나 군산역으로 들어서면 익산역까지 이어지는 새만금의 광활한 풍경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이다.

 

즉, 장항선이 가진 매력은 디지털적인 시각과 아날로그적인 시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특히, 수도권과도 거리가 멀지 않아 영동선이나 태백선처럼 기차여행을 하는 데 있어 큰 부담을 주지않는 점도 큰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거기에다 유일하게 새마을호의 정기노선이 운행하는 곳이 바로 장항선이라는 점도 큰 몫을 차지한다.

 

 

 

○ 판교역의 역사

 

- 1930년 11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 1984년 10월 31일 역사 신축

 

- 1991년 9월 1일 소화물 취급 중지

 

- 1991년 9월 15일 소화물 취급 개시

 

- 2006년 5월 1일 소화물 취급 중지

 

- 2008년 11월 28일 장항선 이설과 함께 현 역사로 이전

 

 

 

역사로 보듯 판교역은 어느 역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냥 평범하게 묻어간다고 해야할까?

 

그러나 판교역이 특별한 건 과거 아날로그를 뒤로 한 채 디지털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처음 판교역을 접했을 때 문화충격을 겪었다. 마치 수도권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기에 그렇다.

 

판교역의 옛 역사는 아기자기함이 담겨있는 역사 중에 역사였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새로 생긴 현재 역사는 아기자기함을 뒤로 한 채 뭔가 세련됨과 동시에 앞서가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 날 오전 대천역에서 탑승한 무궁화호 1553을 타고, 막 판교역에 도착하자마자 판교역의 모습을 담아보게 된다. 판교역에서 승하차가 끝나고 여객전무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평소 꼭 담고 싶었던 사진 중에 하나였는데, 공교롭게도 판교역에서 담게 되었다.

 

내렸을 때부터 판교역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수도권에 있는 전철역에 왔다고 느껴질 정도로 판교역은 과거의 아기자기함을 뒤로 한 채 현대화가 된 채로 거듭나 있었다.

 

 

 

 

판교역에서 몇 명의 사람을 내려주고, 또 몇 명의 사람을 태운 장항선 무궁화호는 마지막역인 익산역으로 유유히 떠나고 있었다. 기차도 사람도 목적지에 도착하여 또다른 목적지를 향해 떠난다. 인생이란 기차여행처럼 수많은 군상들을 만나고, 정해진 목적지에 도착하여 또다른 목적지로 떠나는 기나긴 여행이 아닐까 싶다.

 

 

 

 

역명판도 여느 장항선 소재 역처럼 지주식 역명판이 아닌 달대식 역명판을 채용하고 있는 것부터가 남다른 존재라는 것을 어필하고 있는 것 같다. 수도권에서는 쉽사리 볼 수 있는 것도 일반 로컬선에는 나름 희소성을 지닌 존재로 거듭나는 걸보며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다시금 느껴진다.

 

 

 

 

세련됐다고 느껴질만큼 간이역스러움보다는 보통역 내지 관리역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고 있었다.

 

 

 

 

판교역으로 가려면 한 단계를 거쳐 또다른 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같은 장항선에 위치한 군산역과 역사 구조가 꽤 유사한 편이었다. 다만, 군산역과 달리 역사 규모와 구조가 단촐한 편이 차이라면 차이라 하겠다.  

 

 

 

 

세련됨과 디지털이 대세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이자 사실이겠지만, 아날로그가 그리워지고, 디지털을 가장한 획일화가 뭔가 역이란 존재가 그냥 거쳐가는 존재로만 인식되는 것 같아 씁쓸함을 숨길 길이 없어보인다. 특색을 간직한 역과 뭔가 특색을 가진 역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램이자 마음이다. 

 

 

 

 

판교역의 표 사는 곳이자 판교역의 맞이방이 되겠다. 다른 로컬선의 역들과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판교역 맞이방에 있는 목재의자들처럼 판교역의 맞이방이 옛 판교역의 맞이방처럼 마을 사람들과 여행객들의 사랑방이 되었으면 하는 감상에 젖어들지만, 새롭게 이설된 판교역은 그걸 쉽사리 내어주지 않는다. 뒤에 나오겠지만, 주변에 민가와 마을이라고는 없어서 마을까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판교역의 시간표는 다른 장항선들과 달리 열차시간표가 꽤나 튼실한 편이다. G-트레인 서해금빛열차, 새마을호와 익산, 서대전 방면 무궁화호 편도 1편을 제외하고는 장항선을 운행하는 9왕복 수준의 무궁화호가 거의 다 운행하니 대야역, 청소역과 달리 열차시간표는 잘 갖춰진 편이라 하겠다. 

 

판교역에서 청소역으로 가기 위해 승차권과 판교역의 입장권을 역직원에게 구매 및 발권하였다. 간이역이라 생각되는 시골역들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역직원들이 꽤 친절하게 승객들을 맞이해준다는 점이 간이역에서 근무하는 역직원들이야말로 간이역의 숨은 보석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겠다. 이날 판교역에서 근무하던 역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해줘 간이역의 인심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실내를 벗어나 판교역의 광장으로 나와본다. 이 날 미세먼지 탓에 하늘이 뿌옇다. 미세먼지와 늦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아침의 선선함을 느끼기는 어려운 날씨였다.

 

 

 

 

판교역의 기둥형 폴싸인이 판교역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사진에 나와있는 것처럼 주변에 민가가 없어 판교마을이나 장항, 서천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내버스나 택시 등 다른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야하는 애로사항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옛 판교역의 정겨움은 물론 이용객의 감소까지 이끌어내고 말았다.

 

대천여객 시내버스가 사진에 나오는 데, 보령시에서 웅천역을 경유하여 서천 판교역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라고 한다. 대천역에서 버스를 타고 판교역까지 올 수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 

 

황량함 속에서도 판교역의 기둥형 폴싸인과 더불어 푸른 나무와 아기자기한 의자가 어우러져 판교역의 진정한 내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만족을 느꼈다. 판교역의 진정한 내면과 사람이 조화를 이룬다면, 판교역의 내실은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

 

 

 

 

세련된 출입로를 지나 웅천 방향 플랫폼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5~6명 정도 되보이는 이용객들이 있다고 하지만, 옛 판교역의 명성과 추억에는 부족하기 그지없다. 판교역에도 다른 간이역들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조금만 관심을 두면, 간이역도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부르기에 손색없는 곳이니까.

 

 

 

 

뿌연 날씨처럼 판교역의 미래도 간이역의 미래도 뿌옇기만 해서 내 마음도 덩달아 어두워지기만 한다. 간이역의 현실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날씨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빠름을 추구하는 게 인지상정이 되어가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느림의 미학을 미덕삼아 사람과 사람 속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가져본다.

 

2015년 모 방송사에서 방영된 바 있는 서천 판교마을의 '느리게, 더 느리게'란 말은 판교역을 상징해주는 말이자 빠름을 추구하는 우리 시대에게 통렬한 명제를 던져주고 있다.

 

빠름보다는 때로는 여유를 갖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보다 더욱 편안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비록 판교역의 역사는 세련됨을 갖췄지만, 판교역의 내면은 느리게, 더 느리게 여유를 갖고 흘러가는 역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우리 인생도 여유를 갖고 느리게 더 느리게 흘러가는 인생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