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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버팔로즈의 마스코트인 버팔로 불과 버팔로 벨의 다양한 활용 버젼입니다.

 

 

예전에도 몇 차례 올린 적이 있어서 중복되기는 한데, 버팔로 불과 버팔로 벨이 장풍을 날리는 로고가 있어서 같이 올립니다.

 

 

이전에 올렸던 중복되는 로고들은 삭제해서 정리를 할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버팔로 불과 버팔로 벨이 장풍을 날리는 로고를 구하고 싶었는데, 찾다가 발견하여 올리게 되었습니다. 장풍은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형태를 띄는 네피와 리프시가 있었지요.

 

 

제가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https://flytoazuresky.tistory.com/736 이곳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이곳에는 버팔로 불과 버팔로 벨이 아닌 네피와 리프시가 공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고요, 차이가 있다면 투타의 역할이 바뀌었달까요...

 

 

모에한 특징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버팔로 벨과 인기가 없어 존재감마저 의심받고 있는 버팔로 불의 모습이 볼때마다 대조적입니다.

 

 

 

 

RAKUTEN KOBO STADIUM MIYAGI Logo Vector.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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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홈구장 라쿠텐생명파크 미야기의 로고입니다.

 

 

라쿠텐생명파크 미야기도 괜한 힘을 좀 뺐던 로고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자료에 버젓이 있더군요.

 

 

찾아서 이렇게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라쿠텐생명파크 미야기는 미야기구장의 이름입니다. 미야기구장의 명명권을 팔아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특히, 라쿠텐생명파크 미야기까지 미야기구장의 재미난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먼저, 미야기구장은 롯데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바 롯데 마린스의 이전 명칭이었던 롯데 오리온스가 과거 홈구장으로 사용하던 도쿄 스타디움이 해체가 결정이 난 1973년부터 고라쿠엔야구장, 메이지진구야구장, 가와사키구장 등을 전전합니다. 1977년까지 그랬고요, 이 기간을 바로 집시 롯데로 부르기도 합니다. 도쿄 스타디움을 대신해서 주로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야구장이 바로 미야기구장이었지요. 1974년 당시 롯데 오리온즈가 일본 시리즈에 진출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 시리즈의 개최조건 중에 하나가 홈구장이 3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고라쿠엔 야구장에서 홈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이건 그렇다 치더라도 우승하고 난 뒤 펼쳐진 우승 퍼레이드를 센다이 지역에서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롯데가 미야기구장이 있는 센다이 지역에서 원성을 들었고요.

 

 

롯데는 1977년 무렵 요코하마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만, 잘 안되고 당시 다이요 훼일즈, 현재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홈구장으로 삼게 되고, 롯데는 다이요 훼일즈가 사용하던 가와사키 야구장으로 1978년부터 홈구장을 쓰게 됩니다. 만약 롯데 오리온즈가 요코하마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면, 한국의 형제구단인 롯데 자이언츠와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부산 사직야구장과 요코하마 스타디움이 생김새가 비슷한 데, 이는 부산 사직야구장이 요코하마 스타디움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일 겁니다.

 

 

롯데 오리온스가 가와사키 야구장으로 떠나고, 롯데 오리온스가 1992년에 지바로 연고지를 옮기고, 지바 롯데 마린스로 팀명을 개칭하게 되었고요.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을 포함해 2004년까지 1년에 3~10 경기를 홈경기로 편성해서 미야기구장에서 경기를 치렀습니다. 롯데 자이언츠가 제2홈구장으로 마산야구장을 사용하던 시절과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후 2004년 라쿠텐그룹이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창단해서 미야기구장을 홈구장으로 삼게 되면서 2005년부터 2006년까지 대대적으로 개보수를 진행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의 특징은 풀캐스트 스타디움 미야기, 일본제지 크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크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라쿠텐 Kobo 스타디움 미야기, Kobo 파크 미야기, 그리고 현재 라쿠텐생명파크 미야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구장의 명명권을 수시로 파는 탓에 구장의 이름도 이처럼 수시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현재 라쿠텐생명파크 미야기는 2017년 11월인가 결정이 나서 2018년부터 올해 2019년까지 사용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에 지금의 이름이 유지될지 새롭게 바뀌어질지는 추후에 봐야할 듯 싶고요. 추후 변동이 되면 변동이 되는 데로 제가 로고를 찾아서 올릴 예정입니다.

 

 

라쿠텐생명파크 미야기를 찾게 되면서 센트럴리그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홈구장인 요코하마 스타디움, 퍼시픽리그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홈구장인 메트라이프 돔만 남게 되었습니다. 아, 지바 롯데 마린스의 홈구장인 조조 마린 스타디움은 제가 가지고 있고요, 조만간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소식은 제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워드마크를 확보했다는 거고요, 이것도 조만간에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추가 - 라쿠텐 고보 스타디움 미야키의 로고를 추가했고요, 라쿠텐생명파크 미야기 로고의 색상 오류가 나서 이 부분 수정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NPB FULL Logo Vector.ai

NIPPON PROFESSIONAL BASEBALL CLIMAX CENTRAL Logo Vector.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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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씀을 드렸던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로고입니다.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뿐만 아니라 빨간색 바탕의 클라이맥스 시리즈의 로고가 별도로 있기는 한데, 이건 아직 제가 확보하지 못한 관계로 현재까지 가지고 있는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로고만 올려놓았습니다.

 

 

기본적인 틀은 야구 배트 2개가 X자 모양으로 겹쳐져 있고, 바람을 가르는 형상이 들어가 있습니다. 센트럴리그는 상징 색깔인 녹색이 바탕이고, 퍼시픽리그는 상징 색깔인 파란색이 바탕으로 들어 있습니다. 또한,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의 깃발을 상징하는 로고가 들어가 있고요, 오른쪽 끝에 붙어있는 카타카나는 센트럴리그의 약칭은 세, 퍼시픽리그의 파가 들어있는 거고요. 야구 배트에는 일본야구기구인 NPB 영문이 모두 들어가 있는 로고와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의 심볼이 들어 있어서 각각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의 경기 방식을 설명하면,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 각각 1위, 2위, 3위팀이 치르게 됩니다. 당연히 A클래스에 들어간 팀들이 치르는 것이지요. 여기서 정규시즌 우승과는 별도이고, 물론 정규리그 성적에는 합산되지 않습니다. 또한, 퍼스트 스테이지와 파이널 스테이지로 구분이 됩니다.

 

 

퍼스트 스테이지는 센트럴리그, 퍼시픽리그 모두 정규시즌 2위 팀과 정규시즌 3위 팀이 맞붙습니다. 3전 2선승제 방식이고요, 1승 1무 1패, 또는 3무가 나오게 되면, 정규시즌 2위팀이 파이널 스테이지로 진출하는 방식입니다.

 

 

파이널 스테이지는 센트럴리그, 퍼시픽리그 모두 정규시즌 1위 팀과 퍼스트 스테이지 승자 팀이 맞붙습니다. 퍼스트 스테이지와는 달리 6전 4선승제 방식인데, 여기서 정규시즌 1위팀이 부전승으로써 어드밴티지 1승을 먼저 가져갑니다. 경기 장소는 정규시즌 1위팀의 홈구장에서만 휴식일 없이 모두 열리게 됩니다. 파이널 스테이지의 승자가 일본 시리즈라 불리는 닛폰 시리즈에 진출하여 각각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를 대표하여 경기를 치르는 방식인 것이죠.

 

 

개인적으로 확보하고 싶었던 로고들이었는데, 얼마 전 검색을 하다가 발견하여 올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빨간색을 지닌 클라이맥스 시리즈의 대표, 공식 로고도 확보하는 데로 게시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SURPASS KOBE ORIX BUFFALOES Logo Vector.ai

 

 

 

 

 

제목에서처럼 오릭스 버팔로즈의 2군팀이었던 서패스 고베의 워드마크 로고입니다.

 

 

사실, 서패스 고베는 지금 없는 팀명입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는 서패스 고베라는 팀명으로,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그냥 서패스라는 팀명으로 사용이 되었지요. 물론, 오릭스 버팔로즈의 2군 체제는 지금도 운영중입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오릭스 버팔로즈가 2군을 팀명 명명권을 돈을 받고 파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본의 주택건설업체인 아나부키공무점의 멘션 아파트 브랜드인 서패스를 팀명을 다는 조건으로 일정의 운영비를 받게 된 것이죠. 서패스라는 팀명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오릭스 버팔로즈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서패스 고베, 서패스라는 팀명으로 2군 팀을 운영해오다가 2008년을 끝으로 팀명 명명권계약이 해지되면서 다시 서패스도 1군과 마찬가지로 오릭스 버팔로즈의 팀명으로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서패스 고베를 포함한 서패스의 명칭을 사용한 오릭스 버팔로즈와 쇼난 시렉스라는 팀명을 사용했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가 각각 1군과 2군 팀명을 달리 사용하던 구단들이었죠.

 

 

한편, 서패스 고베, 서패스의 마스코트들도 당연히 존재했습니다. 제가 아직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디만, 마스코트들의 이름을 말씀드리면, 써머와 실키였죠. 남자 마스코트는 써머, 여자 마스코트는 실키였고요, 모티브는 새를 삼았습니다. 써머와 실키도 제가 확보하는 데로 게시물로 올릴 것입니다.

 

 

추후 서패스 고베에 이어 쇼난 시렉스의 워드마크, 마스코트인 렉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NANKAI HAWKS EMBLEM Logo Vector.ai

NANKAI HAWKS SYMBOL BACKGROUND Logo Vector.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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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탄역의 승차권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로고 자료들을 어제 새롭게 적용된 에디터로 올렸습니다만, 여러모로 불편해서 기존의 에디터로 다시 되돌렸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워낙 버벅거리고요, 사진과 첨부자료들을 올리는 것도 너무 불편하고, 무엇보다 블로그 전체가 불안정해지면서 오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번 살펴보려고 할 때도 어김없이 버벅거리더군요. 그래서 새로 생겨나는 에디터가 완전해질 때까지 지금 에디터 방식으로 게시물을 올릴 예정입니다.

 

 

난카이 호크스를 검색해서 본 블로그에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아 이번 게시물은 난카이 호크스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난카이 호크스의 심볼, 초록색 배경이 적용된 심볼, 그리고 워드마크까지 제가 개인적으로 구하게 되어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난카이 호크스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전신 오브 전신이라고 보면 됩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출범한 해가 2005년이고, 그 전신이 바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였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전신이 바로 난카이 호크스가 되는 것이죠.

 

 

난카이 호크스는 1938년 난카이군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야구단입니다. 난카이군의 모기업이 킨키 일본 철도와 통합이 되면서 킨키닛폰군, 1946년 그레이팅으로 팀명이 변경이 되더니, 1947년 모기업인 난카이 전기철도가 야구단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본 게시물의 주제인 난카이 호크스라는 팀명을 바꾸게 됩니다.

 

 

후신인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라는 팀명에서 드러나듯 이 두 팀들은 모두 후쿠오카를 연고지로 삼았습니다만,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전신이었던 난카이군은 물론이고, 난카이 호크스까지 오사카를 연고지로 활동했던 팀이었습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오릭스 버팔로즈가 각각 난카이 호크스의 유니폼, 킨테츠 오사카 버팔로즈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르는 칸사이 클래식 매치를 매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죠.

 

 

난카이 호크스는 난카이 전기철도를 모기업으로 맞이한 1947년부터 1977년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던 팀이었습니다. 난카이 호크스에서 장장 23년을 재임했던 츠루오카 카즈토 감독의 지휘 아래 1951년부터 1966년까지 총 9번의 퍼시픽리그 우승, 1959년과 1964년의 일본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퍼시픽리그의 강자로 발돋움합니다. 후신인 현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처럼 말이죠. 특히 1955년 난카이 호크스가 올렸던 99승은 한 시즌 최다승 기록으로써 현재 일본에서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 중에 하나입니다.

 

 

1973년 퍼시픽리그의 우승 이후 당시 감독, 포수, 4번타자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던 노무라 카츠야가 1977년 이후로 팀을 떠나면서 노무라 카츠야의 이적을 반대하던 주력 선수들이 줄줄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며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이 여파가 1998년 무렵까지 지속되어 A클래스는 고사하고, B클래스만 전전하던 암흑기의 시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1978년부터 1988년까지 난카이 호크스는 암흑기를 전전했는데, 1988년 모기업인 난카이 전기철도가 야구단 창단 50주년을 기념하여 야구단을 소매유통업체로 사세를 확장하던 다이에에게 매각해버립니다. 여기에 비화가 있었는데, 난카이 전기철도가 이전부터 주주들이나 노조측으로부터 난카이 호크스 매각 요구를 줄곧 받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야구단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던 난카이 전기철도의 회장이었던 가와카츠 덴이 야구단 매각은 절대로 불가하다는 입장을 피력해왔고, 실제로 야구단 매각을 막아왔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 회장이던 가와카츠 덴이 유명을 달리하자 진짜로 난카이 전기철도가 야구단을 다이에에게 매각하면서 난카이 전기철도와 난카이 호크스 야구단의 인연은 정리되기에 이르렀고요.

 

 

한편, 난카이 전기철도가 다이에에게 야구단을 매각하는 조건으로 "호크스"라는 팀명을 유지시켜달라는 조건을 붙였고, 야구단을 인수하는 다이에 측에서 이 조건을 수락하면서 난카이 호크스는 연고지가 오사카에서 후쿠오카로 이전함과 동시에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라는 팀명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1938년부터 1988년까지 난카이군에서 난카이 호크스까지 오사카를 연고지로 하던 역사가 막을 내렸던 순간이기도 한 것이지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도 1999년과 2003년 각각 클라이맥스 시리즈, 일본시리즈를 제패하며 강팀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합니다만, 정작 모기업인 다이에가 경영난으로 인해서 2005년 소프트뱅크로 야구단을 다시 매각하는 곡절이 있게 됩니다.

 

 

난카이 호크스에서 활약했던 대표적인 한국인 선수가 바로 김영덕 감독이었죠.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감독을 지냈던 김영덕 감독이 난카이 호크스에서 현역 시절을 보냈고요.

 

 

난카이 호크스를 검색해서 본 블로그에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아 오늘은 필히 제가 확보하고 있는 난카이 호크스의 심볼, 워드마크 자료들을 올려놓게 되었고요, 필요하신 분들께서 유용하게 활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제 자료가 나무위키에도 등재가 되면 더욱 좋을 것 같고요, 제가 오늘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2군 마스코트이자 시난 쇼렉스의 메인 마스코트로 활약했던 렉 Reck의 자료도 확보하게 되어서 서패스 고베, 쇼난 시렉스, 클라이맥스 세리그, 클라이맥스 파리그 자료와 더불어 조만간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FUKUOKA SoftBank HAWKS Logo Vector Original.ai

FUKUOKA SOFTBANK HAWKS ROUND SYMBOL Logo Vector.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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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라운드 형태 엠블럼 로고입니다.

 

 

이것도 한신 타이거즈의 마스코트들을 구하다가 덤으로 같이 발견하게 된 로고인데요. 전에도 나무위키에도 라운드 형태의 로고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이후 수정이 된 걸로 알고 있고요.

 

 

라운드 형태의 엠블럼과 라운드 형태의 엠블럼과 워드마크가 결합한 형태의 로고를 같이 구해서 올려놓았는데요, 로고의 배경에는 메인 마스코트인 해리 호크가 들어가 있는 모습입니다. 첫번째로 올린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로고는 제가 참고하시라고 같이 올려놓았는데, 오히려 첫번째 공식 로고보다 더 깔끔하죠. 심플한 멋도 있고요.

 

 

다시 보면, 마치 세로형 로고와 가로형의 로고인 것 같기도 하네요. 찾고 싶었던 로고 중에 하나였는데, 개인적으로 찾게 되어 기쁩니다. 더 기뻤던 건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라운드 형태 엠블럼도 같은 시간에 찾게 된 거고요.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난카이 호크스의 로고는 엠블럼이 아니라 워드마크였고요, 조만간에 제가 현재까지 확보한 난카이 호크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루어진 로고를 정리해서 별도의 게시물로 올릴 예정이고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도 라운드 형태의 엠블럼 뿐만 아니라 마지막으로 사용되던 마스코트 홋시가 들어간 공식 엠블럼까지 구하게 되어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도 별도의 게시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SEIBU LIONS NIPPON SERIES CHAMPIONSHIP 2008 Logo Vector.ai

 

 

 

 

2008년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최고의 한 해가 되었습니다.

 

 

바로 로고에서 나오는 것처럼 2008년 일본시리즈를 제패했으며 아시안시리즈까지 모조리 우승을 했던 팀이 바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였기 때문이죠.

 

 

또한, 2008년은 기존의 세이부 라이온즈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로 본격적으로 팀명을 바꾼 첫 해였습니다. 2007년까지는 세이부 라이온즈로 사용하다가 이듬해인 2008년부터 지역명인 사이타마를 팀이름 앞에 붙이게 된 거고요.

 

 

지역명만 붙은 게 아니고, 이전까지 사용해오던 구단의 공식 엠블럼과 심볼, 그리고 각종 로고와 마스코트의 유니폼까지 대대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전보다 로고의 색깔이라던가 형태가 보다 더 강렬한 모습을 띠게 되었고요. 강렬하게 바뀐 로고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지요.

 

 

일전에 지역명이 붙게 된 세이부의 우승 기념로고를 오래 전에 발견해서 확보를 하고 있다가 찾게 되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FUKUOKA YAHUOKU DOME Logo Vector.ai

 

 

 

 

 

후쿠오카 야후오쿠! 돔의 공식 로고입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구장이고요, 동시에 현지에서는 후쿠오카 돔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야구팬들도 그냥 후쿠오카 돔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고야 돔, 도쿄 돔, 교세라 돔 오사카, 삿포로 돔과 함께 일본의 5대 돔구장 중에 하나이기도 하지요. 다만, 이들 돔구장과 다른 차이가 있다면, 개폐형 돔구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비용 문제도 그렇고, 수비의 방해되는 측면, 주변 소음 문제 등을 이유로 실제로 돔을 열고 펼치는 경기는 많지가 않습니다.

 

 

후쿠오카 야후오쿠! 돔은 1993년에 만들어진 야구장인데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전신이었던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시절부터 사용된 야구장입니다. 야구장의 건설비용으로 당시 기준으로 800억 엔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 비용은 모기업이었던 다이에가 전부 부담했다고 합니다. 정작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는 이 당시 성적이 신통치가 않았고요.

 

 

1998년 무렵부터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가 선전을 거듭하기 시작하더니 이듬해인 1999년과 2003년 각각 퍼시픽리그와 일본시리즈를 휩쓸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무렵 일본의 거품경제가 꺼지기 시작하면서 모기업 다이에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모기업 다이에는 일본의 최고의 유통, 소매기업인 이온(Aeon), 이온그룹의 자회사로 편입되는 처지로 전락했고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도 소프트뱅크라는 보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나 2005년부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출발하게 됩니다.

 

 

후쿠오카 야후오쿠! 돔의 이전 명칭은 소프트뱅크가 인수할 당시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인 야후! 재팬의 구단 명명권 네이밍 권리를 사들여서 후쿠오카 Yahoo! Japan 돔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다가 2013년 무렵 현재 명칭은 후쿠오카 야후오쿠! 돔으로 이르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는 외야에 테라스 석을 설치하고 펜스 높이를 낮추면서 이전보다 타자 친화적인 구장으로 바뀌어나가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일본 후쿠오카 현지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불리기도 하고요.

 

 

 

 

 

SAPPORO DOME 10TH ANNIVERSARY Logo Vector.ai

SAPPORO DOME 15TH ANNIVERSARY Logo Vector.ai

SAPPORO DOME JAPANESE Logo Vector.ai

SAPPORO DOME Logo Vector.ai

 

 

 

 

 

이번에는 일본에서 최북단에 위치한 야구팀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홈구장 삿포로 돔의 로고입니다.

 

 

삿포로 돔은 1998년에 착공하여 2001년 완공이 되었고요,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축구팀인 콘사도레 삿포로만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안습한 현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현재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2004년에 홋카이도 지역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삿포로 돔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고요. 벌써 닛폰햄이 홋카이도로 연고지를 이전한지도 벌써 15년이 다 되어 가네요. 도쿄 시절까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인기면에서 밀렸던 닛폰햄이 홋카이도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무사히 정착하면서 인기가 크게 오르게 됩니다.

 

 

무사히 정착한 것과는 다르게 나고야 돔 못지않게 인조잔디인데다가 잔디 상태마저 좋지 않아서 여기에 덤으로 바닥이 콘크리트라 선수들의 부상이 자주 발생해서 악명높은 구장으로 손꼽혔습니다. 펜스도 안전하지 않아서 부상자가 속출했고요. 여기에 닛폰햄 구단 차원에서도 임대해서 사용하는 처지라 입장료나 각종 마케팅 정책을 활용해서 수익을 창출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결국 축구팀인 콘사도레 삿포로, 야구팀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모두 각각 홋카이도 내 신구장이 완공되는 시점에 맞춰 이전할 계획이고요, 홋카이도 냇폰햄 파이터즈의 경우 2004년부터 2022년까지 삿포로 돔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요, 2023년 시즌부터는 개폐형 구장인 가칭 홋카이도 볼 파크로 정해진 신구장으로 이전할 계획에 있습니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비슷한 시기에 홈구장이 바뀌는 것이죠. 

 

 

로고는 삿포로 돔이 각각 10주년, 15주년의 기념 로고도 확보하게 되어서 같이 올리고요, 공식적인 로고는 영문으로 된 "Sapporo Dome Co., LTD."를 사용하시거나 나무위키에 올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올린 로고들을 나무위키에 올려주신 유저분을 확인하게 되었는데요, 나무위키에 올려주신 유저분께 거듭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제가 야쿠르트 아톰스의 심볼들과 난카이 호크스의 엠블럼, 클라이맥스 세리그, 파리그의 엠블럼도 확보하게 되어서 조만간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TOHOKU RAKUTEN GOLDEN EAGLES 1st TIME CHAMPIONS Logo Vector.ai

 

 

 

 

 

저번에 말씀드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첫번째 우승이자 이를 달성해냈던 호시노 센이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는 2005년 시즌부터 참가한 가장 젊은 구단입니다. 2004년에 붉어진 일본 프로야구의 재편 문제를 말미암아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와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합병을 통해서 오릭스 버팔로즈로 재탄생했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는 소프트뱅크에 인수가 되면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거듭났고요.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12개 구단의 양대리그에서 10개 구단의 단일리그로 개편하려다가 선수협의회의 반발과 정확히 미야기 현 센다이 지역 넓게는 도호쿠를 연고로 라쿠텐이 12번째 신생 구단으로 창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입장 관객의 집계 문제, 마케팅 문제를 비롯해 그간 일본 프로야구가 안고 있었던 내부의 문제점이 폭발했던 시기가 2004년이었지요. 2005년부터 일련의 문제점들을 고쳐나가고, 입장 관객의 집계 문제나 마케팅 문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기도 이때이기도 하고요, 2005년부터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에 속한 팀들끼리 일종의 인터리그 방식의 교류전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2005년 창단이 된 이래로 모기업인 라쿠텐의 비용절감노력과 드라마틱한 창단 과정으로 선수 수급이 원활하지가 않으면서 하위권을 전전하게 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사정도 있었는데,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와 오릭스 블루웨이브 간의 구단 통합으로 해산되던 킨테츠의 선수들을 온전히 받기도 힘든 상황이 존재했습니다. 결국 알짜라 불리던 선수들은 오릭스쪽으로 분배가 되었고요.

 

 

이런 탓에 2005년 첫 시즌에만 2003년 롯데 자이언츠가 냈던 처참한 성적과 비슷한 성적을 냈습니다. 이 당시 5위였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도 제 기억으로 25경기가 넘게 났을 정도이니까요. 빵빵한 모기업을 얻었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1위를 차지했는데, 게임차가 무려 50경기가 넘게 차이가 났을 겁니다.

 

 

다만, 위안이라면 구단을 운영하면서 재무구조는 건전했다고 합니다. 적자를 안보고 흑자를 봤으니까요.

 

 

이후 2010년까지도 처절했던 순간들이 지나가다 2011년 열혈남아로 불렸던 투장 호시노 센이치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감독이 바뀐 것부터해서 짜다는 인식의 라쿠텐이 조금씩 투자를 늘려나가기 시작했던 때가 바로 호시노 센이치가 감독으로 부임했던 시기였습니다.

 

 

호시노 센이치는 우리나라 야구팬들에게도 상당히 친숙한 지도자입니다. 베이징 올림픽때도 그랬고, 이전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으로 재임할 당시 선동열, 이종범 등을 주니치 드래곤즈로 영입했던 지도자여서 우리나라 야구팬들에게 더욱 잘 알려진 지도자였습니다. 이번 포스팅의 우승 기념 로고가 탄생했을 당시 상대팀이 공교롭게도 요미우리 자이언츠였는데, 호시노 센이치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그토록 이를 갈며 평생 타도의 목표를 삼았는지에 대해서도 차차 설명을 하겠습니다.

 

 

 

 

 

 

호시노 센이치의 청년 시절 모습입니다. 호시노 센이치가 중장년이 되어 지도자로 팀을 이끌 때도 잘 생겼다는 인식을 받곤 했는데, 역시나 청년 시절때는 말 그대로 미남이었습니다. 이목구비도 뚜렷하고요.

 

 

호시노 센이치는 원래 한신 타이거즈 팬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쪽에서 당시 타부치 코이치의 지명이 실패하게 되면 지명하겠다는 의사를 여러차례 표명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예상대로 타부치 코이치가 한신 타이거즈로 가게 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던 카와카미 타츠하루가 전력감보다는 유망주쪽으로 방향을 바꿔 시마노 오사무를 지명하게 됩니다. 전에 포스팅을 했던 한큐 브레이브스의 브레이비, 오릭스 블루웨이브 네피의 슈트액터로 활동했던 시마노 오사무가 맞습니다.

 

 

시마노 오사무가 현역 시절에 1승 4패 평균자책점 5.05로 특출난 성적을 낸 선수는 아니었지만, 고시엔에 두 차례나 진출했으며 또 좋은 성적을 냈던 터라 요미우리의 선택도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호시노 센이치의 입장에서보면 뒤통수를 제대로 맞게 된 상황이라 이때부터 철저하게 안티 요미우리의 성향을 지니며 타도 교진을 평생의 목표로 삼게 된 것이지요.

 

 

시마노 오사무는 이전에 설명드린 것과 같이 요미우리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한큐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가 되어 몇 년 뒤 은퇴를 하게 됩니다. 이후 1981년부터 한큐 브레이브스의 마스코트인 브레이비의 슈트액터로서 활약을 하면서 이후 오릭스로 구단이 매각되어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네피의 슈트액터로 1998년 10월 3일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전까지 엄청난 활약을 펼치게 됐습니다.

 

 

시마노 오사무씨와 관련된 내용은 https://flytoazuresky.tistory.com/730 이곳에서 확인하시면 되고요.

 

 

 

 

 

 

1969년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한 호시노 센이치는 1982년까지 현역 투수로서 활약을 펼쳐 통산 146승을 거둔 에이스로 활약하게 됩니다. 이후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주니치 드래곤즈의 감독 1기를 지냈고요, 이후 다시 주니치 드래곤즈로 부임하여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주니치 드래곤즈의 감독 2기를 지냈습니다.

 

 

 

 

 

 

호시노 센이치의 분신같았던 주니치 드래곤즈 유니폼과 그의 등번호 77번입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주니치 드래곤즈의 마무리 투수로 나고야의 태양이란 별명까지 얻었던 선동열이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자 선동열을 격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마지막 사진은 2001년 9월 당시 한신 타이거즈의 감독이었던 노무라 가쓰야와 경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유니폼과 세번째 사진은 모두 2001년의 시간을 담고 있고요.

 

 

2001년 한신 타이거즈 노무라 가쓰야의 후임으로 바로 호시노 센이치가 부임했는데요. 이 시기까지 호시노 센이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다른 팀들에게 발목이 잡혀 번번히 결승 문턱에서 좌절을 맛봐야 했습니다.

 

 

호시노 센이치가 열혈남아, 투장이라는 별명이 생긴 이유는 그의 성격이 그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호시노 센이치는 선수들에게도 폭행을 서슴치 않았으며, 심판들에게 항의하는 건 예사였으며 납득되지 못한 판정을 내리는 심판에게도 폭력을 가했습니다. 선수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도 결혼을 하거나 가족이 있는 선수들에게는 절대로 가족들이 보이는 앞에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며, 체벌이라 쓰고 폭력을 행사한 선수에게는 다음 경기에 반드시 주전으로 출전시키는 원칙을 지켰고요, 체벌 당한 선수가 잘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신이 후원받는 자동차나 고가의 야구 장비 등을 아낌없이 전해주며 채찍과 당근을 능수능란하게 배합할 줄 아는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선동열과 이종범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선동열은 호시노 센이치에게 욕을 먹는 정도로 끝났다면, 이종범은 호시노 센이치에게 아예 폭력을 당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동열이 일본에 처음에 진출했을 당시 선동열 개인에게 있어 여러 여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성적도 잘 나지도 않아서 호시노 센이치에게 그럴거면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식의 자존심 상하는 말이나 욕도 먹었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선동열을 꾸준히 경기에 내보내고, 때로는 칭찬이라던가 격려를 같이 해주면서 선동열이 일본에 안착하는 데 적잖은 도움을 줬던 지도자 역시 호시노 센이치였습니다. 선동열을 꾸준히 믿어줬던 지도자였고요. 그래서 선동열이 개인적으로 해태 타이거즈의 감독이었던 김응용, 해태 타이거즈의 수석코치, 쌍방울 레이더스, OB/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지낸 김인식과 더불어 여기에 호시노 센이치를 존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998년 IMF로 인해 환란을 겪던 한국사회가 상당히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선동열의 호투는 한줄기 빛이었습니다.

 

 

 

 

 

 

2013년 시즌 초반 여세를 몰아 선두권을 치고 나가기 시작하면서 우리로 치면 가을야구만 가도 만족이었던 라쿠텐에게 퍼시픽리그 1위는 물론 일본시리즈에서 우승까지 시켜주면서 지도자로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동안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교진 출신의 지도자들에게 번번히 발목이 잡히곤 했었는데, 일본 프로야구에 입문한지 44년, 지도자인생 27년만에 숙적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물리침과 동시에 자신의 감독 인생 첫번째 우승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호시노 센이치의 나이는 무려 우리나라로 치면 칠순을 바라보던 67세였습니다.

 

 

평생의 목표를 달성한 건 덤이었고요. 선수들에게 헹가레를 받으면서 감격에 겨워하는 호시노 센이치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평생의 목표를 달성했던 호시노 센이치는 이듬해 건강 상의 문제와 고령에 가까워진 나이 탓에 지도자에서 물러나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라쿠텐 구단의 사실상 단장으로서 2선으로 물러나 활약을 하는 와중 명예의 전당에 헌액이 되기도 했지요. 사실상의 라쿠텐 단장으로 활약했던 모습과 2017년 WBC를 준비하던 우리나라의 훈련장을 방문하여 선동열을 격려하던 모습이고요.

 

 

제가 제목을 뽑았던 사진이 바로 저 사진입니다. 선동열이 호시노 센이치가 뛰어오라고 하자 부리나케 달려온 모습이죠. 자존심이 강한 나고야의 태양 선동열마저 공손하게 만들었던 열혈남아 호시노 센이치의 모습입니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호시노 센이치가 작년 2018년 1월 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췌장암이었는데, 세상을 떠나기 2주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건강한 모습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각종 행사에도 곧잘 참석하고는 했었는데, 열흘 정도 무렵부터 건강이 갑자기 나빠져 가족들과 미국 여행을 계획했다가 취소했다고 합니다. 이후 유명을 달리했고요.

 

 

호시노 센이치가 유명을 달리하기 불과 이틀 전에 주변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내일 모레에 있을 구단 회의에 참석할 수 있으려나...?'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열혈남아이자 투장인 호시노 센이치 다운 말이랄까요...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항상 강인한 모습을 보여줬던 호시노 센이치 다운 모습입니다.

 

 

숱한 세월동안 오직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도를 평생 목표로 내걸고, 일본 프로야구에 입문한지 44년, 지도자로서 부임한지 27년만에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타도한 투장 호시노 센이치는 돌아오지 않는 별이 되었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별이 된 투장에게 라쿠텐은 그의 분신과도 같았던 등번호 77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호시노 센이치 개인에게는 꽤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타도한 투장, 열혈남아란 별명과 함께 77번이라는 등번호와 함께 투장의 진면목을 보여줬습니다. 라쿠텐의 이야기를 쓴다고 한 게 마치 호시노 센이치의 이야기를 길게 써버렸네요.

 

 

지금도 타도 교진을 외치며 결국엔 그 목표를 달성했던 당당하고 강인했던 호시노 센이치의 모습에서 보여줬던 한 편의 인생이 잔잔히 흐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