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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동호인들에게 일반열차 누리로와 무궁화호 리미트객차 제조사로 널리 잘 알려진 SLS 로고를 올립니다. 덕후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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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역은 이 날 장항선의 계획된 마지막 답사역이라 그런지 한결 수월했다.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해야할까...

 

청소역에서 무궁화호의 교행을 보고 웅천역에 도착했을 때 웅천역에서 받은 인상은 정겨움이었다.

 

○ 웅천역의 역사

 

- 1931년 8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 1982년 4월 19일 역사 신축 준공

 

- 1988년 12월 20일 운전취급방식을 연동폐색방식으로 변경

 

- 1991년 9월 1일 소화물 취급 중지

 

- 2006년 11월 15일 화물 취급 중지

 

 

이미 오래전부터 영업을 시작해온 웅천역은 1982년 현재 역사를 준공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었다. 보령의 명소 중에 하나인 대천해수욕장과 달리 번잡하지도 않으면서 편안한 휴양을 즐길 수 있는 무창포해수욕장이 있는데, 무창포해수욕장을 이용하기 위해서 웅천역을 이용하는 게 더 가까운 편이다. 물론, 웅천역에서 무창포해수욕장으로 가려면, 웅천역에서 내려 시내버스 등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무창포의 내음이 전해지는 것처럼 웅천역은 내게 더 없이 편안한 존재였다.

 

 

 

현재 코레일의 신 CI 체계가 적용됨에 따라 역명판, 역간판 등이 시대에 순응하고 있으나 장항선의 비전화구간에 있고, 과거 소화물을 취급했던 장소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마치 신구조화를 이룬다고 해야할까. 신구조화를 이루면서도 거북함보다는 조화로움을 전해주고 있는 듯 하다.

 

 

 

 

웅천역의 광장 방향에서 찍은 웅천역의 첫번째 파노라마 사진인데, 찍은 사진도 만족할 뿐만 아니라 장항선의 옛 정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청소역 못지 않게 웅천역도 가치를 매길 수 없다. 이전에 청소역과 웅천역을 보며 소중한 가치를 지닌 역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사실에 서운하기만 하다.

 

 

 

 

웅천역의 역사로 들어서자마자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구수하기로 소문난 충청도사투리로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규모가 큰 관리역, 중추역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경을 시골에 있는 보통역에서는 언제든지 느낄 수 있다.

 

사람냄새가 난다고 해야할까? 시골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냄새 같은 것 말이다.

 

 

 

 

웅천역은 대천역과 다르게 G-Train으로 불리는 서해금빛열차 1왕복을 제외하곤, 장항선을 운행하는 모든 새마을호와 무궁화호가 정차한다. 많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다. 이용객 역시 꾸준한 편에 속한다.

 

지금 사진을 정리하고, 포스팅을 하는 시점에서 눈에 띄는 건 당연히 서대전이다. 2016년 12월 9일 시간표 대개정이 있기 전까지 장항선을 경유하여 대전까지 기차여행을 할 수 있던 기차편 1왕복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궁화호 1556과 무궁화호 1563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탑승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이제는 서대전을 가기 위해서 익산역으로 가서 "환승"을 해야만 한다. 사실, 아무리 추억과 활용을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시간이 적게 걸려야 하고,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하는 효율성의 논리앞에 다 무용지물일 뿐이다.

 

 

 

 

매표창구 역시 어느 시골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표를 담당하던 직원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를 처리한 점 깊은 양해를 구한다.)

 

 

 

 

웅천역 한켠에 石공예홍보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웅천역 나름대로 특색이 마련되어 있어 색다른 맛이 있다. 각종 석공예품이라 돌로 만들었을 터인데, 돌로 어떻게 저렇게 멋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란 생각에 감탄하기도 하고, 자연을 가다듬었던 장인들의 솜씨를 보며 편안한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에 역의 가치가 더욱 올라가는 것 같다. 

 

웅천역을 보며 역이 단순히 거쳐가는 공간만이 아닌 역의 특색을 살려 문화공간으로 좀 더 승화시켜나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웅천역은 지방에 있는 시골역들의 소중한 참고서라 할 만 하다.

 

특히 시골역은 단순히 거쳐 지나가는 곳만이 아닌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갖춘 존재들이다. 

 

비록 적은 공간일지라도 역의 한 공간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비춰볼 때 웅천역은 정말 좋은 역이다.

 

 

 

 

웅천역의 맞이방 내부가 크지도 작지도 않고, 알맞다. 기차를 기다리거나 잠시 쉬어가기 위해 모여 담소를 나눈 등 정겹고 편안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겹고 편안함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가 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웅천역의 소중한 정취를 간직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기에 웅천역의 곳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웅천읍의 마을 풍경이 궁금해져 역사 광장으로 나와봤다.

 

 

 

 

역사 앞 정자부터 그야말로 평온한 한 시골 마을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동네도 포근하고, 덩달아 내 마음도 포근해진다.

 

 

 

 

웅천역 광장에서 선로 방향으로 웅천역의 역사를 담아본다. 웅천역이 전해주는 넉넉한 인심처럼 파노라마 사진도 덤으로 추가했다.

 

 

 

 

웅천역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무궁화호 기차를 기다리며 광장 방향의 파노라마 사진을 또 만들어봤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들을 수 있고,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기차를 기다리는 소박한 풍경들이야말로 도시에서 관리역에서 중추역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풍경들이다. 또한, 역의 곳곳이 자연과 잘 어울리고 있는 분위기다. 기차여행도 하고, 웅천역 주변에서 자연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웅천역에서 천안역 가는 승차권을 웅천역 창구에서 구매하고, 입장권 발권도 같이 부탁을 드리니 기꺼이 발권해주시던 역직원분의 넉넉한 인심까지 이런 소중한 것들을 과연 다른 역에서 또 느낄 수 있을까 싶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시골역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 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특색을 가진 기차역이라는 공간에서 위안을 받고 힐링을 받을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시골역의 가치를 만끽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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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 465-10 | 웅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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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역은 한 방송사의 추석 특집 단막극이었던 "아버지 당신의 자리"로 널리 알려진 역이다.

 

꼭 "아버지 당신의 자리"의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청소역은 장항선의 아버지 같은 존재이자 한국철도의 숨겨진 또다른 보물로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역이다.  

 

 

○ 청소역의 역사

 

- 1929년 12월 1일 진죽역(眞竹驛)으로 배치간이역으로 영업 개시

 

- 1958년 9월 1일 보통역으로 승격

 

- 1961년 3월 12일 현 역사 착공

 

- 1961년 11월 9일 현 역사 준공

 

- 1988년 12월 1일 진죽역에서 청소역으로 역명 변경

 

- 1990년 1월 1일 소화물취급 중지

 

- 2006년 12월 4일 청소역사 등록문화재 305호로 지정

 

- 2013년 8월 1일 승차권 차내취급역으로 전환

 

 

청소역은 청소역의 역사처럼 청소역의 탄생부터 존재, 그리고 역사(驛舍)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역사(曆史) 자체라 하겠다.

 

이날 청소역의 답사는 정말 만족 그 이상이었는데, 뒤이어 사진으로 나오게 되겠지만, 청소역의 역사(驛舍), 청소역 맞이방 내부에 있는 애드몬슨 승차권, 청소역 주변 마을과 건널목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거기에 이날 내 마음을 알아준 것처럼 청소역에서 찍었던 사진들도 내 마음속에 쏙 들었다. 다시 말해, 옛 세월의 흔적, 그리고 장항선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이 바로 청소역이었다.

 

이렇듯 청소역은 장항선의 보물이자 장항선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조화란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청소역은 옛 모습을 가지런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과 자연스롭게 또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었다. 거스르지 않고 순리대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야말로 이상적일 것이고, 청소역은 이에 가장 부합하는 역이 아닌가 싶다.

 

비록 옛 모습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시대적 흐름에도 거스르지 않는다.

 

조화란 말이 바로 청소역을 함축하는 하나의 단어라 할 수 있다.

 

 

 

 

청소역은 2006년 12월 4일 문화재청으로부터 역사적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청소역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역이자 1929년에 개업하여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로서 살아 숨 쉬고 있고, 비록 근미래에 복선전철화가 되어 영업상 폐역이 될지라도 묵묵히 내색없는 아버지와 같은 든든한 존재로서 때론 장항선의 산증인으로서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청소역이 위치한 보령시의 상징인 머드를 형상화한 캐릭터를 곁들여 청소역에 대한 기본지식과 설명을 통해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청소역의 역간판부터 출입문 안내판까지 과거 철도청 시절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역사 광장앞 음식점과 매점, 그리고 택시승강장까지 청소역이 전해주는 모습 하나 하나가 그야말로 정겹다. 삭막하고 지친 일상속 청소역에서 정겨움을 만끽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야말로 역사 속으로 추억 속으로 사라진 에드몬슨 승차권이 액자에 담겨 있어 청소역의 가치를 더욱 빛내주고 있었다. 쉽게 접하기 힘든 검표가위, 전호깃발, 집표도장도 청소역의 알림판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다른 블로거의 답사기를 통해 파악한 바 있었는데 아쉽게도 없었다. 마침 역 구내를 순찰하던 역직원에게 영문을 물어보니 잘 모르겠지만, 분실 및 도난 등의 이유로 치우지 않았을까란 의견을 말해주었는데, 현재 승차권 차내취급역으로 전환된 청소역의 상황을 볼 때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표가위, 전호깃발, 집표도장이 있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에드몬슨 승차권과 운치 있는 긴 벤치, 역사 곳곳에 남아있는 세월의 자취만해도 청소역은 장항선의 철도박물관이라 칭할만 하다.

 

 

청소역 내부에는 보령시의 명소인 대천해수욕장, 무창포해수욕장, 오천항, 오서산 등의 사진들이 걸려있어 청소역뿐만 아니라 보령시의 여행지를 사람들에게 적극 권하고 있는 듯 했다.

 

 

 

 

 

2013년 8월 1일 청소역이 승차권 차내취급역으로 전환되고 말았다. 역 운영 개선 및 경영효율화가 목적이라곤 하나 그래도 내심 섭섭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결국 청소역은 승차권 차내취급역으로 전환되면서 역직원들이 3조 2교대로 운전취급만 담당하고 있다. 인접역인 광천역과 대천역에서 승차권을 예매할 것으로 안내하고 있으나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마을의 특성상 꽤 불편함을 느낄 듯 싶다. 그래도 무인화의 칼날을 피해갔으니 다행이라는 현실에 안도해야하는 상황이니 웃프다는 게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역 운영 개선 및 경영효율화의 어두운 단면을 나타내주는 듯해서 씁쓸함만 느끼게 되었다. 

 

 

 

 

매표창구에서 승차권 예발매를 취급했다면 더욱 정겨웠을 상상을 마음속에 넣어둔다. 매표창구 옆에는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가 액자로 조촐하게 담겨있었다.

 

 

 

 

얼핏보면 청소역을 무인역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래도 청소역은 엄연히 역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보통역이다.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이야말로 이날 청소역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다. 청소역에서는 전철화가 되어 있지 않아 다소 거추장스러워 보일 수 있는 전선들이 보이지 않아 사진을 담기가 한결 수월했다. 미세먼지가 아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자연은 처음에 모든 것을 내주지 않는가보다. 사실, 처음에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리면, 그것만큼 재미없는 게 어디 있을까?

 

다음에 청소역을 들렀을 때를 상상해보며 청소역을 꼭 한번 다시 들리기로 다짐을 해본다.

 

 

 

 

광천역 방면으로 놓여진 승강장 위의 가로등이 더욱 청소역의 정겨움을 배가시켜주는 듯했다. 다음에 청소역에 올 때는 가로등을 벗삼아 기차와 사람이 조화되는 사진을 담기로 다짐해본다.

 

 

 

 

과거 화물을 취급했던 화물승강장 위에는 선로와 이름 모를 벽돌들이 놓여있었다. 그간 사용하지 않았는지 듬성듬성 잡초들이 자라나 있었다.

 

 

 

 

청소역의 역명판만큼은 시대를 앞서간다. 현재 코레일 CI체계로 개편된 역명판을 채용하고 있었다. 미세먼지로 가려졌지만, 청소역에서는 오서산을 바라볼 수가 있다. 청소역에서 오서산의 사시사철을 담아보고 싶은 욕구가 요동친다. 오서산의 봄여름가을겨울이 사뭇 궁금해진다.

 

산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정겨운 마을, 철도박물관에서나 볼만한 철도의 소중한 유산들이 시골역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청소역이야말로 가장 조화롭고 이상적인 시골역이 아닐까 싶다. 물론, 청소역이 지닌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환산불가일 것이고. 

 

 

 

 

웅천역으로 떠나는 열차시간이 다가오면서 청소역의 역사 전경과 청소역 주변 마을을 사진에 담아보기로 했다. 청라, 대천 시내방면으로 가는 도로와 마을, 살아있는 박물관이자 역사로 숨쉬고 있는 청소역의 역사 전경을 각각 플랫폼과 광장방향으로 담아본다.

 

청소역에서 담았던 사진 하나 하나가 포스팅하는 지금 새롭게 내 마음속으로 다가오는 듯 하다. 청소역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과 더불어 청소역에서 보고 담았던 사진들이 내가 기대한 이상이라 정말 만족 그 이상이었다.

 

 

 

 

청소역의 진정한 마지막 하이라이트! 청소역에서만 볼 수 있는 무궁화호의 교행이다. 청소역을 떠나 웅천역으로 가기 전 운전취급을 보던 역직원이 역무실에서 나와 사람들에게 열차가 들어오니 조속히 플랫폼으로 갈 것을 재촉했는데, 바로 청소역에서만 볼 수 있는 무궁화호의 교행때문이다. 용산행 무궁화호 1558과 익산행 무궁화호 1557이 열차 다이아상 교행하는 관계로 청소역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마치 내게 다음에 또 오라는 당부와 더불어 청소역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는 소중한 선물과 같았다.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을 내 눈으로본 게 믿기지 않았다. 이 날 청소역의 답사는 100점 만점에 10,000점이다.

 

결국 시간이 되어 청소역에 더 있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한 채 나는 웅천역으로 가는 무궁화호에 몸을 실는다.

 

 

오래전 추석때 단막극으로 유명 방송사에서 방영된 「아버지 당신의 자리」의 아름다운 글귀와 더불어 이날 청소역에 다녀온 소중한 추억을 바탕으로 다음번 청소역을 방문했을 때 청소역의 숨겨진 참모습을 만끽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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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당신의 자리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청소역


광천역과 대천역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간이역이다.


번화한 두 역사와는 달리 이제는 간간히 오가는 햇볕과 바람만이


숨을 고르고 가는 쇠락한 간이역으로 남아있다.


70여 년의 장구한 세월을 간신히 버티고 있는 듯, 초록의 기와는 하늘을 얹고는


그저 쓸쓸하다.


한때는 많은 이들이 오고갔을 역.


시대는 변하는데 변하지 못하는 간이역은 하나 둘, 폐역이 되어간다.


기차는 지나건만 멈추어 주질 않는다. 아무도 찾아 주지 않아


있어도 있지 않은 존재.



늙어감도 그러한 것 같아 서럽다.


하루가 다르게 낡아가는 것처럼......


아무도 다가와주지 않는 고독.



쓸쓸함과 헛헛함을 그저 그러해야만 하는 듯 삭히며 짐 지고 가는 노인.


버림받고 있는 간이역처럼


자식에게 등 돌려진 자신도 閉驛(폐역)을 앞둔 그와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쇠락한 청소역을 무대로 간이역과 인생을 함께한 노인의


상처 깊은 가족사를 통해


함께 견뎌내고 함께 건너가는 힘.


가족 간의 이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이


사람을 살아있는 것처럼 살아가게 해주는 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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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시 청소면 진죽리 343-1 | 청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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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알음알음 수집해왔던 열차 브랜드 벡터파일들을 한 곳에 정리한 파일입니다. 새마을호와 무궁화호의 경우 코레일2007체와 Create Outline 방식을 이용하여 만들었고요.

 

KTX-산천 로고의 경우 http://info.korail.com/mbs/www/jsp/board/view_info.jsp?spage=61&boardId=9886174&boardSeq=10216835&mcategoryId=&id= 이곳에서 다운받아 이용했습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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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으로 접어든다.

 

장항선의 처음을 여는 역이 판교역이었다.

 

판교역, 청소역, 웅천역으로 이어지는 장항선 간이역 답사기의 첫 시작이 바로 판교역인 셈이다.

 

개인 사정상 일정상 판교역, 청소역, 웅천역을 한번에 답사해야 했기에 다음에는 철저하게 준비해서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큰 역들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필자는 기차여행다운 기차여행으로 영동선, 태백선이 아닌 주저없이 장항선을 꼽는다. 비록 복선전철화를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용산역을 출발해 천안역까지 도시적인 풍경을 접하고, 천안역 이남으로 충청도의 서해 바다와 갯벌을 보일 듯 말 듯 보여주며 논과 산으로 이어지는 풍요로운 자연 경관을 보여주다가 장항역을 지나 군산역으로 들어서면 익산역까지 이어지는 새만금의 광활한 풍경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이다.

 

즉, 장항선이 가진 매력은 디지털적인 시각과 아날로그적인 시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특히, 수도권과도 거리가 멀지 않아 영동선이나 태백선처럼 기차여행을 하는 데 있어 큰 부담을 주지않는 점도 큰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거기에다 유일하게 새마을호의 정기노선이 운행하는 곳이 바로 장항선이라는 점도 큰 몫을 차지한다.

 

 

 

○ 판교역의 역사

 

- 1930년 11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 1984년 10월 31일 역사 신축

 

- 1991년 9월 1일 소화물 취급 중지

 

- 1991년 9월 15일 소화물 취급 개시

 

- 2006년 5월 1일 소화물 취급 중지

 

- 2008년 11월 28일 장항선 이설과 함께 현 역사로 이전

 

 

 

역사로 보듯 판교역은 어느 역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냥 평범하게 묻어간다고 해야할까?

 

그러나 판교역이 특별한 건 과거 아날로그를 뒤로 한 채 디지털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처음 판교역을 접했을 때 문화충격을 겪었다. 마치 수도권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기에 그렇다.

 

판교역의 옛 역사는 아기자기함이 담겨있는 역사 중에 역사였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새로 생긴 현재 역사는 아기자기함을 뒤로 한 채 뭔가 세련됨과 동시에 앞서가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 날 오전 대천역에서 탑승한 무궁화호 1553을 타고, 막 판교역에 도착하자마자 판교역의 모습을 담아보게 된다. 판교역에서 승하차가 끝나고 여객전무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평소 꼭 담고 싶었던 사진 중에 하나였는데, 공교롭게도 판교역에서 담게 되었다.

 

내렸을 때부터 판교역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수도권에 있는 전철역에 왔다고 느껴질 정도로 판교역은 과거의 아기자기함을 뒤로 한 채 현대화가 된 채로 거듭나 있었다.

 

 

 

 

판교역에서 몇 명의 사람을 내려주고, 또 몇 명의 사람을 태운 장항선 무궁화호는 마지막역인 익산역으로 유유히 떠나고 있었다. 기차도 사람도 목적지에 도착하여 또다른 목적지를 향해 떠난다. 인생이란 기차여행처럼 수많은 군상들을 만나고, 정해진 목적지에 도착하여 또다른 목적지로 떠나는 기나긴 여행이 아닐까 싶다.

 

 

 

 

역명판도 여느 장항선 소재 역처럼 지주식 역명판이 아닌 달대식 역명판을 채용하고 있는 것부터가 남다른 존재라는 것을 어필하고 있는 것 같다. 수도권에서는 쉽사리 볼 수 있는 것도 일반 로컬선에는 나름 희소성을 지닌 존재로 거듭나는 걸보며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다시금 느껴진다.

 

 

 

 

세련됐다고 느껴질만큼 간이역스러움보다는 보통역 내지 관리역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고 있었다.

 

 

 

 

판교역으로 가려면 한 단계를 거쳐 또다른 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같은 장항선에 위치한 군산역과 역사 구조가 꽤 유사한 편이었다. 다만, 군산역과 달리 역사 규모와 구조가 단촐한 편이 차이라면 차이라 하겠다.  

 

 

 

 

세련됨과 디지털이 대세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이자 사실이겠지만, 아날로그가 그리워지고, 디지털을 가장한 획일화가 뭔가 역이란 존재가 그냥 거쳐가는 존재로만 인식되는 것 같아 씁쓸함을 숨길 길이 없어보인다. 특색을 간직한 역과 뭔가 특색을 가진 역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램이자 마음이다. 

 

 

 

 

판교역의 표 사는 곳이자 판교역의 맞이방이 되겠다. 다른 로컬선의 역들과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판교역 맞이방에 있는 목재의자들처럼 판교역의 맞이방이 옛 판교역의 맞이방처럼 마을 사람들과 여행객들의 사랑방이 되었으면 하는 감상에 젖어들지만, 새롭게 이설된 판교역은 그걸 쉽사리 내어주지 않는다. 뒤에 나오겠지만, 주변에 민가와 마을이라고는 없어서 마을까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판교역의 시간표는 다른 장항선들과 달리 열차시간표가 꽤나 튼실한 편이다. G-트레인 서해금빛열차, 새마을호와 익산, 서대전 방면 무궁화호 편도 1편을 제외하고는 장항선을 운행하는 9왕복 수준의 무궁화호가 거의 다 운행하니 대야역, 청소역과 달리 열차시간표는 잘 갖춰진 편이라 하겠다. 

 

판교역에서 청소역으로 가기 위해 승차권과 판교역의 입장권을 역직원에게 구매 및 발권하였다. 간이역이라 생각되는 시골역들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역직원들이 꽤 친절하게 승객들을 맞이해준다는 점이 간이역에서 근무하는 역직원들이야말로 간이역의 숨은 보석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겠다. 이날 판교역에서 근무하던 역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해줘 간이역의 인심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실내를 벗어나 판교역의 광장으로 나와본다. 이 날 미세먼지 탓에 하늘이 뿌옇다. 미세먼지와 늦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아침의 선선함을 느끼기는 어려운 날씨였다.

 

 

 

 

판교역의 기둥형 폴싸인이 판교역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사진에 나와있는 것처럼 주변에 민가가 없어 판교마을이나 장항, 서천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내버스나 택시 등 다른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야하는 애로사항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옛 판교역의 정겨움은 물론 이용객의 감소까지 이끌어내고 말았다.

 

대천여객 시내버스가 사진에 나오는 데, 보령시에서 웅천역을 경유하여 서천 판교역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라고 한다. 대천역에서 버스를 타고 판교역까지 올 수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 

 

황량함 속에서도 판교역의 기둥형 폴싸인과 더불어 푸른 나무와 아기자기한 의자가 어우러져 판교역의 진정한 내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만족을 느꼈다. 판교역의 진정한 내면과 사람이 조화를 이룬다면, 판교역의 내실은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

 

 

 

 

세련된 출입로를 지나 웅천 방향 플랫폼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5~6명 정도 되보이는 이용객들이 있다고 하지만, 옛 판교역의 명성과 추억에는 부족하기 그지없다. 판교역에도 다른 간이역들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조금만 관심을 두면, 간이역도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부르기에 손색없는 곳이니까.

 

 

 

 

뿌연 날씨처럼 판교역의 미래도 간이역의 미래도 뿌옇기만 해서 내 마음도 덩달아 어두워지기만 한다. 간이역의 현실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날씨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빠름을 추구하는 게 인지상정이 되어가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느림의 미학을 미덕삼아 사람과 사람 속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가져본다.

 

2015년 모 방송사에서 방영된 바 있는 서천 판교마을의 '느리게, 더 느리게'란 말은 판교역을 상징해주는 말이자 빠름을 추구하는 우리 시대에게 통렬한 명제를 던져주고 있다.

 

빠름보다는 때로는 여유를 갖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보다 더욱 편안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비록 판교역의 역사는 세련됨을 갖췄지만, 판교역의 내면은 느리게, 더 느리게 여유를 갖고 흘러가는 역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우리 인생도 여유를 갖고 느리게 더 느리게 흘러가는 인생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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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군 판교면 저산리 308-25 | 판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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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씨가 매우 따듯해지니 어디론가 막 떠나고 싶었는데 이 곳과 그 주변에 가서 머리 좀 식히고 와야 할 것 같네요 혼자 영화보고 왔는데 혼자 여행 다녀 와야겠어요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 봄이 주는 마법 중에 하나가 바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게 한다는 점이죠. 덤으로 일을 하기 싫게 만들고요.^^;

      벚꽃 구경하기가 정말 좋은 날씨입니다. 다녀오면 뭔가 기분이 가벼워집니다.^^

 

 

치포치포 모음집 완료.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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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리역과 더불어 간이역 답사를 마음먹은 순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역 중에 하나가 바로 승부역이다.

 

승부역은 찾아가기도 힘든 곳인데다 영동선 특유의 열차마저 많이 운행되지 않아 대한민국의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히는 곳 중에 하나이다.

 

날이 더웠지만 짜릿한 쾌감을 주던 곳이 바로 승부역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멋을 가진 역이야말로 승부역일 것이다. 각종 블로그의 여행기를 보면 계절마다 승부역의 멋을 담은 계절별 여행기가 끊임없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지에 있어 더욱 가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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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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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시로 승부역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겠다고 할 수 있다. 승부역의 상징인 이 시는 승부역에 근무했던 한 역무원이 쓴 시인데, 춥고 힘들고 오지속에 갇혀 지내던 간절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라 하겠다. 뒤에 나오겠지만, 어찌보면 시가 쓰여진 표지석은 사본이고, 원본은 역사 우측에 나온다.

 

 

승부역의 역사를 보면 승부역은 순탄하지 않았던 역사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역이었다.

 

1956년 1월 1일 현재 영동선의 근간이 되는 영암선이 개통되며 승부역은 바로 이때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1957년 7월 17일 과거 96년까지 존속했던 플랫폼 위의 역사가 완공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 울진군에 속해있던 승부역이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봉화군으로 편입되었다.

 

1996년 9월 17일 현재 승부역의 역사가 완공되어 승부역이 도약하는가 싶었지만 이듬해

 

1997년 10월 15일 보통역에서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001년 9월 8일에는 배치간이역에서 신호장으로 떨어지면서 승부역이 아닌 승부신호장으로 처지가 말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1998년 환상선 눈꽃순환열차가 개통되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론 승부역의 부흥을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다 3년 뒤

 

2004년 12월 10일 신호장인 승부신호장에서 보통역인 승부역으로 다시 승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2013년 2월 21일 영암선 개통기념비가 등록문화재로 승격이 되고,

 

같은 해 4월 12일 영동선의 부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던 O트레인과 V트레인이 정차하게 되었으며, 일반열차인 무궁화호도 1691/1692 정동진 ↔ 부산 노선을 제외한 나머지 영동선 무궁화호는 모두 정차하는 역으로 변모했다.

 

보통역에서 배치간이역으로, 배치간이역에서 신호장으로, 신호장에서 다시 보통역으로 승격됐으니 승부역의 역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시대의 풍파를 모두 겪은 산증인이라 할 수 있겠다.

 

 

 

 

 

 

 

'승부역에 오심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를 보며 드디어 승부역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지에 온 만큼 오지를 틈틈히 둘러보기 시작한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영암선 개통기념비이고,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들어가서 유명해진 측면이 있다. 물론, 승부역은 단순히 영암선 개통기념비보다 곳곳에서 미적 시각과 미적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라 그야말로 오지속 자연을 몸소 느끼며 오랜 시간 생각해볼 수 있는 명소로 더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영암선 개통기념비 부근에 있는 승부역 주변 몇 안되는 민가인데, 따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옥수수밭과 자연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카메라에 한번 담아보았다.

 

 

 

 

과거의 모습에다가 요 근래 완공된 전철화까지 더해져있으니 정말이지 신구조화가 따로 없었다. 한편으론 승부역과 영동선이 완공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었을지 쉽게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승부관, 승부역의 관사인데, 여름과 겨울 내일로 시즌에 맞춰 내일로 여행객들에게 일종의 게스트하우스 형식으로 내일로 여행기간 동안 숙박을 제공한다고 한다. 승부관에서 오지역 승부역에서 나 자신과 고독한 승부를 해보는 건 어떨까?

 

 

 

 

승부시설사업소인데, 이 날 답사를 갔을 때도 승부역 주변에서는 선로보선원들이 더운 날씨 속에서도 시설 및 선로 보수에 여념이 없었다. 이분들이 있어 우리는 마음 편히 철도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승부역의 또다른 상징 "눈꽃마을 승부"란 표지석이 눈에 띈다. 표지석의 모양과 표지석의 글짜가 꽤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 지점부터 냇가를 건너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건너편에서 찍은 승부역 주변 철교의 모습인데, 보기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듯이 사진에 각도에 따라 분위기가 또 달라지는 것 같다.

 

 

 

 

요 근래 살면서 물레방아를 본 적이 없었는데, 승부역에 오면서 10여 년만에 물레방아를 본 거 같아 왠지 모르게 더욱 기뻐했었던 것 같다. 물레방아를 비롯한 자연친화적인 조형물들이 있어 승부역에서 자신과 승부를 하는 것만큼은 정말 외롭지 않다.

 

 

 

 

"눈꽃마을 승부"란 표지석을 두고 조금 올라오면, 승부역의 먹거리 장터가 눈에 보이는데, 이 날은 따로 영업을 하지 않는지 고요하기만 했다. 사진을 찍고 나갈 무렵 마을 주민들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낯선 사람의 방문에도 반가워하며 승부역의 먹거리 장터 시설이 더욱 보강되어 올겨울에 준공(?)이 될거라며 겨울에 승부역에 꼭 방문하길 권한다. 사실, 승부역의 진짜 매력은 바로 겨울에 있으니까.

 

 

 

 

승부역도 그간 시설투자가 이루어졌는지 역 곳곳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목마타기 위에 있는 사진 위의 나무 한그루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아 지조가 느껴진다.

 

 

 

 

승부역의 역명판인데, O트레인과 V트레인이 개통될 무렵 승부역도 양원역, 분천역과 동일한 방식으로 통일되었다.

 

 

 

 

승부역의 역사를 세 장을 연이어 찍어서 올리게 되었다. 승부역의 역사는 더없이 정이 느껴진다.

 

 

 

 

석포방향 선로인데, 사진 속 멀리 선로보선원들의 모습이 들어오며 이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도 안정이 느껴졌다.

 

 

 

 

 

승부역의 출입구 승부현수교가 눈에 띈다. 사람들 한두명이 겨우 다닐 수 있는 넓이인데, 출렁거리면 위험하다며 출렁거리지 말 것을 알려주고 있는 곳이었다.

 

 

 

 

분천, 영주 방향 선로와 플랫폼인데, 곡선과 자연, 그리고 승부역의 붉은 역사가 어우러져 가히 환상이란 말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승부역의 붉은 우체통인데, 승부역의 간이 대합실에 비치된 엽서를 작성해서 보내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정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원을 담아 엽서를 보내는 것도 승부역에서만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 생각한다. 

 

 

 

 

승부역의 간이 대합실은 "세평쉼터"란 정식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빼꼼히 69.2㎢가 나오는 데, 승부역이 영주역 기점 69.2㎢에 위치하고 있는 역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승부역의 간이대합실 세평쉼터에는 승부역에 다녀갔던 여자 개그우먼들의 사인이 걸려있고,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 공지사항과 서적, 각종 포스터와 안내자료 등이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특히 조그만 의자와 난로가 비치된 게 꽤 인상적이었다. 또한,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스탬프가 이곳 세평쉼터에 비치되어 있어 엽서, 승차권, 기타 종이에 날인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알립니다'로 붙여진 공지사항에서 승부역은 승차권을 발매하지 않는 역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승부역은 차내취급역으로서 코레일톡이나 인터넷 예매, 창구예매가 가능한 역에서 승차권을 발매해야 하는 역이라 여행객들 입장에서 다소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승부역에는 역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역(1인 근무역)이기는 하지만, 역직원은 운전취급만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승차권단말기도 없어 승차권 예ㆍ발매가 불가능하다.  

 

 

 

 

승부역의 상징이자 시의 원본이다. 처음에 올라왔던 기념비가 사본이었다면 말이다.

 

지금처럼 각박한 시대이기에 승부역이 더더욱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지친 일이 있을 때 아무도 없는 세 평 오지속에서 나 자신과 승부를 하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에게 있어 힐링이 되고, 재충전을 줄 수 있는 곳으로서 진정으로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스쳐지나가는 간이역(엄연히 보통역이지만)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시간과 장소를 주고, 마음을 다스리게 하며 쉬어가는 공간을 제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간이역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뒤에 나올 청소역과 더불어 승부역은 간이역의 본질에 충실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짓밟는 법만 가르치는 중고등학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기위해 아웅다웅하는 모습들, 각박한 세테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가끔씩이라도 승부역, 청소역 등 간이역에서 마음을 청소하고,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지는 아닐지언정 없어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그래서 요즘 들어 무인화가 거론되는 승부역처럼 유익한 역들이 하나 둘 없어지려고 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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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산 105-1 | 승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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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답사하기로 마음먹었던 시점에 접어든다.

 

사실, 양원역과 비동역의 답사는 예정에 없던 것도 있었겠지만, 양원역과 비동역의 존재조차도 인식이 없었다. 쉽게 말해 양원역과 비동역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날, 승부역과 분천역의 답사를 가기 위해 철암역에서 V트레인에 탑승해서 동점역, 석포역, 승부역을 지나 도착한 역이 바로 양원역이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역을 실제로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객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사진을 찍으러 내려갔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양원역을 보고 난 다음의 기쁜 감정이야말로 바로 이런 건가보다.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라고 조언을 많이 하는데, 마음을 비우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뜻하지 않게 희망하는 것을 얻었을때 경제학적인 최대효용이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양원역은 1988년은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113-2에 위치한 역이 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임시승강장이다. 임시승강장의 양원역이 생겨난 이유는 주변에 교통이 워낙 불편한 탓에 주민들이 직접 조그만 역사와 승강장, 역명판 등 역사시설을 만들어 여객열차 정차를 요구하면서 비롯되었다.

 

주민들의 노력과 청원으로 양원역이 임시승강장이나마 온전히 역으로서 여객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코레일에서는 여객열차 통과를 시키려고 했지만, 주변 교통이 워낙 열악했던 탓에 정거장으로 필요한 역사시설을 갖춘 녹동역, 거촌역, 문단역, 봉성역 등이 여객열차 통과라는 철퇴를 맞았을 때도 양원역은 꿋꿋히 여객열차가 정차하며 온전한 "역"으로서 "정거장"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즉, 양원역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역사이자 사람도 바람도 쉬어가는 간이역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객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눈에 띄었던 건 바로 양원역 대합실이었다. 양원역 대합실 옆에 양원역을 알리는 "양원"이라고 새겨진 조그만 비석이 하나 있었는데 이 조그만 비석이 바로 양원역의 진정한 역간판으로서 가치를 발휘하고 있었다.

 

 

시골의 조그만 버스 정류장처럼 보여도 양원역 대합실은 플랫폼에는 아기자기한 돌로 꾸며져있어 초라해보일지라도 자신이 진정한 간이역이라는 것을 웅변하는 듯 했다.

 

 

 

 

양원역 역사 내부에는 O트레인, V트레인, 그리고 일반열차 무궁화호의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가 적혀있었다. 비록 작은 어느 시골 간이역일지라도 역사로서 갖춰야 할 것들은 다 갖춰져 있는 셈이었다. 또, 인접역인 분천역에서 여객과 관련된 사항들을 붙여놓고, 꾸준히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양원역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간이역에서 볼법한 나무의자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놓여있었다. 비록 역무원도 없고, 승차권을 발권할 수 있는 매표창구도 없지만, 이 정도면 역이라 불리기에 손색없지 않을까? 엄연히 O트레인, V트레인, 그리고 무궁화호까지 정차하니 말이다.

 

 

 

 

양원역의 역명판인데, 양원역뿐만 아니라 승부역과 분천역도 양원역처럼 과거 오래전 방식의 역명판 방식을 채용하고 있었다. 역명판 뒤편으로 마을주민들이 열차 운행시각에 맞춰 손수 만든 식음료나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옛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은 것 같아 과거로 온 것 같은 추억의 회상속으로 빠져본다.

 

 

 

 

V트레인 2013년에 개시되면서 양원역뿐만 아니라 비동역, 승부역, 분천역, 철암역 모두 V트레인의 로고를 띤 별도의 푯말이 설치되었다. 역명판 역시 철암역을 제외하고는 양원역, 비동역, 분천역, 승부역 모두 같은 방식으로 통일되었다. O트레인과 V트레인이 각각 개설되어 교통이 열악한 태백, 봉화지역에 보탬이 됨은 물론, 지역경제에도 나름 도움을 주고 있었다.

 

 

 

 

분천역을 지나 승부역으로 다시 V트레인을 타고 오는 길에 찍은 비동역이다. 비동역 역시 임시승강장인데, 양원역과 달리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만이 이용할 뿐이다. 어찌보면 양원역보다 그 위치가 못할 수 있지만, 비동역 역시 주변에 멋진 자연적 경관을 자랑하기에 양원역과 우열을 가리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V트레인과 더불어 승부역에서 양원역, 비동역을 거쳐 분천역으로 이르는 트래킹 코스도 나름 인기있는 코스라 봄이나 가을 무렵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니 V트레인이야말로 소외된 오지에 있어 효자가 아닐까 싶다.

 

양원역과 비동역에 이어 크리스마스역 분천역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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