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영혼

 

 

 

 

 

정동진에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카메라에 담았던 1673 무궁화호이다.

 

 

사진으로만 보면 날씨가 화창하고, 여름이라는 계절답게 뭔가 우리에게 정열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사진에서와는 달리 조심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불쾌지수가 몹시 높고, 날씨가 정말 덥다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정동진의 트레이드 마크인 시원한 바다도 소용이 없다. 밖에만 나가면 에어컨이 절로 생각이 날 정도다.

 

 

가면 갈수록 여름이 우리에게 무척 가혹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가기가 겁이 날 정도라 이제는 그냥 실내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작년 여름이 남긴 아우라가 강렬해서일 것이다.

 

 

그래도 정동진을 떠나기 전 만났던 1673 무궁화호 역시 강릉에서 동대구까지 장장 6시간이 넘게 걸리는 근성열차에 속한다. 영주역에서 전기기관차에서 디젤기관차로 기관차 교체가 되긴 하지만, 8206호 전기기관차를 비롯해 무궁화호 객차들도 이런 무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근성의 힘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여름도 여름에 맞게 즐기라는 말처럼 생각을 바꿔 여름이 주는 정열의 기운을 받아 근성을 발휘해야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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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목표한 8000호 전기기관차를 잡기 위해 떠난 여정이라고 보면 되겠다.

 

 

뭔가 설레게 하는 소재가 있었는데, 사진에 등장한 무궁화호 해태중공업 출신 객차라고 보면 되겠다.

 

 

새마을호 격하형 객차는 여러 차례 탑승한 적이 있었는데, 해태중공업 출신 객차는 이 날 전까지 단 한 번도 탑승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타보는 해태중공업 출신 객차를 보며 왠지 잘 풀릴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해태중공업 객차는 2018년 12월 시간표 개정이 있기 전까지 새마을호 격하형 차량과 함께 무궁화호 특실로 사용되던 차량이다. 1998년에 제작된 차량으로 총 15량이 생산되었는데, 이 중에서 9량이 레이디버드를 거쳐 E-Train으로 활용되고 있고, 나머지 6량이 무궁화호 특실 객차로 활약한 바가 있다. 해태중공업이라는 이름에서 나와있듯이 과거 기아 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와 맛동산으로 잘 알려진 해태제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로 해태중공업 역시 해태그룹의 계열사였는데, 해태그룹이 IMF의 위기를 넘지 못하면서 철차사업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해태중공업의 창원공장을 당시 디자인리미트에서 인수하면서 SLS중공업으로 탄생했던 역사가 존재했다.

 

 

해태중공업 객차는 리미트 객차와 유사하게 통유리로 구성된 일자형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편으로는 공조장치가 객차 상부에 위치하고, 출입문 역시 이전에 생산된 나뭇결 후기의 객차와 유사한 형태를 띄면서 나뭇결 후기 객차와 리미트 객차를 조합한 형태로 느껴진다. 또한, 리미트 객차로 넘어가던 과도기로 인식되기도 한다.

 

 

새마을호 격하형 객차만 타보다가 처음으로 해태중공업 객차를 타보게 되어 신선함을 느꼈다. 참고로, 객차번호 11265번이었고, 새마을호 격하형 차량과는 달리 LCD와 레그레스트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해태중공업 객차라는 뭔가 기분좋은 소재가 이어졌으면 좋았을텐데, 철암역에서 마주한 건 내가 생각했던 다른 것과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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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포에서 임기까지 단순히 소장하기 위해 발권한 승차권이 되겠다.

 

 

소장하기 위한 승차권인데, 설정한 목적지로 임기를 택한 건 강릉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임기역에 딱 한 번 정차하는 열차이기 때문이다.

 

 

임기역의 경우 1왕복의 영동선 열차만 정차하는 셈이니, 여객열차가 참으로 귀하다고 볼 수 있겠다.

 

 

참고로, 임기역의 경우 현재는 강릉에서 동대구로 향하는 1671 열차와 반대로 동대구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1674 열차 단 2편도의 열차만이 정차한다.

 

 

무궁화호 객차의 감소와 비수익노선들의 불투명한 전망을 볼 때 소규모 기차역들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석포와 달리 임기의 전망도 불투명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이러한 현실적인 예측과는 달리 임기역에 역으로서 생명 숨쉬고, 여객열차가 계속 정차했으면 하는 속마음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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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태백선의 승차권이었다면 오늘은 영동선의 승차권이 되겠다.

 

 

강릉과 영주 구간을 잇는 영동선은 영주에서 봉화까지는 산과 농촌의 풍경이 펼쳐진다면, 봉화부터 강릉까지는 바다와 계곡의 풍경이 펼쳐진다.

 

 

전철화가 됐을지언정 산과 농촌, 그리고 바다와 계곡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이 태백선과 영동선이 선사해주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주요 연선들이 전철화되고, 신선으로 이설하면서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풍경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모습에 비추어 볼 때 태백선과 영동선이 간직하고 있는 모습은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석포역에서 겪었던 모습들도 내겐 꽤 생소하면서도 색다른 멋이 있었고, 석포에서 강릉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가면서 펼쳐진 비경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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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동백산까지 가기 위해 발권했던 승차권이 되겠다.

 

 

발권한 승차권처럼 강릉역에서 처음으로 탑승해본 열차가 바로 1638 무궁화호 열차였다.

 

 

무궁화호야 쉽게 타고 다닐 수 있으면서 동시에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던 열차인데, 새롭게 다시 지어진 역에서 탑승했던 터라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여기에 새마을호 격하형 객차가 특실이 아닌 일반실로 이용했던 것도 뭔가 각별했다.

 

 

편리함을 지닌 새마을호 객차를 무궁화호 일반실 요금에 이용할 수 있어서 정말 좋긴 했다. 바꿔 생각을 해보면, 왕년의 새마을호 객차가 무궁화호 일반실의 가치만큼 떨어졌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편리하고 만족스러우면서 동시에 뭔가 미묘했던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거기에 몇 년 전만 하더라도 6량씩 다니던 태백선 무궁화호가 4량으로 객차가 줄어들었다.

 

 

다녀오고 나서 남겨진 승차권 한 장에 이렇게 많은 사실들이 축약된 걸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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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전 충남 보령에 사는 지인이 꼭 보자고 해서 가는 길에 잠깐 들렀던 보령머드축제로 잘 알려진 대천역이었다.

 

 

차를 한 잔하고 나서 돌아가는 길에 대천역에서 담았던 기관차가 특별한 기관차였음을 이제서야 알았다.

 

 

첫번째 사진에 나오는 7318호 디젤기관차인데, 지금이야 없어졌지만, 레이디버드 전용 기관차였다.

 

 

평소에 잘 모르고 있다가 사진을 정리할 겸 하드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올리게 되었다.

 

 

6월 말을 향해 갈 무렵 날씨가 제법 더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작년 끔찍했던 더위의 예고편이란 사실을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기관차와 함께 대천역의 역명판, 거리표, 그리고 대천역을 주변으로 하는 보령시의 시가지도 함께 담아봤다.

 

 

2016년에도 청소역을 다녀오면서 보령을 둘러본 적이 있었는데, 충청남도 보령시가 내겐 푸근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전해주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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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으면서도 다른 1682 무궁화호 열차다.

 

 

첫번째 사진은 7460호 디젤기관차가 견인했던 부전 ↔ 정동진 1682 무궁화호 열차이다. 2017년 1월 1일 동백산역에서 새해 첫 날 동백산역에서 찍은 사진이 되겠다.

 

 

두번째 사진은 8267호 전기기관차가 견인했던 부전 ↔ 강릉 1682 무궁화호 열차이다. 2019년 5월 29일 석포역에서 찍은 사진이 되겠다.

 

 

1682라는 열차번호와 무궁화호라는 열차등급이 똑같고, 종착역만 정동진역과 강릉역의 차이만 존재할 뿐 운행구간도 동일하다. 또 한가지 소위 말하는 근성열차란 점에서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강릉역이 완공되어 개통되면서 디젤기관차가 전 구간을 견인했던 것과는 달리 부전역에서 영주역까지 디젤기관차로 운행을 하다가 영주역에서 전기기관차로 교체가 되고 난 뒤 강릉역까지 운행을 하는 차이점이 생겼다. 앞서 말한 것처럼 종착역도 정동진역에서 강릉역으로 바뀌었다.

 

 

지금 찍어뒀던 사진들을 다시 찾아보며 정동진까지 운행하는 무궁화호 행선판이 하나의 추억이 된 셈이다. 정동진에서 청량리까지 가는 행선판은 찍어두지 못한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찾아봐야할 듯 싶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짧은 것 같으면서도 길다. 또, 2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음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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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고대하던 8000호를 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석포역으로 향했다.

 

 

솔직히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을 모두 놓쳤던 탓에 마음 속으로 전해지는 씁쓸함이 더했다.

 

 

씁쓸함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태백에서 석포로 가기 위해 하루에 두 번 밖에 없다던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태백을 벗어나는 동안 탄광 도시라는 이미지에서 주듯 화창한 날씨와 대비되는 우중충한 이미지였는데, 동점역을 지나 태백과 봉화의 경계지점은 육송정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육송정에서 아름다운 비경이 조금씩 펼쳐지기 시작하더니 석포로 가는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폭이 좁은 1차선 군도를 달릴 무렵 비경이 점점 아름다운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살면서 이런 모습을 마주해본 적이 없던 터라 속으로 이런 곳도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실감했다.

 

 

40분이 지나 석포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의 주제에기도 한 백두대간의 중심 희망 석포에 도착하였다. 

 

 

석포에 오면서 마주했던 감정은 신기함이었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던 시골 도로를 달려 도착한 장소에 시골이라는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공장이 있고, 기차역을 중심으로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이 있어서였다. 처음해보는 경험에서 느껴지는 신기함과 생경함은 더했다. 신기하기도 했고, 생경하기도 했다.

 

 

이러한 처음 느껴보는 경험과 가는 동안 펼쳐진 아름다운 비경을 바탕으로 8000호대를 두 번 놓쳤던 아쉬움과 씁쓸함이 많이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백두대간의 중심, 희망 석포라는 표지석 뒤로 보이는 공장이 바로 영풍제련소이다. 참고로, 영풍문고의 그 영풍이 맞다. 커다란 도시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러한 시골 마을에 있을 건 다 있다. 관공서부터 노래방도 있을 정도로 다른 시골역들과는 다르게 역세권이 튼실한 편에 속한다. 

 

 

석포역 앞에 위치한 제련소와 역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 석포역의 존재 이유가 되겠다.

 

 

 

 

 

 

 

 

 

 

○ 석포역의 역사

 

 

- 1956년 1월 1일  영업 개시

 

 

- 1957년 1월 17일  구 역사 신축 준공

 

 

- 1971년  ㈜영풍 전용선 신설

 

 

- 1996년 12월 20일  현 역사 신축 준공

 

 

- 2006년 5월 1일  소화물 취급 중지

 

 

- 2016년 7월 4일  석포역 근처 굴현터널에서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 탈선 사고 발생

 

 

 

 

 

1971년부터 영풍제련소의 전용선이 신설됐으니 제련소와 석포역의 역사가 긴 시간 동안 함께해온 셈이다. 긴 시간 동안이나 영동선 철도가 태백을 지나서 만나는 경상북도의 첫번째 관문이 되는 기차역이기도 하겠다. 동시에 봉화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기차역이기도 하다.

 

 

역사를 보면 마치 충북선의 그것이 생각나는 건 순전히 기분 탓일 것이다. 역사가 욕설로 통용되는 철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충북선의 모습을 그대로 복붙해서 넣은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사실, 석포역과 가장 똑같은 형태의 역은 아이러니하게도 강원도 영월에 있는 태백선의 쌍룡역이라고 한다.

 

 

석포역도 여객보다는 화물이 주가 되는 역이고, 쌍룡역도 여객보다는 화물이 주가 되는 역이다. 다만, 비철금속과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석포역과 시멘트를 비롯한 광물을 취급하는 쌍룡역의 취급 품목이 다른 차이가 있다. 여기에 승차권 발매를 하고 있는 석포역과 달리 쌍룡역의 경우 2017년 6월 무렵 동백산역과 함께 승차권 발매가 중단됐다고 한다.

 

 

 

 

 

 

 

 

 

 

모순이라는 말을 바로 이런 곳에 두고 하나 보다. 주변 마을도 편안한 풍경이고, 주변 경치는 꽤 아름다운 편인데 반해, 이러한 마을과 경치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제련소가 자리잡고 있어서였다.

 

 

 

 

 

 

 

 

 

 

길게 생긴 역사와는 달리 맞이방 내부는 보이는 게 전부다. 즉, 여객취급과 승차권발매도 하긴 하지만, 여객취급과 승차권발매는 어디까지나 부라는 의미. 역 앞에 있는 제련소에 필요한 화물취급이 주라는 의미.

 

 

인터넷에 보여진 사진과는 달리 맞이방 내부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철도청 시절의 마스코트이자 캐릭터였던 치포치포가 뜯겨졌고, 맞이방의 한 가운데에 달려 있던 샹들리에도 떨어져 나갔다. 샹들리에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는 LED 전등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맞이방 한 편에 와이파이도 설치되어서 짧은 시간 동안 편리했다.

 

 

또, 승차권 매표창구 위에 있던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가 옆으로 옮겨져 보다 깔끔한 형태로 정리되었다.

 

 

 

 

 

 

 

 

 

 

매표창구 옆에 안전 강조 포스터들이 보이는데, 화물취급이 주가 된 역이고, 각종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특성 탓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목적이 더욱 강했을 것이다.

 

 

매표창구 옆에 있는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를 보면, 무궁화호가 4왕복이고, 이 중에서 강릉과 부산을 오고가는 1691, 1692 무궁화호 열차는 주말 한정으로 다니는 열차이니 평일의 경우에는 무궁화호 3왕복이 전부라는 이야기다. 여객열차 편수가 극히 드물다고 느껴지겠지만, 무궁화호 1671, 1672, 1673, 1674, 1681, 1682, 1691, 1692 이 열차들이 영동선 구간을 운행하는 모든 열차이다.

 

 

여기에 봉화에 있는 임기, 현동, 승부, 분천 같은 경우 4왕복, 3왕복의 열차가 전부 운행을 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석포역이 영동선에서는 나름 규모가 큰 역이라고 하겠다.

 

 

석포는 임기, 현동, 승부, 분천에 비해 주변 역세권 형성이 되어서 1왕복, 2왕복이 더 정차하는 셈이다. 여객수요야 도토리 키재기겠지만, 봉화에 위치한 다른 역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여객수요가 있는 편에 속한다.

 

 

 

 

 

 

 

 

 

 

근본적으로 시골역은 시골역만이 주는 정겨움을 가지고 있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포근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화물이 주가 되는 역이지만, 역 한 편에 놓여진 돌탑처럼 이 속에서 뭔가 정겨움을 추구했다는 점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제련소를 등지고, 광장 방향을 바라본 역사의 풍경은 편안함을 더해준다. 붉은 벽돌로 밋밋해보이는 역사를 뒤로한 마을이 정겹다.

 

 

살아가면서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위에 있는 사진이 태백, 철암 방면이고, 아래에 있는 사진이 승부, 봉화 방면이다.

 

 

가는 방향에 상관없이 영동선의 굽이 도는 철길의 모습, 산과 강, 계곡이 전해주는 절경과 비경이 전해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석포역을 떠난 열차는 그게 상행이던 하행이던 산과 강,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 목적지로 향하게 된다.

 

 

 

 

 

 

 

 

 

 

유개화차를 비롯한 각종 화차들로 역 구내가 상당히 부산스럽다. 내가 갔을 때도 업체 직원들과 석포역의 직원들이 부지런히 역을 오고가고 있었을 정도였다.

 

 

영주 기점 76.8㎞.

 

 

플랫폼에서 석포역이 영주 기점으로 76.8㎞에 위치해있음을 빼꼼히 알려주고 있었다. 영주와 봉화 간의 행정구역상으로도 붙어있는 데 반해, 거리로는 꽤 멀다라는 걸 알려주고 있는 지표라 생각한다.

 

 

동시에 봉화 땅이 얼마나 넓은지도 알려주는 또 한가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1682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총 3명이었다. 빈약한 열차편수처럼 여객수요도 다른 연선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편이었다.

 

 

8000호대를 놓친 아쉬움과 달리 석포역의 파노라마 사진은 괜찮게 나왔다. 가기도 힘든 탓에 구하기 힘든 석포역의 승차권과 입장권까지 얻었으니 마이너스가 있으면 플러스가 있나 보다.

 

 

여기에 아름다운 비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련소의 모습, 아기자기한 석포 마을 등 다양한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던 날이 아니었나 싶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항상 마지막은 파노라마 사진이 되겠다.

 

 

보면 알겠지만, 사진도 잘 나왔고, 깨끗하게 나왔다고 느껴진 사진이라 만족감이 배가 된다.

 

 

뭔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존재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조화되어 놓여진 모습이 내겐 한편으로 여러 생각을 갖게 한다. 하다못해 사람마다도 전부 제각각이지 않은가.

 

 

마이너스가 있으면 플러스가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게 다 그런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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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590 | 석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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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지은 강릉역에서 맞이한 태백선 무궁화호 1638 열차이다.

 

 

노후된 객차가 늘어나면서 각 연선의 무궁화호 열차들이 영향을 맞게 되었다.

 

 

결국, 각 연선마다 기존에 운행되던 열차량수가 1량씩 감소하게 되었고, 여기에 카페객차마저도 폐지되면서 실제로는 2량씩 감소가 되는 효과가 발생되었다.

 

 

태백선은 4량의 무궁화호가 운행이 되는데, 전기기관차 견인이라 발전차마저 생략이 되면서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린 모습이기도 하다.

 

 

철암으로 가는 동안 과거 특실이었던 새마을호 격하형 특실 객차를 탑승하게 되었는데, 태백선과 중앙선에 한해 운행되던 무궁화호 특실도 작년 12월 28일 여객시간표 개정으로 폐지가 되었다. 대신 특실로 운행되던 객차들이 일반실로 전환된 것이다.

 

 

새마을호 격하 특실은 새마을호 일반실을 그대로 가져온 열차라 편안함 그 자체였다. 대우중공업에서 새마을호 장대형 객차를 총 12량을 제작해서 납품했는데, 12량 중 9량이 무궁화호로 격하되고, 남아있는 3량이 새마을호로서 임시 관광열차나 에코레일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1998년에 새마을호 장대형 객차를 50량 정도 생산을 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다. 50량 정도 생산을 했다면, 새마을호와 무궁화호의 여객 운용에 수월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에서였다. 무궁화호 요금으로 새마을호의 안락함을 만끽할 수 있으니 새마을호 격하형 무궁화호는 최고의 가성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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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를 좋은 기대감을 안고 동백산을 찍고 철암으로 왔다.

 

 

철암역은 2016년에도 승부, 양원, 비동을 가기 위해 한번 들른 적이 있었고, 지난 4월 초순에도 다시 철암역을 찾았으니 3년 사이에 3번 동안 철암역을 찾은 셈이다.

 

 

8000호대 전기기관차는 후기형인 8091, 8092, 8093, 8094호까지 총 4대만 남아있는 기관차인데, 마징가와 닮은 구석이 있는 탓에 철덕들 사이에서는 마징가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지금이야 영주와 철암 사이에서 화물만 끄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왕년엔 무궁화호, 통일호를 가릴 것 없이 여객열차도 견인했던 든든한 존재였다.

 

 

쉽게 보이던 8000호대도 퇴역을 거듭하면서 현재는 후기형으로 불리는 4대의 기관차만 현역으로 뛰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흔히 보이면 무덤덤하다가 귀해지면 애지중지해진다는 말처럼 주변을 겪어 보면 꼭 그런 것 같다. 8000호대도 어릴 적에도 몇 번 봤던 것 같아 무덤덤했는데, 이제 와서 보면 꼭 보고 싶은 존재가 바로 8000호대이다.

 

 

여기에 이제는 4대 밖에 남지도 않은 데다가 운행하는 구간도 영동선 일부 구간에 지나지 않아 레어템을 넘어 이제는 보물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햇볕이 쾌청하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있으니 지난 번의 실패를 뒤로 하고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갖고, 8000호대를 찾기 시작한다.

 

 

 

 

 

 

 

 

 

 

8500호대 전기기관차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사실, 역에 막 도착했을 때 역사로 들어가는 역직원을 만나 촬영 허락을 받고, 8000호대의 거취부터 물어봤으나 돌아온 답변이 8000호대가 오늘 안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요즘 들어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부연설명도 이어졌다. 혹시나 해서 허락을 받고 플랫폼에 올라왔는데, 역직원의 설명이 정확했다.

 

 

8000호대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과 이번에도 쓰디쓴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호기 있게 나섰으나 결과는 비참했다고 해야할까. 그래도 이번에는 의욕을 가지고, 시간을 들여 왔는데, 두 번 연속 실패란 사실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8000호대와의 인연이 없는 것이란 생각마저 들 정도이니.

 

 

그래도 기왕 온 거 주변 기관차들도 담고, 철도의 역사적 유산인 수동건널목이 있는 철암남부건널목을 둘러보기로 마음을 먹고, 시원한 바람을 쐬며 둘러본다.

 

 

 

 

 

 

 

 

 

 

○ 철암역의 역사

 

 

- 1940년 8월 1일  영업 개시

 

 

- 1956년 7월 31일  역사 신축 준공

 

 

- 1961년 11월 16일  5급역으로 승격

 

 

- 1985년 9월 22일  역사 신축 준공

 

 

- 1986년 5월 1일  4급역으로 승격

 

 

- 1991년 1월 10일  5급역으로 격하

 

 

- 1999년 7월 1일  열차 운행 체계 합리화로 철암 착발 열차 중지

 

 

- 2002년 5월 31일  철암역 연탄시설 등록문화재 제21호로 지정

 

 

- 2006년 5월 1일  소화물취급 중지

 

 

- 2010년 5월 17일  승차권 차내취급역 지정 및 매표업무 중지

 

 

- 2013년 4월 12일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 운행 개시 및 철암역이 시·종착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철암 착발 열차 중지 해제, 매표업무 재개시, 중부내륙순환열차 O-Train 운행 개시

 

 

- 2018년 1월 26일  KBS 전국노래자랑 강원도 태백시편(2018년 2월 11일 방송)의 최우수상 시상 정태영 <천년의 사랑>

 

 

 

 

 

단연 눈에 띄는 점은 2002년 철암역의 연탄시설이 등록문화재 21호로 문화재청에 의해 지정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철암역의 상징성은 무연탄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다. 주변 역세권이 미약하고, 여객수요는 많지 않지만, 무연탄을 비롯한 화물수요는 다른 역들을 크게 뛰어넘을 정도로 유명하다. 화물의 용산역이라는 말처럼 화물의 물동량은 꽤 많이 나가는 축에 속한다. 무연탄 산업이 산업합리화에 의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태백 지역의 인구 감소와 도심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으니 무연탄이 부가가치 창출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쉽게 짐작할만하다.

 

 

여객도 과거에는 철암의 착발 열차가 1999년까지 존재할 정도로 여객에서도 나름의 입지를 발휘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만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무연탄 산업이 사양화되면서 인구 감소가 나타나면서 철암역도 2010년에 승차권 차내취급역으로 지정되는 비운도 경험하게 된다. 이후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태백 봉화 지역의 관광 자원을 활용한 백두대간협곡열차와 중부내륙순환열차 등이 새롭게 생겨나면서 철암역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승차권 차내취급역으로 지정되면서 매표창구의 운영이 중지되었다가 이 시기에 맞물려 다시 매표업무를 재개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열차 시·종착역으로 지정이 되었으니 여객에서도 예전의 입지만큼은 확고히 되찾았다고 하겠다.

 

 

 

 

 

 

 

 

 

 

연못에 눈사람도 있고, 사슴도 있고, 물레방아도 있다. 조그만 연못이 제법 그럴듯하다. 그런데, 정작 연못에 물이 없다. 개인적 상황을 대변하는 장면인 것 같아 카메라에 담아봤다. 뭔가 큰 기대를 품고 왔는데, 기대한 결과물이 없는 상황이다. 연못을 보고, 혼자 멋쩍게 웃었다.

 

 

왠지 스스로 이해하게 되고, 절묘한 상황도 겪게 되어 화가 났다기 보다는 뭔가 웃어넘길 수 있었다. 뭔가 역설적이면서도 재밌는 상황을 겪어서 그래도 운세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 내부를 둘러보며 뭔가 엔티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리모델링을 했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뭔가 고풍적인 멋도 곳곳에서 베어나오는 것 같았다. 역사가 트여 있어서 선선한 바람과 맞물려 꽤 시원했다.

 

 

백두대간협곡열차가 막 떠난 시점이라 맞이방도 그렇고, 역사가 한산했다.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있기 전에는 사람들로 붐볐을 것으로 생각한다.

 

 

맞이방 한 켠에는 진폐증이라는 시가 있었다. 시간에 쫓겨 시를 음미하지는 못했는데, 무연탄으로 발전했던 이면에는 무연탄에서 나오는 먼지들로 인해 광부들에게 진폐증, 규폐증 같은 전혀 달갑지 않은 상처가 주어졌던 것이다.

 

 

한편, 액자로 소개된 주요 명소들도 언제 시간이 될 때 가보기로 하고, 마음 속에 넣어둔다. 시간이 되어서 석포역으로 떠나려고 할 무렵 역 한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님이 먹거리를 건네준다. 공짜로 받아먹기가 부담스러워 한사코 사양했는데, 이것 저것 챙겨주시면서 이모님들의 훈훈한 정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았던 것 같다. 말씀을 못 드리고 나왔는데, 온라인상으로나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역의 구석에는 휴식 공간도 겸할 겸해서 철암의 상징이기도 한 무연탄산업의 전성기 시절 모습을 담은 사진이 담겨 있었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사진이어서 왠지 모르게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철암과 무연탄이 동의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는 사진이랄까. 한 편의 역사라고 해두고 싶다.

 

 

 

 

 

 

 

 

 

 

석포로 떠나기 전에 엔티크한 철암역의 역사를 담아본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철암역은 한 가정을 지탱했던 가장의 모습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과거 무연탄을 비롯한 석탄으로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우리나라 경제에 적지 않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였다.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는 가장들이 어디에서든 건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한, 다음번에 철암역에 왔을 때는 꼭 철도의 보물 8000호대 전기기관차를 꼭 담을 수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희망도 덧붙여본다. 기왕이면, 가장 최후기형인 8094호를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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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태백시 철암동 370-1 | 철암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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