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영혼

 

 

 

 

 

2016년 당시 정동진, 철암, 승부, 양원, 분천에 다녀왔을 때 담았던 사진이 떠올라 올리게 된 게시물이다.

 

 

당시 담아놓았던 사진들을 다시 찾아보면서 추억에 빠지기도 하고, 의미 있는 사진을 남겨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미 있는 사진은 추후에 올려놓도록 하고, 첫 번째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2016년에는 엄연히 새마을호 격하형 객차와 해태중공업 객차가 모두 무궁화호 특실로 취급되던 시절이다. 여기에 강릉역의 공사로 인해 태백선과 영동선을 운행하는 무궁화호와 바다열차 모두 정동진역 착발로 조정이 되어 운영이 되기도 했다. 덤으로 강릉역에서 정동진역까지 셔틀버스를 이용해야만 했는데, 이용 요금 2,000원도 지불해야 했다. 그래도 무궁화호 기본 요금인 2,600원에 비해 적게 책정이 됐다지만, 중간에 환승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으니 나름의 불편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정동진에서 열차가 출발하기 전 새마을호 격하형 특실을 처음 접하게 되어 자연스레 카메라로 담았다. 그리고, 3년이 지나 해태중공업 객차도 처음 접하게 되어 이때는 폰으로 담았다.

 

 

둘 다 특실 출신이라는 점, 현재는 일반실로 격하됐다는 점, 객차의 출입문이 새마을호와 똑같다는 공통점이 존재하는 데 반해 제조사가 다르다는 점과 격하형 객차는 엄연히 새마을호 등급으로 운영되다가 강등됐다는 점, 해태중공업 객차는 처음부터 특실을 목적으로 두고 제조되었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여기에 각각 1998년과 1999년 '국민의 정부' 시절에 제조되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하겠다. 격하형은 카메라로 해태중공업은 폰으로 찍었다는 차이점도 있으니 이번 게시물이야말로 복잡다단한 셈이다.

 

 

개인적으로 1999년에 제조된 새마을호 객차와 해태중공업 특실 객차를 좀 더 여유롭게 생산을 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1999년에 제조된 새마을호 객차의 경우 대략 50~60량 정도로 생산이 되고, 해태중공업 특실 객차도 비슷한 규모로 생산이 되었다면 리미트 객차를 개조할 필요가 없이 장항선은 99년산 새마을호 객차를 여유롭게 투입할 수 있었을 것이고, 해태중공업 특실 객차도 특실로써 여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을까란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가끔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만 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