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영혼

도경리역과 더불어 간이역 답사를 마음먹은 순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역 중에 하나가 바로 승부역이다.

 

승부역은 찾아가기도 힘든 곳인데다 영동선 특유의 열차마저 많이 운행되지 않아 대한민국의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히는 곳 중에 하나이다.

 

날이 더웠지만 짜릿한 쾌감을 주던 곳이 바로 승부역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멋을 가진 역이야말로 승부역일 것이다. 각종 블로그의 여행기를 보면 계절마다 승부역의 멋을 담은 계절별 여행기가 끊임없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지에 있어 더욱 가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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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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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시로 승부역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겠다고 할 수 있다. 승부역의 상징인 이 시는 승부역에 근무했던 한 역무원이 쓴 시인데, 춥고 힘들고 오지속에 갇혀 지내던 간절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라 하겠다. 뒤에 나오겠지만, 어찌보면 시가 쓰여진 표지석은 사본이고, 원본은 역사 우측에 나온다.

 

 

승부역의 역사를 보면 승부역은 순탄하지 않았던 역사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역이었다.

 

1956년 1월 1일 현재 영동선의 근간이 되는 영암선이 개통되며 승부역은 바로 이때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1957년 7월 17일 과거 96년까지 존속했던 플랫폼 위의 역사가 완공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 울진군에 속해있던 승부역이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봉화군으로 편입되었다.

 

1996년 9월 17일 현재 승부역의 역사가 완공되어 승부역이 도약하는가 싶었지만 이듬해

 

1997년 10월 15일 보통역에서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001년 9월 8일에는 배치간이역에서 신호장으로 떨어지면서 승부역이 아닌 승부신호장으로 처지가 말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1998년 환상선 눈꽃순환열차가 개통되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론 승부역의 부흥을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다 3년 뒤

 

2004년 12월 10일 신호장인 승부신호장에서 보통역인 승부역으로 다시 승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2013년 2월 21일 영암선 개통기념비가 등록문화재로 승격이 되고,

 

같은 해 4월 12일 영동선의 부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던 O트레인과 V트레인이 정차하게 되었으며, 일반열차인 무궁화호도 1691/1692 정동진 ↔ 부산 노선을 제외한 나머지 영동선 무궁화호는 모두 정차하는 역으로 변모했다.

 

보통역에서 배치간이역으로, 배치간이역에서 신호장으로, 신호장에서 다시 보통역으로 승격됐으니 승부역의 역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시대의 풍파를 모두 겪은 산증인이라 할 수 있겠다.

 

 

 

 

 

 

 

'승부역에 오심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를 보며 드디어 승부역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지에 온 만큼 오지를 틈틈히 둘러보기 시작한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영암선 개통기념비이고,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들어가서 유명해진 측면이 있다. 물론, 승부역은 단순히 영암선 개통기념비보다 곳곳에서 미적 시각과 미적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라 그야말로 오지속 자연을 몸소 느끼며 오랜 시간 생각해볼 수 있는 명소로 더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영암선 개통기념비 부근에 있는 승부역 주변 몇 안되는 민가인데, 따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옥수수밭과 자연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카메라에 한번 담아보았다.

 

 

 

 

과거의 모습에다가 요 근래 완공된 전철화까지 더해져있으니 정말이지 신구조화가 따로 없었다. 한편으론 승부역과 영동선이 완공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었을지 쉽게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승부관, 승부역의 관사인데, 여름과 겨울 내일로 시즌에 맞춰 내일로 여행객들에게 일종의 게스트하우스 형식으로 내일로 여행기간 동안 숙박을 제공한다고 한다. 승부관에서 오지역 승부역에서 나 자신과 고독한 승부를 해보는 건 어떨까?

 

 

 

 

승부시설사업소인데, 이 날 답사를 갔을 때도 승부역 주변에서는 선로보선원들이 더운 날씨 속에서도 시설 및 선로 보수에 여념이 없었다. 이분들이 있어 우리는 마음 편히 철도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승부역의 또다른 상징 "눈꽃마을 승부"란 표지석이 눈에 띈다. 표지석의 모양과 표지석의 글짜가 꽤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 지점부터 냇가를 건너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건너편에서 찍은 승부역 주변 철교의 모습인데, 보기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듯이 사진에 각도에 따라 분위기가 또 달라지는 것 같다.

 

 

 

 

요 근래 살면서 물레방아를 본 적이 없었는데, 승부역에 오면서 10여 년만에 물레방아를 본 거 같아 왠지 모르게 더욱 기뻐했었던 것 같다. 물레방아를 비롯한 자연친화적인 조형물들이 있어 승부역에서 자신과 승부를 하는 것만큼은 정말 외롭지 않다.

 

 

 

 

"눈꽃마을 승부"란 표지석을 두고 조금 올라오면, 승부역의 먹거리 장터가 눈에 보이는데, 이 날은 따로 영업을 하지 않는지 고요하기만 했다. 사진을 찍고 나갈 무렵 마을 주민들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낯선 사람의 방문에도 반가워하며 승부역의 먹거리 장터 시설이 더욱 보강되어 올겨울에 준공(?)이 될거라며 겨울에 승부역에 꼭 방문하길 권한다. 사실, 승부역의 진짜 매력은 바로 겨울에 있으니까.

 

 

 

 

승부역도 그간 시설투자가 이루어졌는지 역 곳곳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목마타기 위에 있는 사진 위의 나무 한그루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아 지조가 느껴진다.

 

 

 

 

승부역의 역명판인데, O트레인과 V트레인이 개통될 무렵 승부역도 양원역, 분천역과 동일한 방식으로 통일되었다.

 

 

 

 

승부역의 역사를 세 장을 연이어 찍어서 올리게 되었다. 승부역의 역사는 더없이 정이 느껴진다.

 

 

 

 

석포방향 선로인데, 사진 속 멀리 선로보선원들의 모습이 들어오며 이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도 안정이 느껴졌다.

 

 

 

 

 

승부역의 출입구 승부현수교가 눈에 띈다. 사람들 한두명이 겨우 다닐 수 있는 넓이인데, 출렁거리면 위험하다며 출렁거리지 말 것을 알려주고 있는 곳이었다.

 

 

 

 

분천, 영주 방향 선로와 플랫폼인데, 곡선과 자연, 그리고 승부역의 붉은 역사가 어우러져 가히 환상이란 말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승부역의 붉은 우체통인데, 승부역의 간이 대합실에 비치된 엽서를 작성해서 보내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정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원을 담아 엽서를 보내는 것도 승부역에서만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 생각한다. 

 

 

 

 

승부역의 간이 대합실은 "세평쉼터"란 정식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빼꼼히 69.2㎢가 나오는 데, 승부역이 영주역 기점 69.2㎢에 위치하고 있는 역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승부역의 간이대합실 세평쉼터에는 승부역에 다녀갔던 여자 개그우먼들의 사인이 걸려있고,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 공지사항과 서적, 각종 포스터와 안내자료 등이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특히 조그만 의자와 난로가 비치된 게 꽤 인상적이었다. 또한,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스탬프가 이곳 세평쉼터에 비치되어 있어 엽서, 승차권, 기타 종이에 날인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알립니다'로 붙여진 공지사항에서 승부역은 승차권을 발매하지 않는 역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승부역은 차내취급역으로서 코레일톡이나 인터넷 예매, 창구예매가 가능한 역에서 승차권을 발매해야 하는 역이라 여행객들 입장에서 다소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승부역에는 역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역(1인 근무역)이기는 하지만, 역직원은 운전취급만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승차권단말기도 없어 승차권 예ㆍ발매가 불가능하다.  

 

 

 

 

승부역의 상징이자 시의 원본이다. 처음에 올라왔던 기념비가 사본이었다면 말이다.

 

지금처럼 각박한 시대이기에 승부역이 더더욱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지친 일이 있을 때 아무도 없는 세 평 오지속에서 나 자신과 승부를 하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에게 있어 힐링이 되고, 재충전을 줄 수 있는 곳으로서 진정으로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스쳐지나가는 간이역(엄연히 보통역이지만)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시간과 장소를 주고, 마음을 다스리게 하며 쉬어가는 공간을 제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간이역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뒤에 나올 청소역과 더불어 승부역은 간이역의 본질에 충실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짓밟는 법만 가르치는 중고등학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기위해 아웅다웅하는 모습들, 각박한 세테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가끔씩이라도 승부역, 청소역 등 간이역에서 마음을 청소하고,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지는 아닐지언정 없어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그래서 요즘 들어 무인화가 거론되는 승부역처럼 유익한 역들이 하나 둘 없어지려고 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답사하기로 마음먹었던 시점에 접어든다.

 

사실, 양원역과 비동역의 답사는 예정에 없던 것도 있었겠지만, 양원역과 비동역의 존재조차도 인식이 없었다. 쉽게 말해 양원역과 비동역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날, 승부역과 분천역의 답사를 가기 위해 철암역에서 V트레인에 탑승해서 동점역, 석포역, 승부역을 지나 도착한 역이 바로 양원역이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역을 실제로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객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사진을 찍으러 내려갔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양원역을 보고 난 다음의 기쁜 감정이야말로 바로 이런 건가보다.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라고 조언을 많이 하는데, 마음을 비우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뜻하지 않게 희망하는 것을 얻었을때 경제학적인 최대효용이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양원역은 1988년은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113-2에 위치한 역이 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임시승강장이다. 임시승강장의 양원역이 생겨난 이유는 주변에 교통이 워낙 불편한 탓에 주민들이 직접 조그만 역사와 승강장, 역명판 등 역사시설을 만들어 여객열차 정차를 요구하면서 비롯되었다.

 

주민들의 노력과 청원으로 양원역이 임시승강장이나마 온전히 역으로서 여객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코레일에서는 여객열차 통과를 시키려고 했지만, 주변 교통이 워낙 열악했던 탓에 정거장으로 필요한 역사시설을 갖춘 녹동역, 거촌역, 문단역, 봉성역 등이 여객열차 통과라는 철퇴를 맞았을 때도 양원역은 꿋꿋히 여객열차가 정차하며 온전한 "역"으로서 "정거장"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즉, 양원역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역사이자 사람도 바람도 쉬어가는 간이역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객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눈에 띄었던 건 바로 양원역 대합실이었다. 양원역 대합실 옆에 양원역을 알리는 "양원"이라고 새겨진 조그만 비석이 하나 있었는데 이 조그만 비석이 바로 양원역의 진정한 역간판으로서 가치를 발휘하고 있었다.

 

 

시골의 조그만 버스 정류장처럼 보여도 양원역 대합실은 플랫폼에는 아기자기한 돌로 꾸며져있어 초라해보일지라도 자신이 진정한 간이역이라는 것을 웅변하는 듯 했다.

 

 

 

 

양원역 역사 내부에는 O트레인, V트레인, 그리고 일반열차 무궁화호의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가 적혀있었다. 비록 작은 어느 시골 간이역일지라도 역사로서 갖춰야 할 것들은 다 갖춰져 있는 셈이었다. 또, 인접역인 분천역에서 여객과 관련된 사항들을 붙여놓고, 꾸준히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양원역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간이역에서 볼법한 나무의자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놓여있었다. 비록 역무원도 없고, 승차권을 발권할 수 있는 매표창구도 없지만, 이 정도면 역이라 불리기에 손색없지 않을까? 엄연히 O트레인, V트레인, 그리고 무궁화호까지 정차하니 말이다.

 

 

 

 

양원역의 역명판인데, 양원역뿐만 아니라 승부역과 분천역도 양원역처럼 과거 오래전 방식의 역명판 방식을 채용하고 있었다. 역명판 뒤편으로 마을주민들이 열차 운행시각에 맞춰 손수 만든 식음료나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옛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은 것 같아 과거로 온 것 같은 추억의 회상속으로 빠져본다.

 

 

 

 

V트레인 2013년에 개시되면서 양원역뿐만 아니라 비동역, 승부역, 분천역, 철암역 모두 V트레인의 로고를 띤 별도의 푯말이 설치되었다. 역명판 역시 철암역을 제외하고는 양원역, 비동역, 분천역, 승부역 모두 같은 방식으로 통일되었다. O트레인과 V트레인이 각각 개설되어 교통이 열악한 태백, 봉화지역에 보탬이 됨은 물론, 지역경제에도 나름 도움을 주고 있었다.

 

 

 

 

분천역을 지나 승부역으로 다시 V트레인을 타고 오는 길에 찍은 비동역이다. 비동역 역시 임시승강장인데, 양원역과 달리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만이 이용할 뿐이다. 어찌보면 양원역보다 그 위치가 못할 수 있지만, 비동역 역시 주변에 멋진 자연적 경관을 자랑하기에 양원역과 우열을 가리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V트레인과 더불어 승부역에서 양원역, 비동역을 거쳐 분천역으로 이르는 트래킹 코스도 나름 인기있는 코스라 봄이나 가을 무렵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니 V트레인이야말로 소외된 오지에 있어 효자가 아닐까 싶다.

 

양원역과 비동역에 이어 크리스마스역 분천역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