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영혼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었던 철암역에서 담은 전기기관차들이다.

 

 

힘이 빠지게 만들었던 8500호대가 맑은 날씨를 배경으로 나왔고, 행복을 전해줬던 8000호대가 흐린 날씨를 배경으로 나온 게 참으로 대조적이다.

 

 

날씨도 밤에는 서늘함이 느껴질 정도로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었다. 여름에 초입으로 들어갈 무렵 실패해서 느꼈던 감정, 그리고 여름이 끝날 무렵 성공해서 느꼈던 감정이 교차됐다. 이런 감정이 들어서 화물 전용 전기기관차들인 8000호대와 8500호대를 각각 다시 한번 꺼냈다.

 

 

요즘은 8500호대가 무궁화호 객차들을 간간히 견인하며 여객 영업을 하는 모습을 종종 봤는데, 예전 8000호대도 8200호대가 등장하기 전까지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비둘기호까지 여객도 견인하던 기관차였다. 실제로 2005년 무렵만 하더라도 청량리와 강릉을 오고가는 태백선의 새마을호가 하루에 1왕복씩 운행을 하곤 했는데, 8200호대가 등장하기 전까지 8000호대가 새마을호를 견인하기도 했다. 8500호대도 과거 8000호대가 지나갔던 길을 밟고 있는 셈이다.

 

 

8000호대와 8500호대의 화물 전용 기관차들을 담았으니 이제는 여객 전용 기관차들인 8100호대와 8200호대의 중련 모습을 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왠지 모를 좋은 기대감을 안고 동백산을 찍고 철암으로 왔다.

 

 

철암역은 2016년에도 승부, 양원, 비동을 가기 위해 한번 들른 적이 있었고, 지난 4월 초순에도 다시 철암역을 찾았으니 3년 사이에 3번 동안 철암역을 찾은 셈이다.

 

 

8000호대 전기기관차는 후기형인 8091, 8092, 8093, 8094호까지 총 4대만 남아있는 기관차인데, 마징가와 닮은 구석이 있는 탓에 철덕들 사이에서는 마징가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지금이야 영주와 철암 사이에서 화물만 끄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왕년엔 무궁화호, 통일호를 가릴 것 없이 여객열차도 견인했던 든든한 존재였다.

 

 

쉽게 보이던 8000호대도 퇴역을 거듭하면서 현재는 후기형으로 불리는 4대의 기관차만 현역으로 뛰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흔히 보이면 무덤덤하다가 귀해지면 애지중지해진다는 말처럼 주변을 겪어 보면 꼭 그런 것 같다. 8000호대도 어릴 적에도 몇 번 봤던 것 같아 무덤덤했는데, 이제 와서 보면 꼭 보고 싶은 존재가 바로 8000호대이다.

 

 

여기에 이제는 4대 밖에 남지도 않은 데다가 운행하는 구간도 영동선 일부 구간에 지나지 않아 레어템을 넘어 이제는 보물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햇볕이 쾌청하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있으니 지난 번의 실패를 뒤로 하고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갖고, 8000호대를 찾기 시작한다.

 

 

 

 

 

 

 

 

 

 

8500호대 전기기관차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사실, 역에 막 도착했을 때 역사로 들어가는 역직원을 만나 촬영 허락을 받고, 8000호대의 거취부터 물어봤으나 돌아온 답변이 8000호대가 오늘 안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요즘 들어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부연설명도 이어졌다. 혹시나 해서 허락을 받고 플랫폼에 올라왔는데, 역직원의 설명이 정확했다.

 

 

8000호대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과 이번에도 쓰디쓴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호기 있게 나섰으나 결과는 비참했다고 해야할까. 그래도 이번에는 의욕을 가지고, 시간을 들여 왔는데, 두 번 연속 실패란 사실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8000호대와의 인연이 없는 것이란 생각마저 들 정도이니.

 

 

그래도 기왕 온 거 주변 기관차들도 담고, 철도의 역사적 유산인 수동건널목이 있는 철암남부건널목을 둘러보기로 마음을 먹고, 시원한 바람을 쐬며 둘러본다.

 

 

 

 

 

 

 

 

 

 

○ 철암역의 역사

 

 

- 1940년 8월 1일  영업 개시

 

 

- 1956년 7월 31일  역사 신축 준공

 

 

- 1961년 11월 16일  5급역으로 승격

 

 

- 1985년 9월 22일  역사 신축 준공

 

 

- 1986년 5월 1일  4급역으로 승격

 

 

- 1991년 1월 10일  5급역으로 격하

 

 

- 1999년 7월 1일  열차 운행 체계 합리화로 철암 착발 열차 중지

 

 

- 2002년 5월 31일  철암역 연탄시설 등록문화재 제21호로 지정

 

 

- 2006년 5월 1일  소화물취급 중지

 

 

- 2010년 5월 17일  승차권 차내취급역 지정 및 매표업무 중지

 

 

- 2013년 4월 12일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 운행 개시 및 철암역이 시·종착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철암 착발 열차 중지 해제, 매표업무 재개시, 중부내륙순환열차 O-Train 운행 개시

 

 

- 2018년 1월 26일  KBS 전국노래자랑 강원도 태백시편(2018년 2월 11일 방송)의 최우수상 시상 정태영 <천년의 사랑>

 

 

 

 

 

단연 눈에 띄는 점은 2002년 철암역의 연탄시설이 등록문화재 21호로 문화재청에 의해 지정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철암역의 상징성은 무연탄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다. 주변 역세권이 미약하고, 여객수요는 많지 않지만, 무연탄을 비롯한 화물수요는 다른 역들을 크게 뛰어넘을 정도로 유명하다. 화물의 용산역이라는 말처럼 화물의 물동량은 꽤 많이 나가는 축에 속한다. 무연탄 산업이 산업합리화에 의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태백 지역의 인구 감소와 도심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으니 무연탄이 부가가치 창출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쉽게 짐작할만하다.

 

 

여객도 과거에는 철암의 착발 열차가 1999년까지 존재할 정도로 여객에서도 나름의 입지를 발휘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만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무연탄 산업이 사양화되면서 인구 감소가 나타나면서 철암역도 2010년에 승차권 차내취급역으로 지정되는 비운도 경험하게 된다. 이후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태백 봉화 지역의 관광 자원을 활용한 백두대간협곡열차와 중부내륙순환열차 등이 새롭게 생겨나면서 철암역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승차권 차내취급역으로 지정되면서 매표창구의 운영이 중지되었다가 이 시기에 맞물려 다시 매표업무를 재개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열차 시·종착역으로 지정이 되었으니 여객에서도 예전의 입지만큼은 확고히 되찾았다고 하겠다.

 

 

 

 

 

 

 

 

 

 

연못에 눈사람도 있고, 사슴도 있고, 물레방아도 있다. 조그만 연못이 제법 그럴듯하다. 그런데, 정작 연못에 물이 없다. 개인적 상황을 대변하는 장면인 것 같아 카메라에 담아봤다. 뭔가 큰 기대를 품고 왔는데, 기대한 결과물이 없는 상황이다. 연못을 보고, 혼자 멋쩍게 웃었다.

 

 

왠지 스스로 이해하게 되고, 절묘한 상황도 겪게 되어 화가 났다기 보다는 뭔가 웃어넘길 수 있었다. 뭔가 역설적이면서도 재밌는 상황을 겪어서 그래도 운세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 내부를 둘러보며 뭔가 엔티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리모델링을 했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뭔가 고풍적인 멋도 곳곳에서 베어나오는 것 같았다. 역사가 트여 있어서 선선한 바람과 맞물려 꽤 시원했다.

 

 

백두대간협곡열차가 막 떠난 시점이라 맞이방도 그렇고, 역사가 한산했다.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있기 전에는 사람들로 붐볐을 것으로 생각한다.

 

 

맞이방 한 켠에는 진폐증이라는 시가 있었다. 시간에 쫓겨 시를 음미하지는 못했는데, 무연탄으로 발전했던 이면에는 무연탄에서 나오는 먼지들로 인해 광부들에게 진폐증, 규폐증 같은 전혀 달갑지 않은 상처가 주어졌던 것이다.

 

 

한편, 액자로 소개된 주요 명소들도 언제 시간이 될 때 가보기로 하고, 마음 속에 넣어둔다. 시간이 되어서 석포역으로 떠나려고 할 무렵 역 한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님이 먹거리를 건네준다. 공짜로 받아먹기가 부담스러워 한사코 사양했는데, 이것 저것 챙겨주시면서 이모님들의 훈훈한 정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았던 것 같다. 말씀을 못 드리고 나왔는데, 온라인상으로나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역의 구석에는 휴식 공간도 겸할 겸해서 철암의 상징이기도 한 무연탄산업의 전성기 시절 모습을 담은 사진이 담겨 있었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사진이어서 왠지 모르게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철암과 무연탄이 동의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는 사진이랄까. 한 편의 역사라고 해두고 싶다.

 

 

 

 

 

 

 

 

 

 

석포로 떠나기 전에 엔티크한 철암역의 역사를 담아본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철암역은 한 가정을 지탱했던 가장의 모습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과거 무연탄을 비롯한 석탄으로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우리나라 경제에 적지 않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였다.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는 가장들이 어디에서든 건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한, 다음번에 철암역에 왔을 때는 꼭 철도의 보물 8000호대 전기기관차를 꼭 담을 수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희망도 덧붙여본다. 기왕이면, 가장 최후기형인 8094호를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통근열차가 운행이 중단이 됐으니 어쩌면 이 날 탑승한 통근열차가 내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셈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되어서 그런지 내가 찍은 사진들 중에서 가장 정감이 가는 건 물론이고, 경원선의 유명 촬영포인트에 가서 찍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도 같이 남는다.

 

 

통근열차는 주어진 열차등급처럼 CDC라는 싸다싸라는 별명처럼 여러모로 친숙한 교통수단이었다. 여기에 타본 적이 없던 열차를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보게 되어 내겐 정말 값진 의미로 남아있다.

 

 

통근열차는 2019년 3월 31일을 끝으로 운행을 중단되었다. 왜냐하면, 동두천에서 연천까지 복선전철화 공사로 인해 중단이 되었다고 하며, 경원선 관련 포스팅처럼 동두천에서 백마고지까지 통근열차를 대체할 버스가 운행된다고 한다.

 

 

통근열차에 대해 운행을 중단되었다가 경원선 복선전철화 공사가 완료되면 다시 운행을 재개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가 났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다.

 

 

비전철화 구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된다는 점, 운행구간보다 회송구간이 더 길다는 점, 차량의 내구연한이 도래할 시점이라 디젤동차의 특성과 맞물려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점, 전 구간 운임이 1,000원이라 비현실적인 운임 탓에 운행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라는 점, 실제로 경원선 구간은 시내버스가 수시로 운행하고 있어서 대체 교통수단이 충분하다는 점을 비춰볼 때 통근열차가 폐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만약, 통근열차가 경원선 복선전철화와 상관없이 폐지가 된다면, 통근열차가 담당했던 역할은 연천까지 들어오는 수도권 전철과 시내버스가 받게 되는 구조로 가게 될 것이다.

 

 

여기에 통근열차의 폐지는 한가지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2등 및 3등 객차에서 해방 후 보급 및 보통 등급, 비둘기호와 통일호로 이어져 내려오던 보통 등급 각역정차 완행 일반여객열차의 종말로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즉, 통근열차의 폐지가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도 통근열차는 코레일의 전산상으로 동차형 통일호로 표기가 될 정도로 통일호와 동위등급으로 분류가 되어왔다. 아마 분위기상 통근열차는 폐지가 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통일호가 퇴역한 시기가 바로 2004년 3월 31일이었으니 통일호와 동위등급인 통근열차가 퇴역한 시기가 2019년 3월 31일이라는 점을 감안해볼 때 운명적이라 하겠다. 스스로도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지는 존재와 함께 마지막을 함께 했으니 이번 답사는 내겐 참으로 많은 주제를 던져주었던 답사가 아니었나 싶다.

그냥 머리를 식히고 바람도 쐴 겸 다녀온 것이 도경리역이다.

 

도경리역을 다녀왔던 것도 순수하게 머리를 식히고 바람도 쐬고 싶은 것 딱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도경리역이 유명세를 탔던 건 영동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이고, 또 문화재청에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철덕들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도경리역이 요근래 유명해진 건 유명 가수들인 다비치의 "오늘 따라 보고 싶어서 그래" 뮤직비디오 촬영장소로 등장하면서 굳이 철덕들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도경리역의 부제 역시 가수 다비치의 "오늘 따라 보고 싶어서 그래"에서 따왔다. 포스팅을 하는 지금도 보고 싶은 역 중에 하나가 바로 도경리역이니까.

 

 

 

도경리역은 1939년 5월 15일에 역사가 준공되었다. 이후 1940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가 1995년 1월 10일 역세권이 미약한 터라 승차권 차내취급역 지정되더니 1997년에는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001년에는 신호장으로 더 떨어지고 말았다.

 

도경리역은 무배치간이역도 아닌 신호장으로서 열차의 교행을 위해 존재하는 역일 뿐이다. 애초부터 역세권이라고 해봐야 민가 몇 채가 고작이니 말이다.

 

 

이 날 도경리역을 찾아갔을 때는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얼추 길을 찾아보고, 머리 식히러 바람 쐬러 떠난 길이었지만, 도경리역까지 가는 교통편이 자주 없다는 소식이 있었다. 특히, 도경리역 역시 영동선 아니랄까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하는 숨바꼭질 하듯 산속에 숨어있는 역이었기 때문이다.

 

 

 

 

한낱 신호장일 뿐이지만, 도경리역은 1939년 5월 15일부터 지금까지 역사가 오롯이 보존되고 있을만큼 정말로 유서깊은 역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영동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인데다 박공형 지붕을 채택하고 있고, 무엇보다 역사 외관이 일본식 건축양식을 띄고 있어 철도 건축 역사에서도 정말로 소중한 자산이라 할 수 있겠다.

 

 

꼭 철덕이나 철도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누가 보더라도 도경리역의 역사를 보면 일본 훗카이도(北海道)의 어느 시골 간이역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 눈이 제법 왔는데, 도경리역은 여름도 여름이지만, 가을이나 겨울에 미적 가치와 진정한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역 중에 하나다. 

 

 

겨울에 눈이 내리고 있는 도경리역에 있으면 일본 훗카이도(北海道)의 어느 시골 간이역에 있다고 해도 믿을테니 말이다. 그만큼 영동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은 당연 도경리역이고, 영동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 역시 도경리역이라 자부한다.

 

 

 

 

도경리역은 2007년 여객취급이 완전히 중지되었는데, 이 무렵 영동선의 가장 오래된 역사이고, 철도 역사상 보존가치가 충분했기에 문화재청으로부터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고, 이후 삼척시에서 예산을 투입해 역사 개보수를 하여 지금도 나름대로 관리를 받는 귀하신 몸 중에 하나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잊혀간 역들 대부분은 초라하게 방치되다시피 내팽겨진 역들이 부지기수니깐.

 

 

 

 

도경리역의 역간판은 과거 철도청시절의 역간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교육자산으로서도 활용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도경리역의 화장실인데 이용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아마 잠겨있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실제로 화장실이라는 푯말도 과거 철도청 시절의 서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화장실 옆에는 화분이 아기자기 놓여있어 역사의 품격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듯하다. 실제로도 화분의 관리가 되고 있는 걸보면 역시 사람이건 건축물이건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과거 여객취급이 중단되기 전까지 사람들이 이곳으로 기차를 타고 다녔을 것이다. 사진 가운데에 집표함이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집표함에는 세월의 흔적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내릴 때 넣어둔 승차권이 보이지 않았다.

 

 

 

 

역사 사진에서처럼 도경리역의 하얀색 도장과 겨울 하얀 눈이 절묘하게 시각적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도경리역은 진정 겨울에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름이나 가을에도 운치있지만, 음식에 양념이 잘 어우러지면 환상의 맛을 표출한다고 하지 않은가? 바로 도경리역의 겨울의 하얀 눈이 도경리역의 보석보다도 더욱 값진 역으로 만들어주는 양념이라고 생각한다.

 

 

 

 

도경리역의 선로보선반 옆의 공간에는 침목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또, 위에 보면 141이라는 숫자가 보일텐데, 이는 영주역 기점 141km 지점을 뜻한다. 즉, 도경리역은 영주역 기점 141km에 위치하고 있는 정거장이라 하겠다.

 

 

 

 

일본 훗카이도(北海道)의 어느 시골 간이역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필자도 도경리역을 처음 밟았을 때 설렘과 더불어 일본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도경리역에는 옛날의 모습들이 온전히 자리하고 있고, 역명판도 옛날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위에 있는 나무들이 역사를 아름드리 꾸며주는 존재라 생각한다. 조동사나 조사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역무실에는 꾸준히 무전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열쇠보관함과 비상초함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특히, 역무실의 책상 위에는 철도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만한 전호깃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과거 여객운임표와 열차시간표가 고스란히 걸려 있었다. 무궁화호 1698과 무궁화호 1697은 과거 강릉 ↔ 영주간 다니던 열차인데, 과거 통일호 1243호 통일호 1244호를 계승한 열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무궁화호 1685와 무궁화호 1686으로 동해 ↔ 영주로 축소되더니 2012년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첫장의 사진과는 다른 사진이다. 결국 플랫폼 방향 역사 사진을 두 장 찍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도경리역의 아름다움이 푹 빠졌었나보다.

 

 

 

 

갈 길을 재촉하기 위해 도경리역을 떠나는데, 낯선 사람의 발길이 경계됐던 듯 민가 주변의 개들이 사납게 짖어댔다. 그래도 바람 쐬러 머리 식히러 떠난 도경리역에서 제대로 힐링을 받고 간다는 기분이란 뭐라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만큼 마음이 편안했다. 물론, 여름의 날씨라 덥긴 했지만, 그와 별개로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도경리역의 안내 표지판과 표지판 바로 옆에 있는 버스 정류장이다. 사진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은 미로, 도계 방향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고, 삼척, 동해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반대편으로 길 건너 가서 탑승해야 한다. 길 건너갈 때 건설 차량이나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들이 수시로 다니므로 통행에 각별히 주의하기를 바란다. 참고로, 버스에 탑승하고자 할 때는 버스가 보일 때 손을 흔들면 요금을 내고 탑승하면 된다. 시간이 된다면 도경리 마을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기에 버스 시간을 필히 참고해서 답사에 불편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도경리역의 파노라마 사진으로 황홀했던 도경리역의 포스팅을 마무리지을까 한다. 언제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다음번에는 겨울에 하얀 눈이 내릴 때 도경리역에 꼭 다녀오기로 스스로에게 약속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