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영혼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던 희방사역도 추억의 한 페이지 속으로 들어갔다.

 

 

화본역, 반곡역, 탑리역과 함께 일정을 계획해서 다녀왔는데 역시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즈넉한 가을의 풍경과 선선한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날씨에 시나브로 매료됐었다. 겨울을 앞두고 더욱 화려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이 남는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소중한 시간이 들어간 사진을 다시금 꺼내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신녕역에서 동화역까지 오는 내내 다양한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 화본역과 탑리역을 지날 때 아름다운 기차역과 조화되는 시골의 편안한 풍경을 보았으며, 풍기역과 희방사역을 지날 때 보게 된 자연의 비경이 꽤 아름다웠다. 소백산의 품속을 지나가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소백산을 지나 도담역에 도달할 무렵 황량한 풍경과 대비되는 시멘트공장의 위세에 크게 놀랐다. 시멘트공장의 위엄을 제대로 느꼈다고 해야할까... 웅장하다는 표현으로 표현이 잘 안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제천을 지나 원주에 도착할 때는 도시와 농촌의 모습이 조화되는 모습이 꽤 어울리지 않듯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한편, 원주가 혁신도시로 선정되면서 도시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2003년인가 2005년인가에 원주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 무렵에는 원주의 도시규모가 현재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다.

 

중앙선도 사람들에게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뿐 특색이 있는 주요 간선 중에 하나이다. 양회와 석탄 등 옛날 화물철도의 선입견을 주는가 싶지만, 막상 중앙선을 따라 기차여행을 해보면, 선입견이 눈녹듯 사라지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중앙선에 위치한 화본, 탑리, 신녕뿐만 아니라 동화, 신림, 반곡, 풍기, 희방사 등 곳곳에 아름다운 기차역과 여행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을 참으로 즐겁게 한다.

 

다만, 중앙선도 복선전철화가 예정되어 있어 2020년을 전후해서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들이 사라질 예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날 무궁화호를 이용했을 때도 단양, 단성 등 이 구간을 비롯해서 곳곳에서 추운 겨울임에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목표로 잡고 있는 풍기, 희방사, 화본, 탑리, 신림, 반곡 등의 답사를 좀 서둘러야겠다는 마음이다.

 

경상북도 영천시에 위치한 신녕역에서 탑승한 무궁화호가 경상북도, 충청북도를 거쳐 목적지인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동화역에 연착 및 교행 등을 이유로 지연되어 대략 3시간 40분만에 도착한다.

 

 

 

 

 

청량리 기점 88.2㎢에 위치한 동화역에 말 그대로 드디어 도착했다.

 

 

○ 동화역의 역사

 

- 1940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 1950년 12월 8일 한국전쟁으로 역사 소실

 

- 1956년 5월 10일 역사 신축

 

- 1988년 1월 1일 수소화물 취급 중지

 

- 1998년 6월 1일 자갈 발송 개시

 

- 2004년 4월 28일 컨테이너 야드 개장

 

- 2005년 12월 5일 승차권 발매 중단, 승차권 차내 취급역 전환.

 

- 2009년 10월 31일 화물 취급 중지

 

- 2011년 10월 5일 여객 취급 중지

 

- 2011년 12월 21일 여객 취급 및 승차권 발매 재개, 폐역인 간현역의 여객 취급 기능 인수

 

 

 

 

 

 

동화역의 역사이자 이력을 보면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곡절이 있다. 한국전쟁으로 역사가 소실된 것도 그렇거니와 화물 취급과 여객 취급을 중지와 개시를 반복한다는 점도 그렇다. 주목할만한 점은 동화역은 이미 오래전부터 승차권 차내취급역으로 지정될만큼 역세권이 예나 지금이나 꽤 미약한 편이다. 차내취급역으로 전한된 후에 정차하는 열차 편수가 줄어들더니 여객취급의 중지도 경험했으니까.

 

그러다가 여객 취급이 중지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객 취급이 다시 재개되었는데, 이는 동화역의 인접역인 간현역 자체가 폐역이 되면서 동화역이 간현역에서 취급하던 여객취급의 기능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정작 간현역은 폐역이 된 후로 레일바이크로 다시금 사람들의 여행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인생사 세옹지마라는 말이 역에게도 통하는가 보다.

 

한편, 동화역뿐만 아니라 역명판에 나와 있는 만종역도 경강선으로 이전됨과 동시에 동화역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된다. 만종역도 운전취급과 화물취급만 담당하다가 경강선의 개통으로 여객취급이 다시 재개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에서 동화역과 꽤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다.

 

 

 

 

 

경강선의 KTX 개통 등을 비롯한 각종 공사로 역 구내가 꽤 어수선했다. 동화역의 풍경과 다소 언밸런스하게 느껴졌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플랫폼과 주변의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역직원이 다가왔다.

 

 

사실, 나무위키나 각종 위키백과 사이트 등지에 보면 동화역의 역직원들이 불친절하다고 서술되어 있어 긴장 아닌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 날 역직원은 퉁명하다거나 불친절하기 보다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보며 용건을 묻는 등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가주며 역직원에게 불친절한 구석을 딱히 발견하지를 못했다. 또한, 사진을 충분히 찍도록 기다려주기까지 해서 긴장을 할 필요도 선입견을 가지면서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역직원에게 방문 목적을 설명하며, 역사로 들어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자 하는 승차권과 입장권을 동시에 발매하였다.

 

 

 

 

 

마주하게 된 동화역의 역사도 중앙선의 연선에 위치한 역사들처럼 아름다운 멋을 간직하고 있었다. KTX의 개통으로 곳곳에 펜스가 설치된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사의 모습은 오래된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동화역의 진정한 주제라 하겠다. 바로 소나무.

 

 

동화역의 역사와 풍경뿐만 아니라 꼭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게 바로 이 소나무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할 거 없이 사시사철 온전히 모습을 유지하는 소나무의 모습에 감격함은 물론, 소나무의 한결같은 모습에 왠지 모르게 든든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동화역의 상징과도 같은 이 소나무가 바로 '노무현 소나무'로 불린다. 노무현 소나무로 불리게 된 계기가 바로 2007년 당시 16대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동화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노무현 대통령이 동화역의 소나무를 보며 감격했음은 물론, 소나무를 곁에 두지 못해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에 순간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도서함도 그러혹, 도서함 위에 놓여진 화문들을 보며 역사 곳곳이 역직원들의 노력으로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한편, 역사 곳곳이 꽤 아기자기한 모습이라 눈호강을 제대로 했다.

 

 

간현역의 여객취급 기능을 그대로 인수하면서 동화역의 정차 편수가 중앙선과 태백선을 모두 포함한 무궁화호 편도 13회가 정차한다. 무궁화호 편도 13회가 정차하는 데다가 역사 바로 앞에 시내버스 정류장이 위치해 있고, 시내버스도 20분 간격으로 자주 다니면서 시간만 잘 맞으면 찾아오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고 하겠다.

 

 

 

 

 

KTX의 개통으로 인해 역사 주변에 철조망 등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

 

 

참고로 위에 있는 버스 정류장은 원주시 문막읍 방향이고, 원주 시내 방향으로 가려면 뒤에 나오겠지만, 반대편 정류장에서 탑승해야 한다. 시내버스도 20분 간격으로 다니기에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시내버스가 오면 손을 흔들어 탑승 의사를 밝히면 버스가 정차한다.

 

 

 

 

 

 

역사 앞 주차장에 있는 나무의 모습, 영업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역사 앞에 있는 역사 슈퍼, 그리고 위에서 말한 원주 시내방향 정류장까지 마치 옛날 전래동화 속 풍경과 똑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그만큼 전래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역사 자체도 물론이고, 역사의 주변 풍경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역사 앞에 있는 슈퍼를 보면서 어르신들이 슈퍼에 들러 막걸리를 한잔 한다거나 손자나 손녀들 군것질거리들을 사가지고 가는 장소로 이용되지 않았을까 싶다.

 

 

 

 

 

동화 속 풍경을 뒤로 한채 원주시내로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만낭포. 동화리'란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만낭포가 뭔가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까 동화역에 위치한 원주시의 지명으로 설명되어 있다. 인공미와 자연미가 조화되는 게 이런건가 싶을 정도로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동화역에서 느꼈던 여운을 동화역의 선로 방향 역사 사진으로 이어서 표현하고자 한다.

 

 

 

 

동화 속 소나무는 우리에게 있어 한없이 포근하면서도 든든한 존재이다.

 

 

 

 

 

미세먼지를 이제는 일상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진짜 미세먼지가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하니 말이다.

 

중앙선을 이용하는 부전과 청량리를 오고가는 무궁화호 1622.

 

이 열차 역시 근성열차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열차.

 

또한, 신녕역의 몇 안되는 정차열차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서경주역과 영천역을 차례로 거쳐 찾아가기 힘든 신녕역에 다다른다.

 

 

중앙선에 위치한 역들이 으레 그렇듯 열차편이 많지 않으면서도 찾아가기는 꽤 어려운 축에 속한다.

 

 

그렇다고 중앙선 연선에 위치한 지역들의 열차를 대신한 다른 교통수단들도 좋은가하면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신녕역도 찾아가기 쉽지 않은 역임에는 틀림없으나 힘든 만큼 찾아온 이에게 아름다움으로 보답을 한다는 점이 여느 역들과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영천역에서 영천시외버스터미널을 거쳐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신녕역에 도착했다. 이 날도 하마터면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뻔했다. 영천시외버스터미널의 시간표가 제대로 되어있지가 않은 데다가 그나마 터미널 직원의 다소 무성의한 대응에 황당함이 몰려오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알아본 버스노선과 비슷한 차량이 지나가서 놓쳤나 싶어 고민하던 찰라 마침 제대로 된 버스가 제시간에 맞게 들어와 운좋게 타고 갈 수 있었다.

 

 

영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신녕역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무인화가 이루어진 중앙선의 간이역들이 눈에 보였다. 화산역도 눈에 들어왔고, 영천의 교외 지역 풍경에 빠져있다가 25분이 지났을 무렵 목적지인 신녕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분명 역이름도 신녕역이었으며, 공식적인 행정구역명도 신녕면으로 등록되어 있었지만, 마을 곳곳 표지판 등을 보면, 신녕이 아닌 신령으로 표기되어 있었으며 영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기사님께 물어봤을 때도 신령으로 발음을 하고 있었다. 신녕과 신령이 통용되는가 보다. 

 

 

 

 

 

 

다소 혼란이 있었으며, 이 날도 미세먼지가 날렸지만, 역 주변이 정말 아름다웠다. 따뜻한 봄에 오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다는 생각이 쭉 들었다.

 

 

 

 

 

 

○ 신녕역의 역사

 

- 1938년 11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 1990년 1월 1일 소화물 취급 중지

 

- 1997년 6월 1일 화산역 관리역으로 지정

 

 

 

역풍경도 풍경이거니와 역사도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눈이 부시다고 해야할까.

 

 

마음이 정화된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정말이지 신녕역을 마주한 순간부터 마음의 정화는 물론이고, 스트레스도 눈녹듯 사라지는 듯했다.

 

 

 

 

 

 

언문일치라는 말을 빌리자면, 내외일치라는 말이 딱 들어맞다고 생각한다. 바깥도 아름답고, 안도 아름답다.

 

 

역사 내부도 오래된 기차역의 모습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음은 물론, 화분도 색깔별로 배치되어 있으며, 인근 지역 학생들이 백일장 등지에서 만든 시를 액자로 고스란히 전시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신녕역이야말로 옛날 생각이 절로 나게 할 정도로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신녕역을 답사하고자 했을 때 신녕역에서 발매한 승차권과 입장권을 소지하고 싶어 다소 걱정 아닌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신녕역에서 승차권 발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역직원에게 되돌아갈 열차의 승차권을 구매한 뒤 소수의 입장권도 같이 발권했다.

 

 

과거에 다른 철덕들의 신녕역 답사기를 보면 신녕역에도 무궁화호가 4왕복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국 알음알음 감편이 되어 현재는 무궁화호 2왕복만이 운행되고 있었다. 그래도 목적지가 청량리, 정동진, 동대구, 부전 등 실로 다양했다.

 

 

승차권과 입장권을 발매한 뒤 역직원에게 촬영 동의를 받아 시멘트를 탑재한 양회조차를 보내고 난 뒤 본격적으로 플랫폼에 가서 촬영에 임하게 되었다.

 

 

 

 

 

 

역사와 역의 표지판까지 옛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신녕역이야말로 마음도 정화하며, 철도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역사 곳곳이 아기자기함은 물론, 마음 편히 감상에 빠져들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역사는 옛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건만, 정작 플랫폼에는 역명판을 비롯한 각종 표식들은 코레일의 신CI 형식에 맞춰져 있다.

 

 

사진을 어느 정도 찍고, 역직원과 역과 관련되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역직원에게 양회조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날은 양회화물이 있다고 한다. 열차 입환과 해방은 신녕역 직원들이 하고, 시멘트 사일로에서 작업은 시멘트업체 직원들이 한다고 한다. 양회화물이 있는 데다 신녕역을 보면 신녕역이 취약지대인터라 일근을 포함한 3조 2교대로 총 7명의 직원이 항시 근무하게 된다고 한다.

 

 

신녕역에서는 화물취급, 여객취급, 승차권발매, 운전취급을 하게 되는 데, 재밌는 사실은 화산역을 기점으로 영천역은 대구본부, 신녕역은 경북본부로 나누어진다는 점이다. 운전취급은 신녕역은 물론 무배치간이역인 인근 화산역을 포함한다고 한다. 승차권 발매의 경우 보통 인근 주민들이 KTX 승차권을 발매하는 목적으로 이용된다고 하며, 여객취급의 경우 정작 자차들이 있어서 인근 주민들의 무궁화호 등 일반열차 이용은 뜸한 편이라고 하니 신녕역도 여느 시골역과 처지가 다르지 않은 듯 해보였다.

 

 

사실, 신녕역도 중앙선 복선화가 되는 데로 폐역의 운명을 받아들게 되는데, 이는 신녕역을 비롯해 탑리역과 화본역의 운명도 신녕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중앙선 복선화는 대략 2020년을 전후로 될 것으로 보이는 데, 빨라짐과 동시에 추억은 추억으로 남게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알게 되는 거 같아 한편으론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주차장 방향 역사의 모습도 기대를 만족시켜준다. 신녕역을 다녀온 건 개인적으로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며, 다시 한번 신녕역에 오고 싶다는 생각이다. 많은 역들은 아니지만, 나중에 몇 번 더 오고 싶은 역이 바로 신녕역이었다.

 

 

 

 

 

 

청량리 기점 327.6㎞. 그만큼 신녕역은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역이며, 우리나라의 영토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큼 크다는 걸 실감하게 된 날이기도 하다. 역직원이 열차가 곧 들어온다며, 안내해주기 시작한다.

 

 

힘든 만큼 커다란 보상은 물론이며, 오감을 만족시켜주며,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켰던 역은 신녕역이 내겐 유일했다.

 

 

내게 남겨진 신녕역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중앙선 복선화가 되기 전 신녕역을 꼭 다시 찾아 날씨 따뜻한 봄기운 가득한 신녕역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

 

 

 

 

 

 

1월 15일은 서경주역과 신녕역, 그리고 동화역을 한꺼번에 다녀온 날이기도 하다.

 

사실, 서경주역과 신녕역, 화본역과 탑리역, 그리고 건천역, 안강역과 불국사역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일정상으로도 빠듯했고, 시간이 되지가 않았다. 결국, 일정을 짜면서 서경주역, 신녕역, 동화역으로 오는 게 시간상으로 맞아떨어졌다.

 

서경주역을 먼저 다녀왔으니 서경주역부터 풀어나가기로 한다.

 

서경주역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이전에 포스팅했던 동백산역과 처지가 비슷한 존재였다.

 

( 동백산역 포스팅 참조 - http://flytoazuresky.tistory.com/658 )

 

서경주역의 역사와 이력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 서경주역의 역사

 

- 1992년 11월 1일 금장신호장으로 영업 개시

 

- 1993년 5월 1일 여객 취급 개시

 

- 1995년 8월 10일 보통역으로 승격. 금장신호장 → 금장역

 

- 2009년 1월 1일 금장역에서 서경주역으로 역명 변경

 

- 2010년 4월 1일 서울역 ↔ 포항역 간 새마을호 정차 개시

 

- 2015년 4월 2일 서울역 ↔ 포항역 간 새마을호가 운행 종료

 

 

 

동백산역처럼 주목 받는 존재가 아니었다가 점차적으로 역의 규모가 커진 셈이다. 동백산역과의 차이가 있다면 서경주역은 지금도 여객수요가 활발하다는 점, 동백산역처럼 새로 이설되거나 역사를 새로 건설한 건 아니란 차이점이 있다. 다만, 서경주역도 추후 동해선과 중앙선의 복선전철화가 완료되는 시점에 나원역과 통합될 예정이며 역사도 새로운 곳으로 이전한다고 한다. 물론, 서경주역 분기하던 삼각선의 존재도 건천역으로 동시에 이전하게 될 것이다.

 

 

 

 

동이 트는 아침에 기차역을 다녀오는 것도 처음인 것만 같다. 동이 틀 무렵이라 그런지 새벽의 기운이 그대로 느껴진다. 서경주역도 과거 역사의 트렌드라고 불리는 凸로 불리는 형태를 띄고 있었다. 과거에 욕설로 널리 알려졌다면 이런 식으로 건설하지는 않았을까 싶다.

 

 

한편, 서경주역은 다소 특이한 형태를 띄고 있는 역 중에 하나인데, 역간판이 역사 정중앙이 아닌 역사의 측면에 위치하고 있는 점이 특이사항이기도 하다.

 

 

 

 

역 주변으론 아파트단지가 밀집되어 있는 데다가 주변 도로와 아파트단지로 가는 길이 이어져 있다. 주변 주민들 입장에서 출퇴근이나 기타 용무를 목적으로 역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날 이른 새벽인데도 통근을 목적으로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법 됐다.

 

 

 

 

삼각선이 분기하는 데다 주변에 배후 수요가 존재하고 있기에 동해남부선과 중앙선, 대구선을 경유하는 기차들이 정차하며 여객수요에 맞춰 열차편도 빈도있게 존재하고 있었다. 

 

 

 

 

서경주역의 역사 내외부가 참으로 아기자기했다.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민속 도구들을 진열해놓고 있으며 역사 밖에서는 다양한 돌탑이 쌓여있었다. 역직원들의 손길과 정성이 들어가 있다고 해야 할까?

 

 

특히, 서경주역에 쌓여있는 돌탑을 보며, 사람의 인생도 마치 돌탑을 쌓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기초 공사를 탄탄히 해야하는 것부터 제일 밑에서 쌓을 때는 주어진 기회가 많지만, 돌탑을 점점 쌓아가다 보면, 점점 신중해져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기초 공사를 잘못하면 돌탑을 쌓아나갈 때 난처해진다는 점을 비추어보면, 돌탑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제법 흡사한 구석을 지니고 있다.

 

 

이 날이 겨울이라 그렇지 아마 봄이나 여름에 왔으면 돌탑과 주변에 식재된 나무들이 어우러져 보다 생기있는 풍경을 연출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실, 대략 10여 년 전에만 해도, 겨울철에 미세먼지라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봄철에 황사가 있어서 일정 기간동안만 잘 넘어가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요즘 들어 황사는 물론이고, 미세먼지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계절과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이제는 미세먼지가 하나의 일상이 된 탓에 미세먼지도 둔감해지는가 보다. 미세먼지가 있으면 그냥 심드렁해진다.

 

 

 

 

미세먼지가 사람이나 동물의 호흡기에 악영향을 끼치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세먼지가 아침에 동이 틀 무렵과 잘 어우러진 탓인지 이 날 찍은 사진치고는 꽤 퀄리티있게 나왔다고 자부한다.  

 

보기에 따라서 안개가 꼈다고 해도 믿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제는 미세먼지도 우리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걸맞게 적응해나가야 할 듯 싶다. 그래도 미세먼지가 단점만 있는 건 아닌지 인생사 새옹지마란 말이 절로 생각난다. 

 

 

 

 

역명판에 경주방면으로 안강ㆍ경주가 병기되어 있다. 즉, 서경주역은 금장삼각선의 분기점이므로 그만큼 운전취급상 중요한 역임을 역명판을 통해 웅변하고 있었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 서경주역의 주차장 방향으로 역사 사진을 찍고, 이것으로 부족했던 관계로 다양한 구도로 사진을 찍어 파노라마 사진도 남기게 되었다. 

 

사실, 찍고 나서도 구도가 좋지 않았던 탓에 고개를 기웃거렸는데, 예상이 현실화됐는지 파노라마 사진도 만족스럽다고 하기에는 애매모호하다. 역시 한번에 모든 것을 다 가져가려고 하기 보다는 때로는 호흡을 좀 더 길게 가지고 가야할 일이 늘 존재하는 게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