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영혼

그냥 머리를 식히고 바람도 쐴 겸 다녀온 것이 도경리역이다.

 

도경리역을 다녀왔던 것도 순수하게 머리를 식히고 바람도 쐬고 싶은 것 딱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도경리역이 유명세를 탔던 건 영동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이고, 또 문화재청에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철덕들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도경리역이 요근래 유명해진 건 유명 가수들인 다비치의 "오늘 따라 보고 싶어서 그래" 뮤직비디오 촬영장소로 등장하면서 굳이 철덕들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도경리역의 부제 역시 가수 다비치의 "오늘 따라 보고 싶어서 그래"에서 따왔다. 포스팅을 하는 지금도 보고 싶은 역 중에 하나가 바로 도경리역이니까.

 

 

 

도경리역은 1939년 5월 15일에 역사가 준공되었다. 이후 1940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가 1995년 1월 10일 역세권이 미약한 터라 승차권 차내취급역 지정되더니 1997년에는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001년에는 신호장으로 더 떨어지고 말았다.

 

도경리역은 무배치간이역도 아닌 신호장으로서 열차의 교행을 위해 존재하는 역일 뿐이다. 애초부터 역세권이라고 해봐야 민가 몇 채가 고작이니 말이다.

 

 

이 날 도경리역을 찾아갔을 때는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얼추 길을 찾아보고, 머리 식히러 바람 쐬러 떠난 길이었지만, 도경리역까지 가는 교통편이 자주 없다는 소식이 있었다. 특히, 도경리역 역시 영동선 아니랄까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하는 숨바꼭질 하듯 산속에 숨어있는 역이었기 때문이다.

 

 

 

 

한낱 신호장일 뿐이지만, 도경리역은 1939년 5월 15일부터 지금까지 역사가 오롯이 보존되고 있을만큼 정말로 유서깊은 역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영동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인데다 박공형 지붕을 채택하고 있고, 무엇보다 역사 외관이 일본식 건축양식을 띄고 있어 철도 건축 역사에서도 정말로 소중한 자산이라 할 수 있겠다.

 

 

꼭 철덕이나 철도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누가 보더라도 도경리역의 역사를 보면 일본 훗카이도(北海道)의 어느 시골 간이역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 눈이 제법 왔는데, 도경리역은 여름도 여름이지만, 가을이나 겨울에 미적 가치와 진정한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역 중에 하나다. 

 

 

겨울에 눈이 내리고 있는 도경리역에 있으면 일본 훗카이도(北海道)의 어느 시골 간이역에 있다고 해도 믿을테니 말이다. 그만큼 영동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은 당연 도경리역이고, 영동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 역시 도경리역이라 자부한다.

 

 

 

 

도경리역은 2007년 여객취급이 완전히 중지되었는데, 이 무렵 영동선의 가장 오래된 역사이고, 철도 역사상 보존가치가 충분했기에 문화재청으로부터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고, 이후 삼척시에서 예산을 투입해 역사 개보수를 하여 지금도 나름대로 관리를 받는 귀하신 몸 중에 하나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잊혀간 역들 대부분은 초라하게 방치되다시피 내팽겨진 역들이 부지기수니깐.

 

 

 

 

도경리역의 역간판은 과거 철도청시절의 역간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교육자산으로서도 활용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도경리역의 화장실인데 이용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아마 잠겨있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실제로 화장실이라는 푯말도 과거 철도청 시절의 서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화장실 옆에는 화분이 아기자기 놓여있어 역사의 품격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듯하다. 실제로도 화분의 관리가 되고 있는 걸보면 역시 사람이건 건축물이건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과거 여객취급이 중단되기 전까지 사람들이 이곳으로 기차를 타고 다녔을 것이다. 사진 가운데에 집표함이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집표함에는 세월의 흔적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내릴 때 넣어둔 승차권이 보이지 않았다.

 

 

 

 

역사 사진에서처럼 도경리역의 하얀색 도장과 겨울 하얀 눈이 절묘하게 시각적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도경리역은 진정 겨울에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름이나 가을에도 운치있지만, 음식에 양념이 잘 어우러지면 환상의 맛을 표출한다고 하지 않은가? 바로 도경리역의 겨울의 하얀 눈이 도경리역의 보석보다도 더욱 값진 역으로 만들어주는 양념이라고 생각한다.

 

 

 

 

도경리역의 선로보선반 옆의 공간에는 침목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또, 위에 보면 141이라는 숫자가 보일텐데, 이는 영주역 기점 141km 지점을 뜻한다. 즉, 도경리역은 영주역 기점 141km에 위치하고 있는 정거장이라 하겠다.

 

 

 

 

일본 훗카이도(北海道)의 어느 시골 간이역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필자도 도경리역을 처음 밟았을 때 설렘과 더불어 일본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도경리역에는 옛날의 모습들이 온전히 자리하고 있고, 역명판도 옛날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위에 있는 나무들이 역사를 아름드리 꾸며주는 존재라 생각한다. 조동사나 조사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역무실에는 꾸준히 무전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열쇠보관함과 비상초함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특히, 역무실의 책상 위에는 철도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만한 전호깃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과거 여객운임표와 열차시간표가 고스란히 걸려 있었다. 무궁화호 1698과 무궁화호 1697은 과거 강릉 ↔ 영주간 다니던 열차인데, 과거 통일호 1243호 통일호 1244호를 계승한 열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무궁화호 1685와 무궁화호 1686으로 동해 ↔ 영주로 축소되더니 2012년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첫장의 사진과는 다른 사진이다. 결국 플랫폼 방향 역사 사진을 두 장 찍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도경리역의 아름다움이 푹 빠졌었나보다.

 

 

 

 

갈 길을 재촉하기 위해 도경리역을 떠나는데, 낯선 사람의 발길이 경계됐던 듯 민가 주변의 개들이 사납게 짖어댔다. 그래도 바람 쐬러 머리 식히러 떠난 도경리역에서 제대로 힐링을 받고 간다는 기분이란 뭐라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만큼 마음이 편안했다. 물론, 여름의 날씨라 덥긴 했지만, 그와 별개로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도경리역의 안내 표지판과 표지판 바로 옆에 있는 버스 정류장이다. 사진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은 미로, 도계 방향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고, 삼척, 동해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반대편으로 길 건너 가서 탑승해야 한다. 길 건너갈 때 건설 차량이나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들이 수시로 다니므로 통행에 각별히 주의하기를 바란다. 참고로, 버스에 탑승하고자 할 때는 버스가 보일 때 손을 흔들면 요금을 내고 탑승하면 된다. 시간이 된다면 도경리 마을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기에 버스 시간을 필히 참고해서 답사에 불편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도경리역의 파노라마 사진으로 황홀했던 도경리역의 포스팅을 마무리지을까 한다. 언제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다음번에는 겨울에 하얀 눈이 내릴 때 도경리역에 꼭 다녀오기로 스스로에게 약속을 해본다.

 

 

 

 

그간 살면서 몇몇 역들을 거치고 다녔지만, 본격적으로 철도역의 "답사"를 시작한 것은 옛 강릉역이 처음이었다.

 

엄밀하게 이야기해보면, 강릉역을 답사할무렵 철도에 대한 완벽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기보단 마침 강릉에 일이 있어 강릉역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카메라로 사진으로 남겨볼까란 생각에 다녀온 것이었다.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유명하시고, 현직 한국철도공사 직원이기도 하신 스팀로코님의 블로그를 (lovtrout.blog.me) 보고, 쉬는 날 시간을 정해 역답사를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기가 정확히 올해 초였다.

 

물론, 이전에 강릉역 이후로도 공항답사를 다니던 2014년 6월 무렵 포항역의 기록도 1~2장의 사진으로 남겨두기도 했고, 2015년 6월에도 머리식힐 겸 삼척의 도경리역도 다녀오기도 했다.

 

스팀로코님의 블로그를 보면서 간이역 답사의 나름 몇가지 방향을 세울 수가 있었는데, 관리역보다 능주, 대야, 승부, 신기, 희방사, 주덕, 삼탄, 반곡, 동화, 신림, 임기, 현동, 분천, 추풍령, 남성현, 신녕, 탑리, 옥산, 석항, 쌍룡, 추전, 동백산, 백산, 청소, 판교, 삽교 등 1인 근무지정역이나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는 역으로 정했다. 물론, 무인역(무배치간이역)은 될 수 있으면 제외했다. 역이란 역무원이 있어야 하고, 열차를 타려는 사람이 있어야 진정한 역이랑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기나 현동은 왠지 모르게 끌렸던 터라 가볼 생각이지만...

 

관리역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1인 근무지정역이나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간이역들을 답사하는 게 진짜 답사라 생각했고, 사실 역다운 역들은 승부역 등 1인 근무지정역이나 우리가 생각하는 간이역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간이역에 초점을 맞췄다고 할 수 있겠다.

 

 

 

과거 기차를 타기 위해 강릉역을 한번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영동선을 처음 접한 것이 2001년이었다. 강릉에서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로 지루함을 느꼈다.

 

지금처럼 낭만적이고 감상에 쉽게 빠질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이후 13년이 지난 당시 2014년 강릉역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강릉역의 영업중지를 불과 이틀 앞두고 다녀오게 되었다.

 

 

 

 

강릉역 역사가 13년 뒤에 찾아온 나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시기이기도 했는데, 바람이 불어 더위를 크게 느끼지는 않았던 날씨로 기억한다. 강릉역 역사 오른편에는 소위 말하는 근성열차로 잘 알려진 강릉 ↔ 부산 1691 무궁화호 열차가 승객들을 맞이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진을 슬슬 찍기 시작했는데, 스토리웨이가 있었고, 무궁화호 옆에는 바다열차가 플랫폼에 있었다. 2014년에 바다열차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규 여객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삼척역이 종착역이라고 한다.

 

 

 

 

역사에 들어와 처음으로 눈에 띄었던 건 바로 강릉역의 영업중지 안내문이었다. 강릉역이 영업중지가 되면서 강릉역의 여객업무는 정동진역으로 이관이 되었고, 현 강릉역 역사에서 정동진역까지 열차시간에 맞춰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셔틀버스에 대한 내용은 정동진역 포스팅에서 따로 알려드리도록 하겠다.

 

 

 

 

이어 강릉역의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가 눈에 띄는데, 과거에는 청량리역에서 강릉역까지 새마을호가 한편 운행되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새마을호는 온데 간데 없고, 무궁화호만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에 자리잡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새마을호보다 현재 서민열차라 불리는 무궁화호가 더 정이 가는 게 사실이다. 시간이 더 걸릴지언정 기차여행을 좀 더 할 수가 있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의 군상을 접할 수가 있고, 무엇보다 운임부터가 꽤나 저렴하니깐 말이다.

 

 

 

 

강릉역의 승차권 발매창구와 맞이방이다. 비록 이틀 뒤에는 영업중지가 되고, 정동진역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겠지만, 당시에도 강릉역은 자신의 역할에 꽤나 충실하고 있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고객님!'이란 말이 꽤나 뜻깊게 다가온다.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으며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해 배웅을 하는 것 같아 시원섭섭한 감정이 몰려온다. 시원섭섭함이란 바로 이런 감정을 가리켜 말하는가보다.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라는 말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누가 이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별을 하게 되면 섭섭한 게 사실이다. 포스팅을 하는 지금 강릉역은 없어졌으니까.

 

그래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말처럼 강릉역도 새롭게 다시 태어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모습을 기대해본다.